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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Nov 10. 2021

그렇게 '꼰대'가 되어간다

못하는 건 접어두기로

큰딸 보민이는 사춘기에 들어서고 있다. 아이도 나를 닮아서 하고 싶은 말을 쉽게 드러내는 편이 아니다. 서로에게 꼭 필요한 말만 한다. TV를 보거나 숙제를 할 때 궁금한 걸 묻는 정도다. 답을 아는 질문에는 정성껏 대답해주지만 정성이 넘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보민이가 궁금해하는 게 내가 말하는 내용과 맞으면 짧은 대화가 된다. 자칫 의욕이 앞서 말이 길어지면 여지없이 아이는 표정으로 말을 한다. 

‘아빠! 거기까지만.’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선을 넘었다. 이런 대화에서 적정한 선을 지키는 게 쉽지 않다.   

  

“엄마, 나 다이어리 하나 사고 싶은데.”

“다이어리 산지 얼마 안 됐잖아. 그때 산 건 다 썼어?”

“아니 아직. 이건 그때 거랑 다른 양식이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것 같아서.”

가끔 책상을 보면 계획표가 적혀있다. 그날 공부할 범위와 시간을 기록해 놓는다. 유튜브에서 배운 공부법을 활용하는 것 같았다. 기록하는 건 좋은 습관이다. 내가 보민이 때는 그런 게 있는지조차 모르고 무식하게 공부했었다. 무식하게라도 했으면 성적이라도 좋았겠지만 이도 저도 아니었다. 공부 습관을 만들기 위한 의지를 보는 것 같아 대견했다. 마음 같아서는 해달라는 건 다 해주고 싶었다. 그래도 무턱대고 따라 하게 두는 것보다 아빠로서 조언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았다. 

“보민아, 계획을 세우고 기록하고 확인하면서 공부하는 건 좋은 습관이야. 아빠는 너 때 그런 생각도 못했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네. 네가 벌써부터 그런 방법으로 공부한다는 데 아빠는 얼마든 지원해주고 싶어. 하지만 그전에 생각해봤으면 하는 게 있어. 너에게 맞는 다이어리를 찾는 것도 물론 필요해. 문구점에 다양한 다이어리가 있고 그걸 볼 때면 호기심이 드는 건 아빠도 충분히 이해해. 근데 습관이라는 건 적어도 다이어리 한 권 정도는 다 써봐야 어느 정도 자리 잡힌다고 생각해. 한두 달 해서 습관이 생기면 세상 사람 다 원하는 습관을 가질 수 있을 거야. 근데 그게 그렇지 않더라. 적어도 6개월 이상은 꾸준히 해야 되더라고. 그러니까 지금 있는 다이어리를 먼저 써보는 게 어떨까? 그렇게 해보고도 안 맞으면 그때 가서 얼마든 다른 걸로 바꿔줄게.”

나 혼자 신나서 한참을 떠들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보민이의 시선은 태블릿에 가 있었다. 내 눈치만 보고 있었나 보다. 그것도 모르고 혼자 떠들고 있었다. 꼰대가 된 것 같았다.   


금요일 저녁은 일주일 동안 가슴에 쌓였던 돌을 내려놓는 시간이다. 아내와 나, 두 아이도 긴장을 풀고 저녁을 먹는다. 이때 빠지면 안 되는 게 소주 한잔이다. 가족의 의견을 모아 먹고 싶은 메뉴를 배달해 먹는다. 긴장도 풀리고 먹고 싶은 음식도 앞에 있고 기분이 좋아지는 반주까지 곁들인 저녁 한 상이 차려진다. 자연스레 말도 많아진다. 대화 주제도 다양해진다. 주로 아이의 관심사에 맞춰진다. 

“엄마 며칠 전에 유튜브를 봤는데 대박 신박한 공부방법을 봤어.”

“공부방법? 어떤 건데?” 보민이가 대답하려는 찰나 내가 끼어들었다.

“맞다, 너 전에 쓰던 다이어리는 잘 쓰고 있니?”

“어~그거 쓰긴 쓰는데 요즘은 잘 안 써.”

“벌써 포기한 거야! 아빠가 그때도 얘기했잖아. 적어도 6개월은 써보라고. 그래야 습관도 생기고 나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도 알 수 있다고. 그렇게 쓰다 안 쓰다 하면 안 하는 거나 마찬가지지. 아빠도 습관 때문에 무지 애 먹었다. 나이 들어하려니 너무 힘들더라. 아빠는 네가 부럽다.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습관을 들이면 못 할 게 없을 것 같은데.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중고등학교 때로 돌아가면 너처럼 계획적으로 공부해보고 싶더라. 그랬으면 아마 지금처럼은 살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너도 아빠처럼 후회하지 않게 지금 하는 거 제대로 했으면 해. 물론 매일 다이어리를 쓰고 공부 계획을 세우는 게 쉽지 않은 건 잘 알아. 근데 그렇게 습관 잡고 나면 아마 못할 게 없을 걸. 그건 아빠가 장담한다. 아빠 봐! 나이 들어 시작했어도 지금 이만큼 해내고 있잖아. 그러니 너 때부터 시작하면 얼마나 더 엄청난 걸 얻게 되겠어? 안 그래?”


실컷 떠들고 났더니 주변이 조용하다. 아내마저 스마트 폰에 눈이 가 있다. 맛있는 밥에 곁들인 소주 반 병이 기분을 띄웠다. 평소보다 반 층 정도 올라가 있는 기분 탓에 말이 많아졌다. 기분 좋게 마신 술이 말의 자물쇠를 열었다. 보민이도 이런 나의 버릇을 알아버렸다.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술을 마실 때와 안 마셨을 때 달라진 나를 알게 되었다고까지 했다. 어릴 때 아버지도 지금의 나와 비슷했던 것 같다. 술을 마신 날은 삼 형제를 앉혀놓고 일장 연설을 하셨다. 문제는 했던 말을 무한 반복하신다는 거였다. 앉아 있는 그 순간이 빨리 지나기만 바랐다. 아버지가 하는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분명 아버지는 우리에게 뼈와 살이 될 말을 하셨을 거다.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술을 먹든 안 먹든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고 그 말들은 아이들이 잘 됐으면 하는 바람들이라는 걸.          




좋은 말의 기준은 말하는 사람이 아닌 듣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내가 보민이 에게 기다렸다는 듯 쏟아내는 말들은 소음일 뿐이다. 듣는 사람이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었거나 관심 없는 주제라면 새겨듣지 않기 때문이다. 어릴 때 술을 마신 아버지의 말이 하나도 안 들렸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내 기분에, 내 생각만 하고 상대방이 어떤 상태인지 고려하지 않은 말은 잘 차려진 한정식 밥상을 꾸미는 불필요한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 산해진미가 차려진 밥상에도 먹고 싶고 좋아하는 게 정해져 있기 마련이다. 먹어본 적 없는 낯선 요리에 배가 부르기보다 매일 먹는 갓 지은 쌀밥에 김치 한 조각을 먹었을 때 배가 부른 것처럼. 나이가 든 지금도 잔소리를 가장한 좋은 말을 듣고 있는 게 편치 않다. 상대방은 나를 위한다고 하는 말이지만 듣는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은 게 대부분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라고 항상 좋은 말을 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는 건 아니다. 하물며 마주 앉혀놓고 내 기분에 취해하는 말이라면 더더욱 주의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좋은 말은 어디까지나 내가 좋은 것이지 상대방에게까지 좋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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