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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Nov 23. 2021

아빠에게 진심인 둘째 딸

사람 사이에는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직장 안에서는 각자의 역할과 성과를 위해 이해를 따지고, 거래처는 한 푼이라도 더 이익을 내기 위해 따지고, 대인 관계에서는 이득이 될 것 같은 사람 위주로 만나려고 한다. 나부터도 도움이 되는 사람을 우선순위에 두게 되니 말이다. 아마 어릴 때는 이런 이해를 따지는 게 덜 했지 싶다. 친구끼리는 아무런 조건 없이도 내 장난감을 내어주기도 하고, 곤경에 처하면 가장 먼저 달려들었던 때였을 거다. 학교와 사회에서 경쟁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이런 순수한 마음의 크기가 점점 줄어들지 않았나 싶다. 상대방을 조건 없이 돕는 순수한 마음은 나이가 들어도 존재한다고 믿는다. 다만 팍팍한 삶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려 날 수밖에 없던 거라 생각한다. 어제저녁에 있었던 일을 떠올려 보면 10살 인 둘째 에게도 순수하게 타인을 돕는 마음이 있다는 걸 볼 수 있었다. 


이른 퇴근을 감행한 후 집 주변 카페에서 세 시간 남짓 글을 썼다. 투자한 시간 대비 만족스러운 한 편을 완성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아내는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큰 딸은 화장실에서 비움을 실천 중이었다. 둘째는 거실에서 종이를 자르고 붙이며 만들기에 열심히였다. 아내는 퇴근길에 마트에 들려 삼겹살 한 팩을 사 왔다. 할인된 가격표가 붙어 있어 망설임 없이 집어 들었다고 했다. 고기반찬이 있으면 다른 반찬에 손이 덜 가는 법이다. 아이들도 고기를 좋아해 금방 바닥난다. 밥과 반찬이 준비된 것 같아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기름이 빠지는 전용 팬이 없다. 프라이팬에 삼겹살을 구울 땐 고이는 기름이 문제다. 그나마 목살은 기름이 적어 손이 덜 간다. 삼겹살은 고기 굽는 내내 키친타월로 기름을 닦아내야 한다. 팬 위에 올라간 고기는 유난히 비계가 많아 보였다. 기름과의 사투가 예상됐다. 타지 않게 굽기를 조절하며 부지런히 기름도 닦아냈다. 잠깐 한눈을 팔면 어느새 기름은 잔뜩 고인다. 내가 방심한 걸 눈치챘는지 고여있던 기름이 선제공격을 날렸다. 기름이 튈 때 나는 소리와 함께 제법 많은 양이 얼굴로 날아들었다. 거리가 있었는지 얼굴에 닿은 기름은 날아오는 동안 식어서 별다른 타격을 입히진 못 했다. 문제는 그보다 가까웠던 엄지 손가락을 공격한 기름들이었다. 미처 피하지 못한 엄지 손가락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찬물에 손가락을 담갔지만 화기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나를 공격한 삼겹살을 먹기 좋게 자르는 것으로 나의 복수를 마무리했다. 걱정하는 아내를 안심시키고 먹기 좋게 접시에 담아 식탁에 올렸다.   


밥 먹으라는 내 말에 아이들이 식탁으로 모인다. 둘째가 자리에 앉기 전 손가락에 난 벌건 자국을 봤다. 자리에 앉지 않고 냉동실 문을 연다. 키보다 높은 곳에 있던 얼음통을 꺼낸다. 엄마에게 말해 비닐봉지 하나를 건네받는다. 얼음통을 바닥에 내려놓고 비닐봉지를 벌려 얼음을 담는다. 얼음이 담긴 봉지를 내려놓고 얼음통을 다시 냉장고에 넣는다. 얼음이 담긴 봉지를 묶으려고 베베 꼬아보지만 묶이지 않는다. 두고 보고 있던 내가 건네받아 입구를 묶고 둘째가 보는 앞에서 상처 난 엄지손가락에 가져다 올렸다. 

"채윤이는 이런 거 어디서 배웠어?"

"학교에서 배웠지. 화상 입으면 차가운 걸 대라고 했어. 아빠 괜찮아?"

둘째는 잔정이 많은 아이다. 언니에게 성질을 부리기는 하지만 모진 말을 못 하는 아이다. 2학년이 되면서 새로 만난 친구 사이에서 따돌림 비슷한 걸 겪기도 했다. 자신의 기분보다 상대의 마음을 신경 쓰다 보니 할 말을 제대로 못했던 탓에 그랬다. 엄마 아빠의 조언에 따라 행동한 덕분에 더 심해지진 않았고, 그 친구들과는 더 돈독한 사이가 될 수 있었다. 채윤이는 자신이 줄 수 있는 걸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지난 결혼기념일에도 결혼 행진곡을 들려주겠다며 며칠을 연습했었다. 선물로 주겠다며 그림도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모양을 만들기도 하고 삐뚤빼뚤 글씨로 편지까지 써 줬다. 어제처럼 작은 상처가 나거나 부딪히는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달려와 위로와 걱정을 전한다.  


아직 10살이라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는 게 무엇인지 모를 수 있다. 모르는 게 당연한 때인 것 같다. 물론 가족이라서 더 마음을 쓰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일 수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지금처럼 행동한다면 아마 그들에게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런 상처가 쌓이면서 채윤이도 이해에 따라 행동하게 될 수도 있다. 지금 사회는 무조건적으로 타인에게 애정과 관심을 쏟을 수는 없게 만들고 있다. 내 것을 지키기 위해, 하나라도 더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경쟁하고 이해 득실을 따지게 한다. 그게 당연한 것처럼 가르치기도 한다. 설령 그때 가서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게 되더라도 한 가지는 잃지 않았으면 한다. 가족은 물론 타인에게 조건 없이 베푸는 사랑은 더 큰 사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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