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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Nov 29. 2021

내 경험을 글에 담아

못하는 건 접어두기로

단 둘이 대화도 힘들었다. 목소리 큰 사람을 만나면 더 주눅 들었다. 해야 할 말은 못 하고 듣기 싫은 말만 듣고 있어야 했다. 상대방이 싫어할 말은 입 밖에도 꺼내지 못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내 잘못이겠거니 여겼다. 당연한 권리도 주저하며 눈앞에서 잃고 말았다. 고쳐보려고 했다. 책도 읽어보고 신문 기사를 외우기도 했다. 거울을 보고 웃으며 인사하는 것도 연습했다. 꾸준하지 못한 탓에 얼마 못가 포기하기를 반복했다. 그럴수록 대화에는 더 소극적이 되어갔다. 사람 만나는 것 자체가 싫어지고 했다. 직장에서도 이런 성격이 드러났다. 일을 주도적으로 하기보다 끌려가기 바빴다. 거래처에서 요구하는 대로 따라주거나 회사에 손해가 나도 싫은 소리 한 번 듣고 말자며 넘겨버렸다. 그때는 나만 욕먹으면 더 불편해질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로서는 불가항력이라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다는 변명만 댔다. 직장상사도 이런 나를 답답해했다. 잔소리를 듣고 질책을 받았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직장에서 마찬가지로 악순환이 반복되었고, 전보다 더 사람에게서 멀어지고 싶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모든 게 변하기 시작했다. 6개월 동안 매일 책을 읽었다. 100여 권을 읽고 나니 글을 쓰고 싶었다. 어디서부터 용기가 났는지 모르지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씩 쓰기 시작했다. 쓴 글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몇 안 되는 사람에게 보이는 것도 용기가 필요했다. 눈 한 번 질끈 감고 세상에 드러냈다. 한 번 하니 두 번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번 하니 세 번은 쉬웠다. 세 번도 했는데 네 번을 못할까? 그렇게 매일 글을 써서 세상에 내놓았다. 1년을 썼다. 책을 읽기 시작하고 글을 쓰며 1년 6개월을 보냈다. 시간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매일 읽고 쓰면서 말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글로써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말했고, 내 말에 귀 기울이는 이들이 있다는 데 힘이 났다. 어차피 나는 경험이 없다. 나에게서 유명 강사의 그것을 바라지도 않을 거다. 나이기에 줄 수 있는 게 있고, 나에게 바라고 얻고 싶을 게 있을 터였다. 무슨 일이든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그 일에 진심을 다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진심을 다하면 잘하는 건 당연히 따라오는 거였다. 진심은 없고 잘 보이고만 싶어서 실수를 하고 중요한 걸 놓치게 되는 것 같다. 잃을 것도 없다고 생각하니 말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오히려 내려놓을수록 얻어지는 게 많아졌다. 이런 마음과 노력 덕분에 몇 번의 강의를 할 수 있었다.     


책을 주제로 강의를 했다. 내공이 부족해서 더 많은 기회를 갖지 못했다. 나 스스로도 강의를 할수록 부족함을 느꼈다. 그래도 내 이야기를 듣고 도움이 됐다는 사람이 많았다. 오롯이 내 경험이 그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준 것이었다. 그동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면서 내 나름의 가치관과 성과를 만들어냈다. 몇 번의 강의를 준비하며 이런 내 생각의 틀을 잡았다. 내 생각이 담긴 글이 제법 모여 있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것들을 모았다. 독서와 글쓰기를 주제로 모은 글을 몇 가지 소 주제로 다시 모았다. 그렇게 분류하고 다시 정리하니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SNS를 통해 글의 위력을 실감했기에 책으로 엮어볼 욕심이 생겼다.          


전자책 출간으로 방향을 정했다. 종이책을 추천했지만 나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전자책이 사람들에게 좀 더 쉽게 가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분량도 적어서 읽기에도 부담이 적을 것 같았다. 내 딴에 욕심이 있었다. 종이책은 안 사 읽어도, 전자책은 그나마 읽을 것 같았다. 종이책보다는 전자책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 판단해서다. 주제에 맞는 새 글을 쓰기 시작했다. 주제의 뒷받침 내용은 미리 써 놓은 글을 가져왔다. 각각의 주제에 읽으면 도움이 될 책도 선별했다. 초고부터 퇴고까지 꼬박 25일 걸렸다. 글만 쓸 때와 책을 쓸 때는 달랐다. 그래도 짧은 기간 쓸 수 있었던 건 전자책 이전에 종이책을 써 본 경험이 있어서였다. 매주 꾸준히 책 쓰기 수업을 들어둔 덕을 봤다. 그렇게 완성된 초고를 출판사에 투고했다. 전자책을 전문으로 다루는 출판사 위주로 투고했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투고 후 바로 계약으로 이어졌다. 출판사 편집자의 퇴고를 두 번 더 거친 뒤 세상에 나왔다.      


책이 출간됐지만 손으로 만져볼 수는 없었다. 종이책은 작가 사인을 담아 선물하기도 하지만 전자책은 그러지 못했다. 꼭 선물해야 할 분들에겐 이메일로 전달했다. 종이책이 주는 감흥을 경험해보진 못했지만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남겼다. 살기 위해 변화를 선택했다. 변화를 경험하면서 더 큰 가치를 배웠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더 큰 가치가 무엇인지 알아갔다. 내가 배운 것들을 내 안에 머무르게 하기보다 끊임없이 흐르게 하는 게 궁극의 나의 성장이 된다고 했다. 흐르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타인에게 베푸는 것이라고 했다. 나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중 나는 강연과 책 쓰기를 선택했다. 


글을 쓰면서 재료를 모았고, 강의를 하면서 조리를 했고, 책을 내면서 비로소 하나의 음식을 완성해 낸 것 같았다. 솜씨가 부족해 맛이 없고 모양이 투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성은 유명 조리사 못지않다고 자부한다. 같은 요리도 20년 경력의 맛과 4년 된 조리사가 만들어낸 맛은 다를 수밖에 없다. 경력이 부족한 조리사는 레시피대로 따라 하며 경험을 쌓아간다. 간혹 양념을 빼먹기도 하고, 순서가 바뀌기도 하면서 배워간다. 솜씨가 부족한 조리사가 만든 음식도 누군가에게 최고의 요리가 될 수 있다. 한 끼가 절실한 이들에겐 밥에 반찬만 있어도 진수성찬일 수 있다. 음식은 누가 만드느냐보다 무엇을 만드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그 안에 들어가는 재료가 조금 부족해도 한 끼로써 충분히 가치가 있다면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식사가 될 수 있다. 내 경험이 아직은 부족할 수 있다. 경험은 시간이 더해지고 배움을 이어갈수록 쌓여갈 것이다. 충분히 쌓이고 난 뒤 나누려 한다면 그때는 안 올 수도 있다. ‘충분히’라는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부족해도 지금 내가 줄 수 있는 있다고 생각하면 행동으로 옮기면 된다. 내가  쓴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을 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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