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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Nov 22. 2021

소소한 기록이 글감이 된다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

첫 문장을 쓰기까지 제법 긴 시간 고민하게 된다. 운이 좋으면 몇 분 만에 첫 문장을 쓰기도 하지만 운이 정말 없는 날은 첫 문장도 시작 못하고 노트북을 덮기도 한다. 떠오로는 수많은 잡념 중 글감이 될 만한 생각을 끄집어내는 게 만만하지 않다. 왜 쉽게 생각을 찾지 못하는지 고민해보기도 했다. 남들은 쉽고 빠르게 잘도 쓰는데 나는 그게 왜 잘 안 되는지. 생각은 꼬리에 꼬리에 물고 이어진다. 이어지는 생각 중 방향을 정하면 그것과 연관된 생각들이 이어진다. 연관 생각들이 이어지다 보면 어느 순간 쓰고 싶은 글감이 번쩍 떠오르기도 한다. 그런 과정을 돌이켜보면 글감을 찾는 방법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어지는 생각들 중 하나를 잡고, 잡은 생각을 좀 더 구체화시키기 위해 집중하는 것. 집중할 땐 쓸모없는 생각이 끼어들지 못한다. 평지에 물길을 내듯 골을 파주면 물이 흐르게 되는 이치인 것 같다. 생각이 흐를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면서 글감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사람은 하루 종일 5-7만 가지 생각을 한다. 거의 모든 생각은 쓸모없는 것들이다. 쓸모없다고 생각하면 의미 없이 흘려보낸다. 반대로 하찮지만 쓸모 있다고 여기고 메모해두며 새 글감이 될 수도 있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번개처럼 지나가는 기억도 주제 목록에 첨가될 수 있다. 잇몸이 부실해서 고생했던 할아버지, 지난 유월을 물들이던 라일락 향기, 발등 부분만 다른 빛깔인 운동화를 신었던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 등등. 어떤 것이든 모두 글의 재료가 된다. 글을 쓰고 싶은 주제가 떠오르면 언제라도 노트에 적어 두라. 그것이 한 단어이든 한 문장이든 이러한 목록들은 당신이 다음에 글을 쓰고자 할 때 요긴하게 끄집어내어 사용할 수 있는 글감이 될 것이다."


흰 종이를 마주 하고 고민하다 결국 꺼낸 든 이야기 중 대부분은 일상의 단면들이다. 잠시 스쳤던 순간, 어제 있었던 인상 깊었던 사건, 그때의 감정, 느낌 등으로 시작하게 된다. 만약 그런 것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록해 두었다면 글을 쓰기 훨씬 수월하지 않았을까? 3년 넘게 매일 글을 쓰고 있지만 메모하는 습관은 좀처럼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게으른 것도 있다. 얼마 전부터 매일 일기를 쓴다. 아침 10분 동안 전날 있었던 일이나 감정, 느낌 중 하나를 선택해 쓴다. 의식적으로 10분 동안 A5 한 장을 채우려고 한다. 10분으로 제한한 건 생각을 막힘없이 써 내려가기 위해서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지 않고 맞춤법, 표현, 어휘 등도 무시하고. 노트에 쌓이는 글들은 내 나름의 목록을 만드는 과정이다. 글감이 필요한 절체절명의 순간 활용할 수 있는 최고의 '담보'라 생각한다. 써 내려가는 순간은 오롯이 펜과 생각에만 집중한다. 다 쓰고 나면 뿌듯함이라는 선물을 받는다. 매일 써야 한다는 강박은 동기부여가 된다. 꾸준히 쓰는 나 자신을 칭찬한다.


글쓰기의 시작은 흰 화면을 마주하면서부터다. 메모를 하고 일기를 써도 화면과 마주하는 순간은 언제다 두려움이 먼저 올라온다. 잘 쓸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함께. 글쓰기에 진심인 사람, 글을 더 잘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런 고민은 당연한 것 같다. 이런 고민들이 결국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글감도 차곡차곡 쌓아두면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과정을 전쟁에 비유한다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건 반드시 이기겠다는 자신감이다. 자신감은 철저한 준비에서 비롯된다. 이중 삼중의 계획과 잘 정비된 무기, 매일 실전과 같은 훈련의 반복. 이러한 자세로 정신 무장을 하면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을 하게 될 테니 말이다. 좋을 글은 꾸준한 연습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꾸준한 연습은 일상의 반복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소소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당연히 좋은 글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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