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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Nov 20. 2021

말이 안 되면 글로 소통하면 되지

못하는 건 접어두기로


새로운 직업을 갖고 싶었다. 스물여섯부터 건설업에서 일했다. 처음 몸 담았던 인테리어 회사는 4년 만에 사장의 야반도주로 문을 닫았다. 경력도 경험도 남는 게 없는 허송세월이었다. 서른 살, 지인의 도움으로 제대로 된 직장에 취업했다. 그때는 적성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내 앞으로 깔린 빚이 있어서 당장 일 할 곳이 필요했다. 그렇게 담근 발을 16년째 못 빼고 있었다. 마흔이 넘어가면서 좀 더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싶었다. 이전까지 8번의 이직은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밧줄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언제 퇴직할지 모르지만 그때까지라도 안정적인 직장에서 근무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나이도 많고 경력도 부족한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2018년, 1년 동안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새로운 직업을 탐색했었다. 막연하게 새로운 직업을 찾기보다 지금까지 해온 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알아봤다. 지인 중 나처럼 같은 업종에서 전공을 살려 개인 사업을 하는 이들에게 물었다. 그들의 답은 한결같았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세요. 저도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러고 싶네요."

직장이 전쟁터라면 직장 밖은 지옥이라는 말이 있다. 그들의 대답은 차라리 버틸 수 있다면 전쟁터에서 살아남으라는 의미였다. 결국 직장을 나오게 되겠지만 그때까지 충분히 준비를 하는 게 더 낫다고 했다. 20년을 버텨온 나를 돌아봐도 천직이라 생각할 만큼 최선을 다 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밥벌이로써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직장에서도 시키는 일만 잘했지 스스로 나서서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 개인 사업을 한다고 직장 다닐 때보다 더 잘할 거란 보장이 없었다. 

 

다음으로 눈을 돌린 건 자영업이었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퇴직할 즈음 끌어 모을 수 있는 돈으로 시작하는 장사였다. 당시 정부 통계와 각종 언론에서 쏟아내는 뉴스는 자영업의 전망은 암울했다. 15시간 동안 닭을 튀겨도 직장 월급보다 못 번다는 기사도 있었다. 물론 모든 자영업자의 미래가 어두운 건 아니었다. 일부는 차별화된 전략으로 시장을 선점해 승승장구했다. 그들의 성공한 모습에 현혹되기도 했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또 다르다. 남들은 짐작할 수 없는 처절한 노력이 있었다. 과연 내가 그만한 노력과 차별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지레 겁부터 먹었던 것 같다. 된다 안 된다 만 생각하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각오도 없이 덜컹 시작했다간 실패자 통계에 숫자만 더할 것 같았다. 결국 자영업도 답이 아니었다. 또 고민의 시간이 이어졌다. 여전히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질문하고 답을 이어갔다.


《인포프래너》,《부의 추월차선》,《메신저가 되라》등 여러 권을 통해 '메신저'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다. 근사해 보였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모든 걸 혼자 할 수 있고, 노력하는 만큼 손에 쥘 수 있는 보상도 많았다. 필요한 건 나의 경험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가치를 나누면서 그들을 돕겠다는 마음. 그들에겐 매장이 필요하지도, 초기 자본금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필요한 건 전할 수 있는 명확한 가치만 준비하면 됐다. 이런 가치를 사람들은 '콘텐츠'라고 불렀다. 또, 그들이 활동하는 곳도 오프라인 온라인을 넘나들었다.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로도 연결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광활한 시장과 무한한 가능성이 있었다.  그 안에서는 나이도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이는 장점이 될 수 있었다. 공부에는 나이도 은퇴도 필요 없다. 내가 만들어낸 유무형의 가치는 숨이 멎은 뒤에도 시간을 거슬러 전해질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시도하는 데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고, 실패해도 손해 볼 게 없다는 게 매력이었다. 내가 전할 수 있는 가치를 위해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깊이를 더하는 걸로 충분했다. 다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블로그를 시작했다. 콘텐츠에 대한 고민이나 준비도 없이 무턱대고 시작했다. 무엇을 전할 수 있을지 흐릿했다. 또다시 고민의 시간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방법을 조금 달리했다. 고민하는 과정을 블로그에 남겼다. 고민하며 적은 글들이 하나씩 쌓여갔다. 서툰 글 솜씨로 내 생각을 꺼내 보였다. 논리적이지도, 유려한 문장도 아니었다. 날것의 생각과 거친 표현이었지만 사람들은 공감했다. 내가 하는 고민을 그들도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다고 했고, 누군가는 나의 도전을 응원해 주었다. 같은 고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들과 '소통'을 하게 되었다. 내가 남긴 글에 그들은 글로 말을 걸어왔다. 그들의 글에 나도 글로 답을 했고 그렇게 대화를 이어갔다. 마음 맞는 친구와는 다양한 주제로 하루 종일 대화도 할 수 있다. 서로 마음을 터 놓으면 못할 말이 없는 것처럼.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글로 쓰고 싶은 내용도 다양해졌다. 진로, 은퇴, 가족, 육아, 친구, 돈 몸에 닿는 모든 것들에 대해 글로 썼다. 내 글에 누군가는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고, 누군가는 아픈 과거를 꺼내 놓기도 했고, 누군가는 위로의 말을 듣고 싶어 했다.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마음을 다해 말을 건넸다. 그때 알았다. 글의 위력을. 얼굴 보고 대화하는 것도 공감과 위로를 전할 수 있지만, 온라인 세상에서는 글로써 얼마든지 소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1년 간의 탐색 끝에 글을 쓰고 가치를 전하는 메신저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어렵게 선택한 이상 제대로 해내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3년을 이어오고 있다. 그 사이 몇 번의 강연, 수백 편의 글을 쓰고 책까지 냈지만 여전히 말은 서툴고 글 재주도 부족하다. 그래도 내 선택에 후회는 없다. 나에게 맞는 직업을 선택했다는 확신이 시간이 갈수록 강해진다. 20년 이상 해왔던 일을 포기했기에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건 당연하다. 이 일이 내 미래를 책임져 준다는 보장도 없다. 어쩌면 월급쟁이 때 보다 수입이 시원찮을 수 있다. 내 가치를 인정받기까지 더 긴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자칫 발 앞에 공을 차 보지도 못하고 포기할 수도 있다. 반대로 시간이 가고 경험이 더해질수록 나의 천직이 될 수도 있다. 어떤 경우이든 밑지는 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설령 실패해도 그 시간 동안 배우고 익힌 것들은 다른 일에도 얼마든 활용할 수 있다. 실패든 성공이든 아직 어느 곳에도 닿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명확하다.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쓴 글로 사람들과 소통할 때면 나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있다고 느낀다. 단 한 사람일지라도 내 글과 말에 0.1도의 변화만 생긴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 믿는다. 20년 동안 해온 일에서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이 일을 통해서 알아가고 있다. 나 또한 사람들의 작은 변화를 양분 삼아 느리지만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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