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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Dec 09. 2021

5년 이면 충분할까?

습작하는 김 작가 - 01


5년 동안 쓰레기 같은 글말 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보다 더 많은 세월 동안 글쓰기를 멀리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나탈리 골드버그




부정하고 싶지만 뼈 때리는 말이다. 초등학교 때 방학숙제로 내주는 일기 쓰기 중고등학교 때는 글쓰기에 대한 숙제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대학 때 리포트는 여기저기 주워온 글을 짜깁기 수준으로 써냈다. 그러다 군대 가서 제대로 글쓰기와 마주하게 된다. 일주일에 한 번 편지 쓰는 시간. 군기 바짝 들어 자대 배치받은 이등병. 매주 수요일 밤 9시 편지를 쓰라고 한다. 받는 사람이 정해지지 않았다. 처음 몇 주는 부모님이게 쓴다.  부모님에게 쓰면 한 두번 답장은 온다.  어쩔 땐 용돈도 담겨 오기도 한다. 부대에서 구르는 시간만큼  생활도 적응이 되고 바짝 든 군기도 세월앞에 벌어지는 옹이처럼 헐거워진다.


편지의 내용도 달라지고 분량도 줄어든다.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다는 내용에서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적응하고 있다고, 적응이 되니 할 일도 많아져 편지 쓸 시간도 줄어들 거란 운을 뗀다. 그러고는 수신인이 달라진다. 친구, 여자 사람 친구, 대학 동기 대상을 달리하며 보낸다. 그것도 두세 달을 못 넘긴다. 이등병 6개월 동안 보낼 수 있는 사람에겐 다 보낸다. 일병이 되면서 편지 쓸 사람은 물론 쓸 말도 없고 쓰는 것도 귀찮아진다. 그렇게 군대 글쓰기를 지나고 나면 복학, 복학과 동시에 취업 준비에 들어간다. 입사지원서의 꽃 '자기소개서'.


늘 시작은 똑같다. '엄하신 아버지와 자상하신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란 저는 어려서는 개구쟁이였지만 자라면서 선생님들의 영향을 받아 성실한 학생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광탈을 부르는 뻔한 자소서를 몇 시간씩 쓰고 있었다. 누구에게 물어볼 생각도 못 했다. 내 자소서이니 내가 쓰는 게 최선인 줄 알았다. 떨어지면 운이 없었다고만 생각했다. 이유 없는 무덤이 없다고 했다. 떨어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몇 달을 정성 들여 수백 곳에 지원하면 운 10 기 0 말 그대로 운빨로 겨우 합격한다.


본격적인 사회생활. 보고서, 기획서, 기안서, 공문, 경위서(요건 안 쓰는 게 좋고) 등 각종 문서를 써야 하는 현실에 놓인다. 내용은 Ctrl+c , Ctrl+v 수준이다. 선배들이 써놓은 양식에 단어 몇 개 바꾸는 게 전부다. 그러니 보고도 보고 같지 않고, 기획도 기획 같지 않고 기안도 기안 같지 않은 문서만 써낸다. 능력은 뒤처지고 높은 사람들 눈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마흔이 넘어가면서 요령도 생기고 눈치도 생겼지만 정작 몸에 생기는 사그라들고 있다. 몸에 밴 요령으로 조건반사적인 글들을 써낸다. 그래도 어린 직원들보다는 먹은 밥그릇 수가 많으니 유려한 문장으로 써내긴 한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온갖 미사여구, 두루뭉술한 단어, 어디로 가는지 모를 모호한 방향성 결국 그 많은 글들은 자신의 자리 보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귀결된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마흔이 되기까지 정규 교육은 물론 직장 생활을 했지만 제대로 된 글을 써본 적이 없었다. 그 시간을 뒤로하고 제대로 된 글을 쓰려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나탈리 골드버그는 '5년 동안'이라고 했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5년도 감지덕지다. 5년 죽었다 생각하고 썼을 때 쓰레기가 아닌 글을 쓸 수 있다는 보장만 있다면 과감히 시도해 보고 싶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10년, 20년, 40년 동안 글을 쓴 대가도  글을 쓰는 건 여전히 어렵다고 말한다. 요술을 부리듯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면  정말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을까? 나는 아직 피부에 난 모공에도 못 미쳐 있는 것 같은데.

언제 뼛속까지 내려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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