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글을 쓰는 사람은 입을 굳게 다물고 앉아서 쓸 수밖에 없다. 이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글쓰기 작업은 아주 단순하고, 근본적이며, 엄숙한 일이다. 인간의 마음은 간사해서 고독한 글쓰기에 전념하기보다는, 친구와 멋진 식당에 앉아 인간의 인내심에 대해 토론하거나 글쓰기의 고통을 위로해 줄 상대를 찾아가는 데 마음이 이끌리게 마련이다. 이렇게 우리는 지극히 단순한 임무를 스스로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나탈리 골드버그
나도 인간이다.
나도 간사해진다.
때로는 유혹에 흔들리기도 한다.
흔들리지만 할 건 한다.
출근 전에 글을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람을 만나고
상사에 까여 기분 잡치고
뜻대로 일이 안 되는 건
대부분 근무 중이나 퇴근 후의 일이다.
하루 중 유일하게 외부의 자극이 없는 건 새벽이다.
3년 넘게 매일 아침 글을 썼다.
정해놓은 분량을 채우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분량은 차치하더라도 매일 쓰는 건 지키고 있다.
글을 썼다는 성취감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성취감에도 인간의 간사함이 끼어든다.
분량을 다 쓰면 기분도 업되고 상쾌해진다.
생각한 대로 안 써지면 설거지가 쌓여 있는 것처럼 찜찜하다.
관점을 달리해보면 간사해질 필요 없다.
썼다는 데 초점을 두면 그만이다.
못 쓴 내용은 틈틈이 쓰면 된다.
글쓰기를 하루만 하고 말게 아니라면 기분에 휘둘릴 이유도 없다.
글을 쓰는 건 그 자체로 받아들이면 된다.
밥을 먹고 양치를 하듯,
집에 돌아가면 제일 먼저 손을 씻듯,
버스에서 내릴 때 교통카드를 찍듯 말이다.
"말할 때는 오로지 말속으로 들어가라, 걸을 때는 걷는 그 자체가 되어라, 죽을 때는 죽음이 되어라."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중
잘 쓰지도 못하면서 잘 쓰고 싶은 욕심.
욕심 때문에 간사해지는 것 같다.
노력한 만큼 잘 쓰면 좋겠지만 잘 쓴다는 기준이 없기 때문에 마음에 둘 이유가 없을 것 같다.
좋은 글은 어느 정도 기준이 있다.
근거에 논리가 명확하고, 맞춤법이나 어휘가 적확하고, 쉬운 표현으로 명쾌하게 의사 전달이 되는 등
몇몇 기준에 따라 좋은 글이라 말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런 기준은 글쓰기의 가장 기본이 아닌가 싶다.
글쓰기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보니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간과하게 되는 게 아닐까.
기본에 충실한 글을 쓰려면 연습하고 배우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지루하리만큼 반복한 결과가 좋은 글이라는 보답으로 이어질 테니 말이다.
하지만 반복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지치고 힘들 때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게 사람의 간사함이다.
조금 빠른 길이 있지 않을까 기웃거리고
남들이 다져놓은 길 위에 무임승차하길 바라기도 한다.
거인의 어깨를 빌리는 건 현명한 방법이기는 하다.
아이작 뉴턴도 말했다.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거인의 어깨 위에서 볼 수 있는 곳도 정해져 있다.
그보다 더 먼 곳을 보길 원한다면 거인들이 했던 노력 이상을 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노력은 덜 들이고 거인이 이룩해놓은 결과를 갖고 싶어 한다.
그것도 그들이 노력했던 시간보다 짧은 시간 만에.
나도 내 주변 거인들의 어깨를 빌려왔다.
안 그러고는 더 나은 실력을 갖는 건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래서 실력이 더 나아졌냐고?
글쎄~
그건 읽는 이들이 판단할 몫이라 생각한다.
거인의 어깨를 빌리든,
스스로 배우고 익히든,
한 가지는 명확해졌다.
좋은 글은 노력하고 연습하는 시간에 비례한다는 걸.
내가 생각한 이 논리에 간사함은 아무짝에 쓸모없다는 걸 알았다.
주변의 잦은 유혹은 눈 한 번 질끈 감으면 이겨낼 수 있다.
지금 당장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게 무엇이고, 해야 할 게 있다면 그것만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