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준 Dec 13. 2021

글을 망치는 이른 퇴고 행위 9가지

습작하는 김작가 - 04

▶ 가만히 앉아서 요점이 뭔지 알아내려고 하거나 세심하게 '주제문'을 다듬어내려고 하기

▶ 주의 깊게 한 단락을 교열하고 윤문한 다음에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기. 특히 처음 도임 단락에서(아직 그 도입 단락이 소개하려고 하는 글의 몸통도 써놓지 않은 상황인데)

▶ (마음에 떠오르는 잘못된 단어 세 개를 적어놓고 그게 어디로 이어지는지 기다려보지 않고) 꼭 맞는 단어 찾아내려고 하기

▶ (우선 임시로 근사치를 적어놓지 않고) 맞춤법이 난 문법 규칙 뒤적거리기

▶ 글의 개요를 정확하게 다듬으려고 애쓰기

▶ 단락이나 장의 순서 고민하기, 위치 재배열하기

▶ 가만히 앉아서 누군가 비판할지도 모르는 내용 생각하기

▶구절, 문장, 단락을 다시 또다시 읽으면서 더 정확하고 더 우아하고 더 지적이고 덜 투박하게 만들려고 말을 바꾸고 또 바꾸기

▶ 서체, 글자 크기, 여백 등의 문서 형식과 디자인을 세심하게 계획하기


이상은 모두 때 이른 퇴고 행위들이다. 모두 퇴고 단계에서는 딱 어울리지만, 아직 초고를 쓰는 단계에서는 방해가 된다. 초고를 쓸 때는 생각과 말을 되도록 많이 생산해내려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때 이른 퇴고는 여러 면에서 비생산적이다. 실수를 발견하고 교정하려는 마음가짐이 되면 새롭고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 애를 먹게 마련이다. 아이디어를 펼치기도 전에 실수를 발견하고, 피상적인 차원에서 바로잡고 고치려는 행위 때문에 사고 과정에서 주의가 분산된다.  게다가 나중에 어차피 날려버릴 부분을 고치거나 바로잡느라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아니면 더 심각하게 매만지느라 시간과 정력을 너무 많이 쏟은 나머지 내다 버려야 할 부분을 감히 내려놓지 못하고 만다.


《힘 있는 글쓰기》 - 피터 엘보





나는 초고를 쓰면서 퇴고도 일부 한다. 

퇴고를 병행한 초고를 다 쓰고 나면 다시 한번 퇴고를 한다. 

내가 퇴고를 병행하게 된 데는 시간 때문이다. 

나는 주로 출근 전 2시간 동안 글을 쓴다. 

그 시간 동안 대략 A4 한 장 분량을 채우려면 마냥 느긋하게 쓸 수 없다. 

그렇게 완성된 글을 블로그나 브런치에 올리는 게 정해놓은 원칙이다. 

그러다 보니 쓸 때 퇴고를 병행해야 제시간에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연습이 되고 습관이 되다 보니 요즘도 초고 + 퇴고하는 형태로 글을 쓰게 되었다.


퇴고를 병행할 때 장점은 문장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단점은 생각이 끊긴다는 점이다.

생각이 끊기면서 다음 내용을 생각해 내는 데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때 억지로 생각하기보다

앞서 쓴 내용을 다시 읽으면서

글의 방향이나 주제를 바로잡고

불필요한 문장을 수정한다. 

즉 퇴고를 한다. 

생각이 안 난다고 손이 멈추는 게 아니라

피드백을 하며 생각에 다시 시동을 건다고 할 수 있다.


글쓰기를 다루는 거의 모든 책이 초고를 쓸 때

막힘없이 한 번에, 분량을 채운다는 생각으로,

논리를 따지지 말고 손이 가는 대로 쓰라고 말한다.

다수가 그렇게 말하는 대로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다.

초고는 말 그대로 처음 떠오르는 생각을 적는 거다.

떠오르는 생각은 빠르게 적어야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어진다.

그때 새로운 아이디어도 떠오르게 된다.

초고 내용이 덜 논리적이어도 상관없다.

논리를 채우는 건 퇴고에서 하면 된다.


나는 초고를 초고처럼 쓰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매일 정해놓은 시간 안에 

쓰기 위해 만들어 놓은 환경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초고를 다 쓰고 시간을 두고 퇴고를 한 뒤 

블로그나 브런치에 발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굳이 그날 쓴 글을 바로 발행하는 건

일종의 연습이다.

한 편의 글을 정해진 시간 안에 완성하는 것도

효과적으로 쓰기 위한 연습이 된다.

빈약한 논리를 보완하기 위해 책을 읽고 공부하고

부족한 어휘나 표현, 맞춤법을 익히기 위해 책을 읽고 공부하게 된다.

일종의 선순환이라고 생각한다.


퇴고를 병행하며 글을 쓰면서 분량까지 맞추려면

버릴 문장을 최소화해야 한다. 

일단 완성되면 버리는 문장이 없게 끔 쓰는 게 내 목표다.

실제로도 그렇게 완성시킨다.

물론 퇴고를 거듭할수록 더 나은 글이 될 수도 있다.

퇴고는 '멈춘다'라는 말처럼 

스스로 정한 때에 손을 놓아야 한다.

한 편을 완성한 뒤 피드백을 하면서

다시 수정하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초고 + 퇴고 방식의 글쓰기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매일 10분 글쓰기를 한다.

10분 동안 A5 한 면을 채우는 연습이다.

손글씨로 떠오르는 생각을 막힘없이 써 내려간다.

한 페이지를 다 채우면 거의 10분이 된다.

글의 내용이나 구성, 맞춤법, 표현은 무시한다.

일단 떠오르는 생각에 집중하고 쓰려고 한다.

이 또한 퇴고 없이 한 번에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나만을 위한 훈련이다.


언제까지 초고 + 퇴고 방식으로 쓸 수는 없다.

정설로 받아들이는 

초고를 완성하고 퇴고를 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는 있다.

다만 아직 직장에 매여 부족한 시간 내 글을 써야 하는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어찌 되었건 매일 꾸준히 연습하면

머지않아 빠르게 논리적인 글을 써내는

'힘 있는 글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전히 첫 문장이 어려운 나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