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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Dec 11. 2021

여전히 첫 문장이 어려운 나에게

습작하는 김작가 - 03


"시작과 끝을 일거에 해결하는 방법도 있다. 바로 수미상관이다. 시작에서 암시만 하고 끝에서 정체를 드러낼 수도 있고, 시작에서 쓴 말을 끝에서 반복함으로써 강조할 수도 있다. 바로 시작과 끝의 대구이다. 수미상관은 영화에서도 자주 쓰인다. 수미상관을 잘 활용하면 독자에게 잔잔한 미소와 여운을 선물할 수도 있고, 메시지를 각인하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강원국의 글쓰기》 - 강원국




첫 문장을 쓰는 건 언제나 어렵다. 첫 문장에는 많은 의미가 담기기 때문이다. 글의 방향, 주제, 의미, 생각 등 쓰고자 하는 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첫 문장을 강조하는 작가들은 첫 문장에 따라 다음 문장을 읽지 말지 결정되기도 한다고 말할 정도이다.  인터넷 포탈에서 뉴스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화장실에 앉아 있는 5분 남짓 동안 뉴스를 자주 본다. 메인 뉴스, 사회, 경제, 스포츠, 연예 등 여러 카테고리에서 눈에 띄는 기사를 먼저 선택하게 된다. 어떤 내용인지 짐작할 수 있는 한 문장에 이끌려 클릭하게 된다. 첫 문장을 읽고 기대에 부응하면 다음 줄로 이어지고, 생각했던 것과 다른 내용이면 바로 되돌리기 버튼을 눌러버린다. 새로 고침  한 번에 새 뉴스가 줄을 선다. 그 사이에서 사람들 눈에 띄는 기사는 소수일 뿐이다. 그러니 첫 문장에 목숨을 안 걸 수가 없다.


뉴스는 기업의 이윤과 연결되니 그렇다 치자. 블로그나 SNS에 남기는 글도 사정은 비슷한 것 같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원한다. A4 한 장 분량의 글을 읽고 있을 만큼 한가롭지 않다. 한가하기보다 성질이 급해졌다고 할 수 있다. 굳이 그 글이 아니라도 다양한 글과 재미있는 내용을 얼마든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글을 쓰는 사람은 선택받을 수 있을 만큼 강렬한 한 방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첫 문장이다.


사람들에게 보이는 글은 퇴고를 거친 글이다. 99% 확신할 수 있을 만큼 누군가에게 보이는 글은 충분히 퇴고한  글이다. 강력한 첫 문장도 퇴고를 거쳐 완성된다. 초고부터 완벽한 첫 문장은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첫 문장을 잘 쓰기 위해 그것만 붙잡고 있는 건 쓸모없는 짓이다. 오히려 빛의 속도로 초고를 쓴 뒤 나무늘보가 100m 달리기를 하듯 퇴고하는 게 더 낫다. 완성된 글의 완성도를 높이는 건 퇴고에서 완성된다. 일필휘지 할 만큼의 실력이 아니라면 퇴고에 더 신경 쓰고 첫 문장에 압박은 잊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다.


첫 문장을 잘 쓰든, 좋은 글을 잘 쓰든 연습은 필수다. 쓰는 연습을 안 하면서 강력한 첫 문장만 쓰길 바라는 건 처음 스키 부츠를 신고 제일 높은 곳에서 활강하길 바라는 것과 같다. 다양한 글을 써보면서  내용에 적합한 첫 문장을 찾아가는 연습이다. 퇴고 과정에서 해보면 좋은 연습이다. 처음 쓴 첫 문장에서 단어를 바꿔보거나 순서를 바꿔보는 거다.  그것도 마음에 안 들면 글의 주제 문장을 가져오는 것도 좋다. 그것도 아니면 내용과 상관없는 뜬금없는 문장도 괜찮다. 일단 독자의 시선을 끄는 데는 성공한다. 위험부담은 있다. 뒤에 이어지는 내용이 별로면 안 하니만 못한 게 된다. 사용에 주의를 요한다. 


3년 11개월째 글을 쓰고 있다. 매일 연습하는 애송이다. 개성도 없고 문체도 없고 실력은 더더욱 없다. 잘 쓰고 싶은 욕심만 넘쳐난다. 연습을 할수록 첫 문장에 의식하게 된다. 어찌 되었건 첫 문장이 한 편의 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읽히는 글을 쓰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여기에 하나만 덧붙이자면 당연한 말이겠지만 글의 내용도 중요하다. 첫 문장이 독자의 호기심을 끄는 낚시라면 글의 내용은 독자의 마음을 낚는 틀 채가 되어야 할 거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면 첫 문장도 자연스레 따라올 거라 생각한다. 주제가 명확하고 의미가 선명한 글이라면 어떤 문장을 앞에 두더라도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장황하게 썼지만 나는 여전히 첫 문장을 쓰는 게 어렵다. 매번 연습이고 실험이고 시험이다.  피부가 좋은 사람은 굳이 화장을 두껍게 안 한다. 무결점의 피부를 드러내는 걸 더 당당하고 아름답게 여기기 때문이다. 좋은 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내용 전달이 명확한 글이라면 굳이 첫 문장이라는 걸치러 나 미사여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내공이 부족한 나는 지금 이 글에서도 바를 수 있는 한 최대로 두꺼운 칠로 한 편의 글을 마무리했다. 이 글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을지 모르겠지만 밥벌이로서의 글로는 아직 모자라지 싶다. 포털 사이트 메인에 뜰만큼의 수려한 글을 쓰는 때가 오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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