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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Feb 07. 2022

나를 위한 점심시간, 15개월째

확실히 달라진 일상

학교를 다닐 때도 교칙이 있었다. 직장에서도 사규가 있다. 어느 조직에 속하든 내 의지의 자율보다 조직이 정해 놓은 규율이 먼저이다. 더 자고 싶다고 출근 시간을 어길 수도 없고, 여행을 가고 싶다고 허락 없이 휴가를 낼 수도 없다. 조직의 이익을 위해 직급과 직책에 맞는 업무를 우선시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조직의 의사를 내 의견으로 착각하고 당연한 듯 따르게 되는 것 같다. 월급에 모든 게 포함되어 있다는 합리화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꾹꾹 눌러 두게 된 것 같다. 규율만 있을 뿐 자율은 없었다. 

규율과 자율의 구분이 필요했다. 회사가 정해놓은 규칙을 따른다고 내 미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조직은 자기 소리를 내는 조직원을 원하지 않는다. 정해진 규칙을 따르며 높은 생산성을 내는 직원만을 필요로 할 것이다. 자기 목소리를 낸 다는 건 규칙에 반대한다고 비칠 수 있다. 그래서 점심을 따로 먹겠다는 말에 색안경부터 끼고 봤을 수도 있다. 한 사람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인해 전체 분위기를 흐릴 수도 있다고 걱정할 수도 있다. 그럴 때면 조직에 충성도 높은 이 가 나서 후회적인 표현으로 회유를 한다. 10년 이상 직장 생활을 하면서 혼자 밥 먹을 생각도 못 했지만 설령 그렇게 하려고 했어도 누군가의 설득에 이내 포기하고 말았을 거다. 자율의 의미를 몰랐었다. 당연히 규칙이 먼저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 믿음의 결과는 그저 그런 직장인, 내 시간이 없는 월급쟁이일 뿐이었다. 


직장에서 혼자 점심을 먹은 지 15개월 째다. 거절을 못 하는 성격 탓에 점심시간만 되면 한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상사 눈치 보며 먹는 한 끼는 이맛도 저 맛도 아니었고 고픈 배도 채워주지 못했다. 거절을 결심한 계기는 건강검진 결과지를 손에 들 고부터였다. 더 이상 놔두면 내 몸이 망가질 것 같았다. 마음에 결심을 하고 출근한 월요일, 점심시간이 다가오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뭐라고 설명하지? 혼자 먹겠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말도 못 꺼내는 건 아닐까? 다른 직원은 점심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지만 나는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문한 점심이 도착하자 때를 맞춰 사무실을 나서는 데 사장님이 묻는다.

"점심 같이 안 먹나?"

"네. 당분간은 나가서 먹으려 합니다. 식단관리 좀 해보려고요."

"식단관리?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 건강검진 결과가 별로 안 좋아서 먹는 거라도 신경 써 보려고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 길로 사무실을 나와 혼자 점심을 먹기 시작했고, 15개월째 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직원들도 얼마나 갈까 걱정하는 눈치였지만 1년 이상 이어가는 걸 지켜보고는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밖에서 점심을 먹는다고 내 시간을 더 쓰는 건 아니었다. 정해진 1시간 내 모든 걸 해결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당연하다. 내 건강을 지키는 건 내 몫이고 그로 인해 정해진 규칙을 어겨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회사가 정한 규칙 속에서 내 의지대로 점심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했다.


밥 한 끼 먹으면서 유난을 떤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계속 혼자 밥 먹으면 사람들과도 멀어진다고 걱정하는 이도 있었다. 나도 처음 시작할 땐 그런 걱정이 있었다. 소외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다르게 생각했다. 점심을 같이 먹는다고 없던 우정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밥 한 끼 먹으면서 인생을 바꿀 순간이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물론 그런 시간이 쌓여 서로에게 애정도 생기도 관심도 갖고 관계도 돈독해질 수는 있다. 바꿔 생각해보면 굳이 점심식사가 아니라도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업무적으로 상대방을 배려할 수도 있고, 불필요한 요구를 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오히려 규칙을 지키며 내 시간을 갖는 걸 지켜보면서 다른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그게 호감 일 수도 있고 부러움 일 수도 있다. 자신이 갖지 못한 모습에 대리 만족을 느낄 수도 있다. 내 의지대로 점심 1시간을 보내고 나면 오히려 자신감이 붙는다. 스스로 정한 규율을 지켰고 내 시간을 내 의지대로 사용한 것에 대한 뿌듯함 같은 것이다.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들에 반기를 들면서 일상에 작은 변화가 생겼고, 변화를 통해 스스로 지킬 규율을 만들었다. 조직이 정해놓은 규칙 안에서 스스로 만든 규율을 지키며 이전과 다른 일상을 살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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