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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Feb 08. 2022

사람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운전석 사이드 미러에 적혀 있는 문구이다. 운전자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기 위해 운전석 사이드 미러는 볼록 유리를 사용한다. 볼록 유리는 일반 유리보다 시야가 넓지만 가까운 사물을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런 문구를 넣는다고 한다. 다양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책을 읽기 전 몰랐던 것들을 하나씩 알게 되면서 손에 하나씩 쥐기 시작했다. 알면 알수록 멀리 있던 것들이 아니었다. 내 주변의 것들 중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관심 주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시간, 습관, 태도, 말투, 성실, 노력 등. 각각의 의미를 되새기며 삶의 태도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거창하고 대단한 게 아니었다. 거울로 보니 멀리 보였을 뿐, 실상은 내 주변 가까이에 늘 존재했었던 것들이다. 그렇게 시야가 넓어질수록 나 혼자만 알고 있는 게 미안해졌다. 모 광고의 '정말 좋은 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라는 문구처럼 책이 좋다는 걸 알리고 싶었지만 방법이 문제였다. 


블로그를 2년 가까이 운영했지만 조회수가 생각만큼 늘지 않았다. 블로그에 회의감이 든 그때 눈에 띈 게 인스타그램이었다. 블로그보다 접근이 쉬웠고 게시물 작성도 어렵지 않았다. 책을 주제로 사진으로 소통하는 건 블로그보다는 쉬울 것 같았다. 매일 읽는 책을 기록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기록하는 습관이 책을 더 읽게 만드는 동기가 되기도 했다. 블로그를 시작할 때도 나를 아는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클래식 음악을 안 듣던 사람에게 클래식을 권하면 인상부터 쓰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인스타도 마찬가지였다. 주변 사람에게 알리기보다 모르는 사람에게 팔로워 요청을 했다. 마흔 중반, SNS를 들여다볼 여유 없는 일상이다. 나는 목적을 갖고 시작했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쩌다 잘못 눌러 계정이 생기고 그냥 방치하는 게 대부분이다. 친구 중 에도 한 두 명 그래 보였다. 그때 고등학교 동창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활발하진 않았지만 방치한 것 같지도 않았다. 내가 올리는 게시물에 꾸준히 관심을 보였다. 내 게시물이 쌓일수록 그 친구의 반응도 꾸준했다. 하루는 《마흔의 돈 공부》서평에 그 친구가 댓글을 남겼다. 그 책의 저자인 단희 선생님의 유튜브를 자주 본다고 했고, 그분이 쓴 책이라 관심이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친구에게 묻지도 않고 책부터 선물했다. 선물하면서 기대감도 들었다. 극적이지 않더라도 천천히 시작할 수 있는 계기이길 바랐다. '이 책이 네가 얻고 싶은 것의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짧은 인사만 덧붙였다.     


사람들은 책이 좋다는 걸 다 안다. 다만 시간이 없고 관심이 적어 손에 들지 않을 뿐이다. 그중 어떤 계기를 통해 절실해진 일부만이 책을 펼친다고 생각했다. 절실함은 대개 자기 안에서 일어난다. 충격적인 사건을 겪거나, 스스로 변화를 결심하는 등의 특별한 계기가 발판이 된다.  주변 사람이 억지로 동기부여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었다. 불행히도 그런 계기가 쉽게 생길지도 않고, 생긴다 해도 선택은 오롯이 각자의 몫일 수밖에 없다. 별일 없이 잘 사는 이들에게 '변화'라는 단어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쥐고 있는 걸 놓을 용기는 선뜻 생기지 않는다. 나처럼 마흔 중반까지 살았다면 더더욱 그렇다. 살아온 시간만큼을 살아야 하고, 자식까지 키우며 노후도 준비하는 건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을 해야 할 시기를 앞두고 있지만 정작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닥쳐서 급하게 준비하면 열에 아홉은 실패를 맛보게 될 수도 있다. 그 친구에게도 망설임 없이 책을 선물한 이유도 미리부터 준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 책을 선물 받은 친구도 새롭게 각오를 다지고 행동으로 옮기까지 1년의 시간이 더 걸렸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읽게 되었다며 얼마 전 인사를 전했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생각도 다를 수밖에 없다. 나에게 좋은 게 그들에게도 좋으라는 법은 없다. 저마다 받아들이는 시기가 다를 뿐이다. 그들에게 내 생각만 주입하면 거부감만 들뿐이다. 내가 정말 그들에게 좋다는 걸 알리고 싶으면 내가 좋다는 걸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된다. 책을 통해 내가 얻는 걸 보여주고, 글을 쓰며 내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책을 읽을지 말지를 그들이 선택하듯,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나를 보여주는 것도 내 선택일 뿐이다. 선택을 강요하기보다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오히려 더 가 닿을 거라 믿는다. 그러니 좋은 걸 어떻게 표현하려고 하기보다 나 스스로 즐기는 게 먼저인 것 같다. 즐거움은 가장 강력한 전파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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