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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n 26. 2022

삶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것

2022.06.26  07:13



어떤 기억은 쉽게 떠오르고, 어떤 기억은 떠올리고 싶어도 떠오르지 않는다. 전자는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일 수 있고, 후자는 잊고 싶은 경험일 수 있다. 잊고 싶은 경험은 말 그대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상황이다. 떠올리고 싶지 않다는 건 아픔, 상처, 무시, 곤란 등 부정적인 상황일 수 있다. 나를 지키기 위해 나도 모르는 사이 깊은 곳으로 묻어두었을 수 있다. 정확한 용어는 모르겠지만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뇌 반응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일 먼저 과거의 나를 되돌아보라고 한다. 흔히 아는 최면을 통한 방법이 여기에 해당한다.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최면이라도 받고 싶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때 어떤 문제가 있었던 건 확실하다. 한두 번 겪은 게 아니었다. 어느 시점, 어떤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출발점을 기억하지 못하겠다. 기억해내는 것도 한계가 있다.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붙잡고 있을 수도 없다. 지금껏 과거의 나에 대해 수백 편의 글을 썼다. 다양한 문제가 있었다. 쓰면서 바로 잡은 부분도 있고, 고쳐가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불편한 한 가지가 있다. 불편을 넘어 심각하다. 언제까지 말을 못 한다는 핑계 뒤에 숨어 있을 수 없다. 어떤 이유로 일상의 대화가 불편해졌는지 알아야 한다. 


남들에게 당연한 게 나에겐 당연하지 않다. 대화는 용건이 있을 때만 하는 게 아니다. 가족끼리는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동료 사이에는 전날 있었던 일이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고, 친구 사이는 경험이나 가치관을 편하게 주고받는 게 대화다. 어떤 형식이나 격식을 갖출 필요 없다. 특별한 상황이나 대상에게만 예의를 갖춰 대화할 뿐이다. 가족, 동료, 친구사이마다 대화의 범위는 정해져 있다. 서로 말은 안 해도 어느 정도 선을 지키며 대화를 한다. 말할 것과 말하지 않아도 되는 범위를 지키는 게 대화의 기본이기도 하다. 나는 말해도 되는 것도 쉽게 말하지 못하고, 말하지 않아야 할 건 더 못한다. 거의 모든 대상에게 미러 거리를 두고 대화하려고 한다. 일종의 벽을 먼저 두르고 대화를 시작한다. 상대방도 넘어오지 못하고 나도 넘어가지 않겠다는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놓는다. 선을 그어놓으면 할 말보다 하지 못하는 말이 많아진다. 그때부터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머리에서 한 번 걸러 나오는 게 대부분이다. 그래서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상대방이 듣기에 불편할 만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런 나에게 누군가는 점잖다고 말한다. 또 누군가는 말을 조리 있게 한다고 표현한다. 나는 이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최근에야 알았다. '당신과 말하는 게 불편하다'라는 의미인 걸.


아내의 한 마디에 다시 입을 닫았다. 서로에게 불만 없는 부부는 없다. 불만을 말하고 바로잡으로 관계를 개선하는 게 부부이다. 이때 필요한 게 대화다. 지지고 볶든 대화하면서 잘못된 부분을 고쳐가야 한다. 하지만 어느 한쪽이 말하지 않으면 고칠 방법이 없다. 문제가 생겼을 때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대화는 관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도구이다. 자신의 생각, 일상, 감정을 자유롭게 주고받아야 관계가 돈독해진다. 말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독심술을 갖지 않는 이상 상대를 이해할 방법은 없다. 대화를 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입을 닫고 고민하다 보면 쓸데없는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문제에서 벗어나 다른 문제를 끌어들이는 꼴이다. 생각이 관계를 더 악화시킨다.


대화가 익숙하지 않으니 문제가 생겼을 때도 방법을 찾는 게 서툴다. 거의 모든 문제는 대화로 풀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행동은 그러지 못한다. 한심하다. 언제까지 말을 못 한다는 핑계를 내세울 수 없다. 나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어 가 보고 싶다. 어디서부터 어떤 계기로 지금 이런 내가 되었는지 알고 싶다. 문제를 똑바로 볼 때 해결책도 나온다고 했다. 내 문제가 무엇인지 똑바로 알고 싶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바로잡고 싶다. 남들에겐 쉬운 게 왜 나에게만 어려운지 밝혀내고 싶다. 혼자 힘으로 안 되면 전문가의 도움도 받고 싶다. 필요하면 최면이라도 받아서 출발점으로 돌아가 보고 싶다. 모든 걸 처음으로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앞으로의 삶은 행복해지고 싶다. 별것 아닌 것에서 누릴 수 있는 당연한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다. 



2022.06.2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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