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준 Jun 25. 2022

그때 내가 알았더라면

2022.06.25.  16:05


너는 용기가 부족했다. 기회는 있었지만 선택하지 않았다. 너도 9번이나 이직을 할 거라 상상하지 못했을 거다. 9번의 이직은 네가 용기 내지 않은 대가이다. 너에게는 직업을 바꿀 기회가 있었다. 마음도 있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지. 이유는 많았어. 가족의 생계를 담보로 낯선 직업에 도전한다는 게 망설여졌을 거다. 또 선택한 직업에 대한 확신도 없었을 테지. 선택에 후회가 든다면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은 불안도 있었을 거다. 너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한 중압감이 더 컸을 거다. 서른일곱, 가장은 불확실에 도전해서는 안 된다고, 한편으로 그럴듯한 핑계를 갖고 있었지. 타인에게 비난받지 않고 누가 봐도 인정할 수 있는 핑계.


핑계 뒤에 숨어서 망상만 키웠다. '내가 저 정도는 할 수 있는데 가족 때문에 용기 내지 않는 것뿐이다'라고. 상상으로 여러 직업을 가졌지. 자동차 세일즈, 교통사고 조사원, 물류담당, 구매담당 등 여러 분야에 기웃거렸지. 정작 제대로 된 이력서를 쓰지도 않았어. 그 분야에 대해 공부를 하지도 않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만심과 망상으로 가득했었지. 그때 만약 의지가 있고 용기가 있었다면 뒷짐 지고 있지만은 않았을 거다. 시도조차 하지 않고 가족을 방패 삼아 할 수 없는 이유만 늘어놓았지. 네가 만든 이유들은 너를 더 힘들게 만들었어. 답답한 현실에 쓸모없는 망상까지 더해지면 너 자신이 더 초라하게 느꼈을 거야. 정작 모든 이유는 네 안에 있었는데 너는 밖에서 이유를 찾으려고만 했다. 그래서 술을 찾고, 가족에게 화풀이를 하고, 늘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닫고 있었지. 그런 너를 바라보는 아내의 심정을 헤아려봤니? 이해하려고 했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거다. 그때의 너는 너밖에 생각할 줄 몰랐어. 가족 곁에서 가족을 외롭게 만들었다.


2022년 지금을 사는 내가 2012년 그때의 너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물론 지금이라고 훌륭한 삶을 사는 건 아니다. 여전히 언제든 써먹을 핑계 하나쯤은 가슴속에 품고 산다. 나도 빠져나갈 구멍은 있어야지 않겠니. 다행인 건 지금의 나는 적어도 해보지도 않고 핑계부터 찾지는 않는다. 무턱대고 달려드는 건 아니지만 신중하게 판단해서 옳다고 생각되는 건 주저 없이 시도하려 한다. 그렇게 하나씩 내가 바라는 나로 만들어가는 중이다. 이런 과정을 겪어보니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생기더라.


모든 선택에 확신이 들 수는 없어. 그렇다고 아무 선택도 안 할 수도 없고. 할까 말까 망설여지면 하라고 했다. 해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나면 실패든 성공이든 결과를 얻는 게 더 낫거든. 그래야 너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있다. 하나씩 선택지를 지워나가면 네가 정말 원하는 걸 찾을 수 있을 거야. 네가 그때 이걸 알았다면 용기 내는 게 조금은 쉬웠을 거야.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 누구에게 묻지도 않았고. 아내와 상의라도 했으면 조금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때는 아내도 네 편이 아니라고 여겼지. 비밀이 많았어. 쓸데없는 짓이다. 네가 처음부터 아내에게 숨기는 없었다면 훗날 더 큰 일(?)을 안 겪었을 텐데.


어쩌면 결과를 얻기까지 과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어떤 과정일까? 선택에 대한 확신을 만드는 과정. 막연하게 들릴 수 있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지금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하기까지 확신이 없었다. 확신이 생긴 건 꾸준히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 같다. 물론 시작에는 어느 정도 용기는 필요해. 용기를 내기까지도 수많은 시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었다. 앞에도 적었지만 할까 말까 망설여지면 일단 해보자고 했지. 그 말의 의미를 이제는 알거든. 그래서 일단 시작했고, 꾸준히 해오고 있다. 하다 보니 잘하고 싶고, 잘하기 위해 배우다 보니 재미도 있더라. 재미가 생기면서 좋아하게 되었고.


그때 네가 조금만 더 현명했다면 직장을 다니면서 시도해보면 어땠을까 싶어. 지금 나도 5년째 직장을 다니면 부지런히 딴짓 중이거든. 못할 줄 알았는데 하니까 다 되더라. 겁먹을 필요도, 걱정할 필요 없다. 사람은 닥치면 다 하게 되어있다. 그러니 핑계 대지 말고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일단 한 번 저질러 보는 거다. 너에겐 일단 시작해보는 용기가 무엇보다 필요한 것 같다. 시작하면 방법도 다 생기더라. 그러니 핑계 뒤에 숨지 말고 당당하게 하고 싶은 걸 시도해보는 거다. 서른일곱, 아직 젊어. 마흔일곱인 나도 이렇게 매일 시도하고 좌절하고 있잖니. 둘째도 태어나기 전이니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2022.06.25  17:27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각자의 길에서 자신의 속도대로 달리면 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