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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n 27. 2022

가르마를 타기 시작했다

2022.06.27  07:42



어떤 변화를 커다란 결심이 필요하다. 이사, 이직, 결혼, 출산, 학업. 운명을 가를 정도로 큰 변화일 수도 있다. 반대로 어떤 변화는 마음만 있어도 가능하다. 다른 색의 옷, 처음 먹어보는 음식, 시도해보지 않는 취미, 헤어스타일. 이런 변화는 삶이 요동칠 정도는 아니다. 지루한 일상에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 시도한다. 


두 달 전부터 아내의 요구가 있었다. 내 머리 스타일에 변화를 주고 싶어 했다. 검색하면 수백 장의 사진이 뜨는 모 연예인의 머리에 꽂혔단다. 얼굴은 다르지만 분명 헤어 스타일은 같을 수 있다는 확신에 찼다. 어디서 나오는 확신인지 알 수 없었다. 반신반의했다. 아내 말만 믿고 했다가 되돌릴 수 없는 흑역사를 갖지 않을까 싶었다. 한편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적당한 머리 길이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평소 같으면 이미 이발을 했을 텐데 아내의 요구를 못 이기는 척 들어주고 싶었다. 어쩌면 만에 하나 얻어걸리듯 원치 않는(?) 스타일이 나올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아내는 작정하고 따라나섰다. 미용실 원장님과 마주 앉은 건 나였지만 아내의 질문이 더 많았다. 그때 나는 연습용 마네킹이 된 것 같았다.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얻어진 결과를 기꺼이 따라야 할 분위기였다.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말을 해서도 안 될 분위기였다. 아내와 원장님은 전문용어를 썩어가며 견적을 냈다. 귀가 얇은 아내는 원장님의 뜻에 따라 내 머리를 맡겼다. 나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합의했다. 다행히 별다른 시술 없이 커트만으로도 가능했다. 번거로운 과정을 줄인 덕분에 나도 기꺼이 받아들였던 것 같다. 커트 만으로도 원하는 스타일을 낼 수 있다니 밑져야 본전이었다. 


변화의 핵심은 가르마였다. 20년 넘게 앞머리를 내리고 다녔다. 이발을 할 때면 머리 전체 길이만 줄이는 식의 커트를 했다. 바쁜 아침에 머리에 신경 쓰는 게 귀찮았다. 말리고 빗질하면 끝인 스타일이었다. 고집했던 딱 하나 이유는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는 것뿐이었다. 그렇다고 효과를 크게 본 적은 없었다. 나이를 듣고 난 반응이 인사치레 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도 어려 보인다는 말이 듣기 나쁘지 않았다. 그 한 마디에 집착에 20년 넘게 같은 스타일을 고집해왔다. 

5년 전부터 변화를 시도했다. 책에서 글에서 변화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고 믿고 읽고 쓰기를 이어왔다. 말투가 바뀌고, 성격이 변하고,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매일 꾸준히 같은 태도를 이어가려고 노력했다. 그런 노력이 나를 성장시키고 바라는 직업을 갖게 하고 더 나은 삶을 살게 해 줄 거라 믿었다. 변화와 성장을 위해 용기를 냈고, 5년을 이어오고 있다. 

그 사이 외모의 변화는 최근 들어 극적(?)이었다. 1년 반 동안 식단 조절과 운동을 통해 몸무게를 줄였고 군살도 뺐다. 이전의 외모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허리둘레가 줄어서 바지도 새로 살 정도였다. 옷 입는 게 편했고 당당해졌다. 몸은 변했어도 머리스타일을 바꿀 생각은 못했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말 그대로 눈 한번 질끈 감으면 끝날 일이었다. 아내의 조언 덕분에 용기 냈고 변화를 줬다.


5년 동안 조금씩 나 자신은 변화를 이어왔다. 어느 한순간이 시작이었지만 시작만으로 변화가 완성된 건 아니었다. 끊임없이 읽고 쓰고 나누고 배우는 과정이 쌓였기에 오늘의 내가 될 수 있었다. 시작할 용기만 있으면 얼마든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공자는 "늘 행복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자주 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행복을 소소한 데서 찾을 수 있듯, 일상의 작은 변화가 삶의 큰 변화로도 이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아내의 말을 듣고 용기 낸 덕분에 사춘기 큰딸도 만족한 눈치였다. 이발하고 나면 시큰둥했던 반응이 아닌 잘 어울린다는 진심 어린 표정을 얼핏 볼 수 있었다. 용기 낸 덕분이었다.    



2022.06.2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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