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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n 28. 2022

걱정을 안 할 수 있다면
걱정이 없겠네

2022.06.28  07:45

 


12시쯤 자려고 누웠습니다. 비는 그쳤지만 바람에 창문이 덜그럭 거립니다. 습해서 창문을 닫고 잘 수도 없습니다. 선풍기를 틀기에도 애매합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에 의지한 체 눈을 감습니다. 금방 잠에 빠져듭니다. 얼마나 잤는지 모르지만 창문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자칫 바람을 이기지 못해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걱정도 잠시 다시 잠이 듭니다. 얼마나 잤는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둘째의 요란한 잠꼬대에 눈을 뜹니다. 태권도를 배워서인지 장롱을 걷어차는 소리에 힘이 실려있습니다. 문이 부서지지 않았을까 걱정입니다. 입도 가만히 있질 않습니다. '킹받네', '어쩔티비', '됐거든' 등 친구와 다투는지 거침없이 뱉어냅니다. 저러다 성질을 부리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잠잠해지길 기다렸다 다시 잠을 청하는 데 큰딸 방에 불이 켜져 있습니다. 아마 불을 안 끄고 자는 것 같습니다. 자기 전 아내와 한바탕 했습니다. 이유 같지 않은 이유였습니다. 잔뜩 기분이 상한 체 문을 잠그고 방으로 들어갔고 그 뒤로 나오질 않았습니다. 잠을 자는 것 같은데 기분이 어떨지 걱정이 됩니다. 한편으로 괜한 일에 짜증을 부리는 딸에게 서운하기도 합니다. 얼마나 어디까지 기분을 맞춰줘야 하는지 걱정입니다. 걱정은 걱정이고, 시간이 남아서 다시 눈을 감습니다.


하룻밤, 네댓 시간 잠을 자는 동안 다양한 걱정을 했습니다. 자는 시간도 짧은데 편하게 라도 자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네요. 자면서까지 오만 걱정을 다 합니다. 걱정한다고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면서요. 잠결이 아니어도 이런 걱정은 늘 하는 것 같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걱정의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것들입니다. 바람에 창문에 흔들려도 별일 없이 지나갔습니다. 잠꼬대를 하고 장롱을 걷어차도 아무렇지 않게 잠만 잘 잡니다. 큰딸도 엄마와 지지고 볶든 잘 때가 되면 숙면을 취합니다. 잘 자고 일어나면 기분이 풀려있을 수도 있고, 아침을 먹다 보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잠결에 들리는 소리 때문에 잠을 깨는 건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아무리 큰 소리가 나도 세상모르고 자는 사람이 있고, 이불이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도 깨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아니면 저처럼 들리는 소리마다 걱정을 더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요. 한 번 잠들면 아침까지 안 깨고 자는 사람이 부럽기도 합니다. 그들은 저처럼 걱정이 없고 잠귀가 어두워 잘 자는 것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오늘 걱정은 내일하고 지금은 잠자는 시간이니 잠에만 집중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선택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일어나지 않는 일에 걱정하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 걱정은 걱정인형에게 맡겨놓고 잠자는 시간에는 잠에만 집중하는 것.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쓸데없는 걱정에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보다 지금에 집중하는 게 삶을 즐기는 태도인 것 같습니다. 


데일 카네기는 "걱정해도 소용없는 것으로부터 자기를 해방시켜라! 그것이 마음의 평화를 얻는 가장 가까운 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걱정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을 일은 안 일어납니다. 괜히 에너지만 낭비하는 꼴입니다. 걱정을 내려놓는 건 온전히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그렇다고 아무 걱정 안 하고 살 수 없을 겁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도 없을 테고요. 자기 마음의 평화는 자기 스스로 찾아야 할 겁니다. 아무리 좋은 음악을 듣고 훌륭한 책을 읽어도 마음의 안식은 결국 자신의 선택에 따릅니다. 걱정해도 소용없는 것들은 과감히 내려놓을 수 있다면 적어도 그 순간 마음의 평화는 내 것이 됩니다.  

   


2022.06.2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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