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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n 30. 2022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걸어갈 길을 바라본다

2022. 06. 30  07:38



길이 없던 곳에 길이 생기는 건 사람들이 다닌 흔적 때문이다. 앞사람이 지나간 자취를 따라 걷게 되면서 자연스레 길이 만들어진다. 길을 인생으로 비유하곤 한다. 내가 걷는 길, 내 인생은 내가 남기는 흔적으로 인해 어떤 삶을 사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 흔적이 사람을 이끌기도 한다.


인간이 신에게 평가받는 유일한 때가 있다. 죽고 나서 천국으로 갈지 지옥으로 갈지 결정하는 때다. 이 말은 살아있는 동안 신에게 그 어떤 평가도 받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글쓰기를 힘들어하는 수강생에게 이은대 작가가 해준 말이다. 글 쓰는 게 힘든 이유 중 하나가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다. 실제로 평가를 받지도 않으면서 지레 겁먹고 쓰기를 주저한단다. 설령 쓴다고 해도 평가를 할 사람은 없다. 남의 글을 평가하는 자체가 난센스다. 평가를 걱정하기보다 썼는지 안 썼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잘 쓰고 못 쓰고 보다 오늘 정해진 분량을 썼는지 안 썼는지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니 신도 평가하지 않는 걸 먼저 걱정하지 말라고 용기를 줬다.


그 말을 들으며 나를 돌아봤다. 평가를 신경 안 쓰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안 쓰면서 불안해하지는 않는다. 매일 내가 정해놓은 분량을 쓰려고 애쓴다. 매일 아침 2시간은 나를 위해 읽고 쓴다. 이 시간을 통해 얻은 걸 평가받아야 한다면 아마 지금까지 이어오지 못했을 거다. 내가 좋아서, 만족해하고 즐겼기에 이어올 수 있었다. 그렇다고 늘 좋은 순간만 있지 않았다. 포기를 고민하던 때는 지났지만 여전히 불확실하긴 하다. 경제적 안정을 얻은 것도 아니다. 다른 일을 찾고 시도했으면 지금쯤 더 나은 결과를 손에 넣었을 수도 있다. 그건 만약일 뿐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불안한 마음은 늘 따라다닌다.


불안하고 불확실해도 매일 쓰면서 흔적을 남겼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말이다. 오늘 쓴 한 편의 글은 눈에 띄지 않는다. 눈에 띄지 않는 글이 쌓이면 어느새 덩어리 져 있다. 눈에 들어올 만큼 자취가 되어 있다. 나도 누군가 만들어 놓은 자취 따라 지금까지 왔다. 내가 만든 흔적을 보고 누군가 따라오고 있다. 길이 선명할수록 뒤 따르는 사람은 불안해하지 않는다. 나도 앞서 걷는 이들의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보며 따라 걸었기에 지금에 이르렀다. 만약 그들이 주변의 평가에 흔들리는 모습을 봤다면 나도 덩달아 의심했을 수 있다. 그런 것 같다. 내 길이 맞다는 확신이 있으면 어떤 말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 스스로 정한 기준대로 원칙을 지키며 앞만 보며 걸으면 그뿐이다. 그렇게 걸었기에 저마다 자리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올 해도 절반이 지났다. 지난 절반, 무슨 일 있었는지 돌아봤다. 좌절을 겪으며 불안했다. 불안했지만 매일 써야 할 글은 놓지 않았다. 흔적을 남기려 애썼다. 애쓴 덕분인지 두 권의 책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출간 계약이 파기된 순간 포기를 선택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내가 손 쓸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냥 두고 봤다. 대신해야 할 일은 했다. 억지로 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게 참고 쓰는 것뿐이었다. 스스로 정해놓은 걸 안 했다면 아마 더 큰 좌절을 경험했을 수도 있다. 무기력한 자신에게 화가 났을 수도 있다. 정말로 다행이었다. 꾹 참고 억지로 매일 해냈기 때문에 오늘이 있다는 게.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건 삶에서 꼭 필요하다. 사람들은 돌아보면서 평가를 하려고 한다. 잘했는지 잘 못했는지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려고 한다. 그보다 그 시간을 살아낸 자체로 소중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평가는 내가 죽고 난 뒤 신만이 내린다고 생각하면 살아있는 자체로 소중해질 것 같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든 하루를 살아낸 자체로 최선을 다 한 것이다. 최선을 다한 자신에게 평가의 잣대를 대기보다 인정하고 보듬어주면 좋겠다. 내가 나를 아끼면 타인의 어떤 평가에도 자유로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들의 평가로 내 삶이 좌지우지된다면 얼마나 서글플까? 적어도 나 자신은 스스로에게 당당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남은 6개월도 타인의 시선 안에서 살기보다 내가 정한 기준에 따라 흔적을 남기며 살았으면 좋겠다. 그 흔적이 쌓여 또 다른 길이 될 수 있게.       



2022. 06. 3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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