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만들며 흐르는 물처럼

by 김형준

2022. 07. 03 06:50



사춘기를 겪기 전까지 어머니를 곧잘 도왔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먹고살기 위해 장사를 놓지 못했습니다. 분식, 밥집, 술집 등 여러 종류의 장사를 했습니다. 오롯이 혼자 모든 걸 해내다 보니 우리 형제에겐 애정을 주지 못했습니다. 사춘기 전에는 어머니를 위해 도왔다기보다 시키면 마지못해 하는 정도였습니다. 사춘기를 겪으며 장사하는 어머니를 부끄러워했고 자연히 돕는 것도 안 했습니다. 어머니도 웬만해서는 우리에게 식당일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정말 힘에 부칠 때 청소나 설거지를 부탁했습니다. 그때는 마지못해 했습니다. 하면서도 투덜대기 일 수였습니다. 그때는 어머니는 돕는 게 당연한 게 아니었습니다. 장사는 어머니 일, 학교를 다니는 건 내 일, 의무보다 권리만 내세웠던 것 같습니다.


책이 나오니 홍보가 절실해졌습니다. 여러 곳에 알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주변 사람에 에 의지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들도 축하는 해주지만 선뜻 책을 사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롯이 내 책을 직접 홍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고민 끝에 전국에 청년센터에 택배 보내기로 했습니다. 제법 많았습니다. 한 곳에 한 권씩 보내기로 했습니다. 이 말은 한 권씩 포장하고 주소를 적어야 하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틈틈이 주소를 모았습니다. 우체국 택배를 이용하니 비교적 편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토요일 낮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안내문을 프린트해 책에 들어갈 크기로 접고 택배 봉투에 담았습니다. 몇 권 하다 보니 큰딸이 학원에서 돌아왔습니다. 거실에서 포장하는 나를 보더니 대뜸 돕겠다면 옆에 와 앉습니다. 내심 어리둥절했습니다. 오늘은 기분이 좋은가 싶었습니다. 사춘기를 지나고 있어서 감정의 낙폭이 큽니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반응보다 관찰을 하는 편입니다. 관찰하고 대응하는 식입니다. 스스로 돕겠다니 그러라고 했습니다. 사실 먼저 말하지 않았으면 시켜서 같이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참여를 통해 동질감을 갖게 하고 싶었습니다.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별 기대 없이 던진 화투 피 한 장이 여러 장이 되어 돌아오는 것처럼 횡재한 기분이었습니다.


큰딸과 마주 앉아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안내문을 빼먹었다며 포장을 마친 봉투를 두 장이나 찢고 재포장했습니다. 서툰 솜씨 덕분에 웃을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학교 앞 달력 공장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속도를 높였습니다. 자기보다 속도가 빠르다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묻습니다.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달력 공장을 다니며 이런 작업 수도 없이 했었다고. 거기까지만 말했습니다. '라테'로 시작해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화기애애하게 농담도 주고받으며 포장을 마쳤습니다. 스스로 나서 도와준 덕분에 수고를 덜 수 있었습니다. 분위기를 이어 고기 주는 냉면을 배달시켜 마주 앉아 양껏 배를 채웠습니다.


아내는 큰딸의 행동을 보고 '이런 날도 다 있네'라며 의아해했습니다. 그러면서 '놔두니 알아서 하는구나' 덧붙였습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하라고 시키면 지켜보는 부모가 천불이 나든 말든 제 할 일만 합니다. 부모 속이 타들어가는 건 자식에게 욕심을 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부모 기준에 맞게 자식이 행동했으면 하는 마음이 일종의 욕심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올바른 습관을 만들어주기 위해 어느 정도 잔소리는 필요합니다. 문제는 '어느 정도'의 기준을 누가 정하느냐입니다. 대부분 부모의 기준에서 아이의 행동을 판단합니다. 부모 입장에서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이라 여겨 지시하지만, 아이는 제 기준에 따라 행동하려고 합니다. 양말을 벗으면 빨래통에 넣으라고 몇 번을 말해도 며칠을 굴러 다닙니다. 언제인지 모르게 양말은 빨래통에 들어가 있습니다. 양말뿐 아니라 아이가 해야 할 거의 모든 행동이 그런 식입니다. 부모가 하는 잔소리는 그 자리에서 듣고 흘리는 게 대부분입니다. 스스로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그제야 마지못해 합니다. 그런 걸 보면 굳이 잔소리를 안 해도 알아서 하긴 합니다. 부모 입장에서 지저분한 방을 보기 힘들기 때문에 잔소리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걸 욕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자식이 할 일을 알아서 하면 부모와 부딪힐 일도 적을 겁니다. 부모는 자식을 돌볼 의무에 최선을 다합니다. 자식은 이런 부모를 이해하면 적어도 자신이 해야 할 행동은 알아서 할 겁니다. 그럴수록 부모 자식 사이에 부딪히는 일도 적을 테니 말입니다. 돌이켜보면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내신 부모님에 비해 자식으로서 역할에는 충실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공부를 잘해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주지도 못했고, 힘든 부모님을 위해 스스로 돕겠다는 생각도 못했으니 말입니다. 어릴 때 저를 떠올려보면 지금 내 아이가 하는 행동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로 이해했다면 욕심을 내지도 잔소리를 하지도 않을 테니 말입니다. 그때의 제 자신은 망각하고 단지 자식이 잘 되길 바란다는 욕심 같은 대의를 내세워 잔소리를 하고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내 역할에만 충실하자. 지금도 앞으로도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면 아이는 그런 나를 보고 성장한다. 그 과정에 마음이 흐르면 저에게도 마음을 열어 줄 테니 말이다. 제 일을 돕겠다며 마주 앉은 것처럼 말입니다.


물은 앞을 막지만 않으면 길을 만들며 알아서 흐릅니다. 좁은 개천을 흐르기도, 넓은 강으로 이어지기도, 비를 만나 불어나기도 하고, 가뭄에 근근이 흐르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앞을 막지만 않으면 결국 원하는 곳으로 흘러 가 닿을 겁니다. 부모는 그렇게 흐르는 자식이라는 물을 그저 곁에서 바라봐주는 것만으로도 역할을 다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자식도 흐르고 흘러서 부모라는 물이 될 테고, 그때가 되면 부모를 이해하는 순간도 올 겁니다. 대가를 바라고 자식을 키우는 게 아니라며 욕심을 내지 않는 것도 부모의 역할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이렇게 글로 쓰면서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2022. 07. 03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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