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7. 18 07:41
사춘기, 자아에 대한 방황은 물론 외모에 대해서도 신경 쓸 때다. 그때는 내가 하는 게 다 맞는 것 같다. 타인의 시선에 무게를 두기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더 집중하게 된다. 부모 입장에선 이해가 안 되는 난해한 패션을 선보이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그때니까 가능했던 것 같다.
'5센티미터만 더 컸어도 운명이 달라졌을 텐데'라고 근거 없는 기대를 했었다. 학기마다 신체검사를 할 때면 키에서 좌절을 맛봤다. 같은 방학을 보내도 다른 친구는 5~10센티미터나 성장해서 돌아왔다. 그에 반해 나는 중학교 2학년 이후 성장이 멈췄다. 청바지를 사러 가면 바지 길이를 줄이지 않고 입는 친구가 제일 부러웠다. 나는 어떤 바지를 사도 밑단을 줄여야 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수선을 맡길 때면 멈춘 키와 부모님을 원망했다. 그때는 그렇게 라도 핑계를 대야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에 생각하면 쓸데없고 부질없는 짓이었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건 일반인이 연예인을 걱정하는 것과 같다. 의미 없는 짓이라는 뜻이다. 키가 크든 작든, 얼굴이 잘 생겼든 못 생겼든, 옷을 잘 입든 못 입든 사람의 내면의 겉모습과 다른 게 대부분이다. 그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는 방법은 외모가 아닌 내면을 이해했을 때다. 상대방의 내면을 이해하기까지 우리가 접하는 정보는 외모에 한정되어 있다. 그러니 외모는 '앵커링 효과(확증편향)'를 일으키는 즉, 상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만다. 그래서 잘 생긴 사람은 성격이 좋다고 짐작하고, 키가 큰 사람은 마음이 넓다고 넘겨짚기도 한다. 물론 이 또한 사람마다 짐작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 또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있다. 이런 짐작 자체가 확증 편향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했을 때 이런 편향이 깨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성인이 되고 젊음이 무기였을 땐 외모에 더 신경 쓰게 된다. 연애를 위해, 짝을 찾기 위해 외모를 가꾸고 겉모습에 집중하게 된다. 그때마다 어른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겉모습 모다 내면을 가꾸라고.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다. 내면을 가꾸는 방법도 몰랐을뿐더러 당장 눈에 띄지도 않기 때문이다. 자극을 쫓고 감성에 취할 때이니 느리고 귀찮은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또 주변에는 한 방을 노리듯 잘 가꾼 사람이 미인을 얻고 좋은 조건으로 결혼하기도 했다. 물론 그 이면까지 들여다보지 못해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몰랐다.
몇 번의 만남과 이별을 경험하고 짝을 찾아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한 가지를 꼽으라면 외모는 아니었던 것 같다. 외모는 만나고 싶은 100가지 이유가 있다면 그중 하나일 뿐이었고 그 순위는 가장 아래 위치했던 것 같다. 상대방을 만나고 대화를 나눌수록 외모보다 그 사람에 대해 더 끌리게 되는 것 같다. 그런 끌림이 어른들이 말했던 내면의 아름다움이 아니었을까 싶다. 백날 들어봐야 알 수 없다. 이렇게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말이다. 그러니 나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 되니 내 아이들에게 내면의 아름다움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사춘기를 지나는 큰딸에게는 이런 공자님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 당장의 눈에 띄는 외모에만 집중하는 것 같다. 어릴 적 나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옷이 적은 게 사실이지만 옷을 사달라는 요청이 부쩍 늘었다. 틈틈이 인터넷 쇼핑몰을 뒤져 원하는 아이템을 장바구니에 담아둔다. 눈치를 봐서 엄마에게 토스하는 식이다. 요란하게 꾸미는 건 아니지만 조금씩 멋에 대해 눈을 뜨는 것 같다. 겉모습이 아름다워 보이고 싶은 건 나이 불문이다. 사춘기이니 오죽할까? 그래도 내 마음 한 켠에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싶지 않다. 지금 그런 말을 한다고 귀에 들어가지 않을 걸 잘 안다. 앉혀놓고 말 한들 듣지 않는다 것도 잘 안다. 바람이 있다면, 외모에 '10'을 신경 쓴다면 적어도 그중 '1'이라도 내면에 가꾸는 무언가를 했으면 한다. 그게 독서 일 수도, 취미 일 수도, 타인에 대한 이해일 수도 있다.
"저희 선생님이 그랬는데, 사람은 내면의 아름다움이 가장 중요하대요."
"그건 못생긴 놈들이나 하는 말이야."
-영화 '라이어 라이어' 중 -
외모에만 신경 쓰는 사람은 이런 말에도 쉽게 흔들리기 마련이다. 반대로 내면의 힘을 가진 이들은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쉽게 흔들렸던 것 같다. 만약 지금의 멘털을 20대 때 가졌다면 조금 덜 상처받았을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만약이다. 우리 두 딸은 누가 봐도 이쁜 건 아니다. 내 눈에 안경이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건 중요하다. 다만 내면의 힘을 키워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기보다 스스로 중심을 잡고 살았으면 좋겠다. 살아보니 꼭 필요한 것 중 하나라고 말해주고 싶다.
2022. 07.18. 0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