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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Oct 06. 2022

말을 하고 싶지만 자신이 없어

2022. 10. 06.   07:35



말을 못 해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쓴 지 5년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말은 서툴다. 책에서 그랬다.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쓰면 말도 잘하게 된다. 그렇게 말을 잘하게 된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나는 아직은 아닌 것 같다. 글을 많이 쓰면 글솜씨가 좋아진다고 했다. 말도 많이 하면 말주변이 좋아지는 게 당연하다. 정작 말을 많이 할 기회가 많지 않다. 기회는 자신이 만들어낼 수도 있다. 어쩌면 만들어내는 기회를 통해 더 자주 말하는 게 보다 적극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모임을 만들어 사람을 모으고 그들에게 내가 아는 걸 정리해 강의도 해봤다. 역시나 만만치 않았다. 몇 시간짜리 스피치 수업을 듣고 몇 주동안 과제와 피드백을 받으며 기초를 다지기는 했지만 많이 해보는 것만큼 실력을 키우는 게 없음을 실감했다. 여전히 적은 사람 앞에 서면 떨렸다. 말도 꼬이고 멈추기를 반복했다. 나 같은 사람에게 강의를 오래 한 이들이 말하는 유일한 해결방법은 더 많이 하는 것이라고 했다. 글쓰기든 말하기든 결국엔 많이 경험해보는 게 답이라는 말이다.


9개월째 독서모임을 운영 중이다. 운영자이다 보니 말은 많이 하게 된다. 토론 중 내 생각을 말하고, 진행도 하고 사담도 나누게 된다. 2시간 동안 참가자 중 가장 말을 많이 한다. 준비된 내용이 아니라 더 긴장이 된다. 연습한 내용을 말한다면 연습량에 따라 덜 긴장할 테니 말이다. 즉흥적으로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내 생각을 바로바로 뱉어내야 하니 가다듬을 사이가 없다. 그러니 말의 톤은 일정하고 속도도 빠르니 원하는 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럴 때면 등줄기로 흐르는 땀이 느껴진다. 내색은 못하지만 꽤나 민망한 순간이다. 제법 그럴듯하게 보이고 싶은 데 그럴듯하지 못하니 말이다. 


그래도 모임을 통해 이전보다 말을 많이 하게 된 건 사실이다. 말에 대한 부담감이 모임을 시작할 때보다는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다. 아주 가끔이지만 농담도 하고 매끄럽게 진행하기도 한다. 그 이면에는 나름의 준비와 연습이 도움 된 것 같다. 운영자이다 보니 기본적인 건 준비해야 한다. 책 소개, 일정 공지, 순서 진행 등 머릿속으로 일련의 과정을 그려보고 필요한 말을 정리해놓는다. 그렇게라도 하니 처음보다는 나아지고 있다고 느낀다. 이 또한 연습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직원이 적고 현장 위주로 운영되는 회사이다 보니 여럿이 모일 경우가 드물다. 새해가 되거나 중요한 회의가 있을 때나 모인다. 모여도 활발한 토의가 이루어지기보다 일방통행식 전달이 전부다. 그러니 말을 할 기회가 없다. 이전 직장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새로운 걸 만들어내야 하는, 가령 카피라이터나 크리에이터 마케팅 같은 업무는 잦은 회의로 의견을 낼 기회가 많다. 자연히 말도 많이 하고 조리 있게 하려고 준비도 철저히 하게 된다. 말주변도 좋아지는 게 당연하다. 그나마 구매 업무를 담당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대화는 하게 된다. 질문하고 흥정하는 수준의 대화가 전부다. 기계적으로 준비된 내용만 해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니 말부변이 좋아지길 기대할 정도는 아니다. 이랬던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어느 순간부터 강연을 해야겠다 마음먹은 건 누가 봐도 무모한 도전이라 할 수 있다.  


시작은 무모했을 수 있지만,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나름 제대로 걸어오고 있는 것 같다. 가장 큰 문제인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가족 앞에서 서 보기도 했다. 한 번의 강연을 위해 몇 주를 꼬박 연습하기도 했다.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도 더 나은 내용을 담아내기 위한 일종의 노력이다. 말할 기회를 만들기 위해 모임을 만든 것도 노력의 연장선이다. 2주에 한 번 모이지만 다리가 풀릴 정도로 정성을 쏟는다. 말할 기회를 많이 만들고 그 기회를 위해 정성을 다하면 안 좋아질 수 없을 것이다. 강연의 대가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양질 전환의 법칙이 여기에서도 적용될 테다. 많은 기회에 정성을 다하면 머지않아 내가 말하고 싶은 내용을 누구보다 편하게 전달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강연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청중이 듣고 싶은 말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김창옥 강사가 말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청중이 듣고 싶은 말을 찾아내는 건 쉽게 되지 않는 것 같다. 청중을 끌어들이는 건 기본이고 메시지를 담아내는 건 그만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청중의 기억에 남는 강연은 결국 강연자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느냐에 달린 것 같다. 강연자는 공자님 말씀을 전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이 묻어나는 메시지를 전할 때 비로소 청중에 가 닿는다고 믿는다. 결국 말을 잘하는 건 삶을 잘 사는 걸로 이어지는 것 같다. 내 삶을 진솔하고 바르게 살아내면 그 자체로 충분히 메시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더 자주 말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면 머지않아 청중이 듣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강연가가 되어있지 않을까 싶다.   

  


2022. 10. 0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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