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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Oct 08. 2022

금주 314일째, 진작에 끊을 걸



2022. 10. 08.   07:05



'AB슬라이드'라는 운동기구 있습니다. 주먹만 한 바퀴 양 옆에 손잡이 달린 모양입니다. 무릎을 꿇고 손잡이에 체중을 실어 앞뒤로 움직이면 배에 식스팩을 만들 수 있습니다. TV광고에서는 근육질 모델이 "탄탄한 복근을 원하세요? 지금 전화 주세요. 080-000-0000, 지금 전화 주시면 하나 더 드립니다." 보고만 있어도 내 배에 식스팩이 생길 것 같은 환상에 빠져듭니다. 알려주는 대로만 하면 모델처럼 멋진 몸매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구매도 했습니다. 해보니 만만한 운동은 아니었습니다. 며칠 하다가 방 한편에 자리를 마련해줬습니다. 오며 가며 잘 있나 안부만 확인했고 결국 이사 몇 번에 흔적 없이 사라졌습니다. 의지를 태우며 시작했던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시도했던 걸 다 해냈다면 아마도 서울대도 갔을 겁니다. 그만큼 시작은 쉽지만 지속하기는 어렵다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고등학생이 되고부터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당구 한 게임치고 집에 가기 아쉬우면 단골 호프집 눈이 덜 닿는 곳에 자리 잡고 500 한잔씩 마셨습니다. 서비스로 나오는 마른안주에 맥주 한 잔을 마시고 나면 배도 부르고 기분도 좋아집니다. 물론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 입 냄새가 안 나게 조처를 취해야 했습니다. 아마도 부모님은 냄새를 맡았을 수 있습니다. 알면서 슬쩍 눈감아주셨는지도 모릅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소주 한잔 마시자는 게 인사가 되었습니다. 소주가 달 때였습니다. 안주 하나에 두세 병은 기본입니다. 주머니가 넉넉지 않으니 안주보다 술로 승부를 봐야 했습니다. 그렇게 주량을 키웠습니다. 


군대에서의 규칙적인 생활은 몸상태를 최상으로 만들어줬습니다. 당연히 술을 아무리 마셔도 다음 날 아침이면 멀쩡했습니다. 숙취가 무엇인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26살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상사 덕분에 시시때때로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독립생활을 하다 보니 먹는 것도 대충, 끼니도 거르기 일수에 운동할 여력도 없었습니다. 새 신발만 주구 창창 신으면 금방 헤지듯 몸도 어느새 볼품없어졌습니다. 옷으로 가려지지 않는 배, 며칠 동안 깨지 않는 술, 자극적인 맛만 찾는 식습관. 어쩌다 건강 검진 후 받아 든 결과지는 온통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몸 어느 곳에서 문제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험해 보였습니다. 식습관을 고쳐보려고 매번 시도했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마흔다섯, 중대한 결심을 했습니다. 그날도 건강 검진 결과지를 받은 날이었습니다. 십수 년째 변함없는 각종 수치에 변화가 절실했습니다. 먹는 것부터 조절하기로 했습니다. 이전과 다른 각오를 다졌습니다. 새벽 기상, 매일 읽고 쓰는 습관을 만든 덕분에 식습관 조절에 필요한 습관 저항 없이 가질 수 있었습니다. 6개월 동안 16:8 간헐적 단식을 실천했고, 덕분에 몸무게를 10킬로그램 줄일 수 있었습니다. 하루 두 끼만 먹는 습관으로 바꾸고 2년째 지켜오고 있습니다. 여전히 같은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먹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번에는 술을 끊기로 했습니다. 거창한 각오로 시작한 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어느 순간 이제는 그만 마셔야겠다는 생각과 더는 입에 대지 않겠다는 다짐을 나 자신에게 했습니다. 그게 벌써 314일 전의 일입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서 제 몸과 일상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습니다. 우선 아침에 일어나는 게 가볍습니다. 제 스마트폰 알람은 4시 반에 맞춰져 있습니다. 항상 먼저 일어나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알람 해제를 합니다. 이불 밖으로 나오는데 별다른 저항이 없습니다. 4시간 정도 잠을 자지만 잠이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간혹 일 때문에 혹사를 당하면 주말에 한두 시간 더 자주면 충분했습니다. 맑은 정신에 잠을 깨니 아침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도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6시면 아침밥을 먹었고, 그렇게 먹어야 뇌를 깨운다고 믿었습니다. 지금은 9시 넘어서 달걀 두 개 먹거나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오전을 보내는 게 다반사입니다. 그래도 글 쓰고 책 읽기 위해 집중하는 데 아무 문제없습니다. 오히려 더 집중이 잘 되는 것 같습니다. 덩달아 장 운동도 활발해서 배속도 잘 비우고 덕분에 몸도 가볍습니다. 또 하나 술자리를 안 만드니 저녁 시간에 할 수 있는 게 많아졌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지만 술 마시자고 불러내는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술 끊었다는 걸 알아서인지 그들도 알아서 부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인간관계라 소원해지는 것 아니냐고 걱정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은 괜찮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만든 시간을 나를 위해 쓸 수 있다는 게 더 감사할 따름입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술을 다시 마시게 될 때 내 곁에 남는 이들이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 봅니다.


여전히 직장에서 스트레스받습니다. 부캐를 몇 개 갖고 있지만 부수입이 늘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월급만으로도 헐떡이며 사는 건 다르지 않습니다. 십수 년째 반복되는 일살이지만 적어도 술에 의지하는 일은 없어졌습니다. 술 생각이 나는 순간도 자주 있습니다. 이런 날 소주 한잔 마시면 좋겠다 싶은 순간도 덤덤하게 넘깁니다. 유혹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마시지 않았을 때 누릴 수 있는 좋은 점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앞서 나열한 이유만으로도 술을 마시지 않을 동기는 충분합니다. 일 년 전과 다른 일상을 살면서 45년 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충만함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술을 즐기는 이도, 좋아하지 않는 이에게도 술을 끊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인 건 맞습니다. 어떤 행위를 일상에서 완전히 지운다는 건 웬만한 각오로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습관을 만들 때 공통으로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좋은 습관을 갖게 되었을 때의 느낌을 상상해보거나, 좋은 습관을 하지 않았을 때 잃게 되는 것들을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이를 통해 포기하지 않게 하고, 다시 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하기 위함입니다. 


술을 끊는 것뿐만 아니라 담배도 게임도 바람직하지 않은 습관을 없애려면 단호해야 합니다. 습관을 만드는 것만큼 지우는 것 또한 만만치 않을 테니까요. 쉽지 않은 건 맞지만 그렇다고 타협만 하며 지낼 수는 없습니다. 저처럼 계기를 만들어 단번에 단호하게 실행에 옮겨야 할 때도 있습니다. 대가를 치르는 만큼 얻을 수 있는 게 더 많을 것입니다. 그 증거를 저에게서 찾아도 좋습니다. 지금 무언가 대단한 결심을 준비하고 있다면 제가 추천하는 방법을 실천해보셨으면 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좋은 습관을 갖게 되었을 때 얻게 될 장점을 상상해보거나, 원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을 때 잃게 되는 것들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둘 중 어느 것이든 분명한 건 단호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바라는 그 무엇을 꼭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길 바랍니다.



2022. 10. 08.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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