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준 Oct 09. 202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022. 10. 09.  07:54



다리를 터는 옆 테이블 남자 때문에 집중이 안 됩니다. 집에서 글을 쓰다가 숙제가 싫다며 짜증 내는 둘째를 피해 자리 잡은 게 하필 다리 터는 남자 옆입니다. 20분 남짓 앉아 있었지만 도무지 집중이 안 됩니다. 노트북 화면에만 눈을 고정해보지만 시야에 저절로 들어옵니다. 벽을 향해 눈을 돌리지 않는 이상 터는 다리가 계속 눈에 알짱거립니다. "다리 좀 털지 마!"라고 말하고 싶을 지경입니다. 당신 때문에 내가 집중이 안 되고, 내 시간을 당신 때문에 낭비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난다고, 그러니 적당히 좀 하라고. 당신이 무엇을 하든지 신경 쓰지 않을 테니 다리만 털지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신경 쓰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아직 내공이 부족해서 그렇게까지 못하겠습니다. 누구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면 누군가를 핑계로 삼으면 됩니다. 그러나 스스로 낭비하는 시간에는 어떤가요? 정작 자신에게는 관대하게 잣대를 대고 있지는 않나요?  

4시 반에 알람을 맞춰놓았습니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납니다. 일단 눈을 뜨면 무조건 이불 밖으로 나옵니다. 밍그적거리다 2,30분 더 자는 건 일도 아닙니다. 일어날 땐 여지를 주지 않는 게 잠을 깨는 저만의 확실한 방법입니다. 출근 시간이 오래 걸려 일찍 일어나는 건 아닙니다. 매일 정해놓은 일상을 반복하기 위해서입니다. 10분 동안 일기 쓰기, 블로그 포스팅이나 원고 쓰기, 브런치에 글 발행, 이동 중 책 읽기가 매일 정해놓은 일상입니다. 마치 톱니가 돌듯 정해진 시간 정해진 분량을 해내야 하는 매일입니다. 그러니 시간을 빼앗기는 행동을 최소화합니다. 

일기를 쓰기 위해 책상에 앉습니다. 어떤 내용을 쓸지 생각합니다. 어제 있었던 일, 동료와 나눈 대화, 딸들에게 저녁을 차려준 일, 아내의 학교 생활 등. 다양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쓰는 시간 10분은 정해져 있습니다. 생각하는 시간을 줄일수록 일기 쓰는 시간도 줄어듭니다. 자칫 생각이 늘어지거나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며 20분 이상 걸리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다음 행동에 조바심이 납니다. 오디오 북을 고를 때도 읽고 싶은 책이 한 번에 눈에 띄면 시간을 줄입니다. 마음에 드는 책이 없으면 화면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또 조바심이 납니다. 대충 한 권을 고르고 주차장으로 향합니다. 어쩌다 한 번이지만 이중주차되어 있으면 입 속에 욕이 피어납니다. 주변에 아무도 없길 다행입니다. 씩씩거리며 차를 밀어봅니다. 얼레벌레 5분이 지납니다. 차가 도로 위에 올라서기까지 1시간 남짓 걸립니다. 

대부분 교차로 신호는 대기 한 번에 통과할 수 있습니다. 평균 속도 이상으로 달립니다. 회사까지 1시간 반이 걸리는 길을 새벽에는 40분 이내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일찍 차를 몰고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아깝기 때문입니다. 무사히 사무실에 도착하면 그때부터 글쓰기에 들어갑니다. 중간에 자리를 옮기는 시간을 제외하고 8시 40분까지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으로 채웁니다. 단 5분도 헛투루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저는 원래 시간에 관대했습니다. 누구 못지않게 시간을 낭비하며 살아왔습니다. 우선순위에 시간을 투자하기보다 지금 당장 재미를 쫓아 몇 시간이고 낭비했었습니다. 스트레스를 푼다면 몇 시간씩 거리를 싸돌아 다녔습니다. 그렇다고 남는 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일하기 싫다는 핑계로 업무 중 땡땡이도 칩니다. 그러고 놀면서 잠깐의 여유를 부려보지만 결국 주말에 출근하는 현실과 마주합니다. 주말이면 TV 앞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TV가 지겨워지면 스마트폰으로 눈이 갑니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하루 종일 별 의미 없는 행동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드라마 몇 편을 본다고 자기 계발이 되는 것도 아니고, 예능 프로그램을 넋 놓고 본다고 업무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당장 재미만 쫓으며 내 시간을 낭비하는 데 관대했었습니다. 


스스로 낭비했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고 싶었습니다. 그 시간을 그러모았다면 이미 원하는 것 몇 가지는 해냈을 것 같습니다. 자격증도 따고 영어 회화도 제법 되고 괜찮은 직장도 다니고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에 매달려봐야 바뀌는 건 없습니다. 차라리 그럴 정성이면 지금을 잘 사는 게 더 나은 선택일 것입니다. 그래서 일어나는 시간도 점차 당기고, 출근 전까지 해내야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낭비되는 시간이 없도록 바짝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시간을 내 의지대로 통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직장을 다니고 월급을 받기 위해서는 내 시간을 내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을 차치하더라도,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은 내 의지대로 하는 게 맞을 것입니다. 이미 낭비했던 전력이 있고, 앞으로 다시 그랬다가는 더 나은 삶을 보장받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합니다. 


하루 중 새벽 시간, 출근 전까지 내가 만든 시간만큼은 누구에게도 내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은 과감히 내려두고,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은 철저히 지켜가는 게 잃어버린 내 시간을 되찾는 것입니다. 한번 흘러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더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지난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후회 한 번으로 흘려보냈으면 합니다. 더 중요한 건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입니다. 하루 중 몇 시간씩 내 뜻대로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드뭅니다. 하지만 단 몇 분이라도 내 의지대로 사용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 몇 분이 쌓이면 몇 시간이 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 하는 게 내 시간을 잃어버리지 않고, 후회를 만들지 않는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2022. 10. 09.  17:56 

     


  

매거진의 이전글 금주 314일째, 진작에 끊을 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