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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Oct 13. 2022

포기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들

2022. 10. 13.  07:42



생각이 많아지면 첫 문장을 시작 못 합니다. 쓰고 지우길 반복하면 몇십 분이 금방입니다. 생각이 많다는 건 말하고 싶은 내용이 선명하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할 말이 명확하지 않을 때 중언부언하듯 쓸 내용도 명확하지 않을 때 잡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시간만 보내고 제대로 된 글 한 편을 완성하지 못합니다.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낭비됐다는 시간이 정말 아무 의미 없을까요?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낭비이기보다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무언가를 희생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무언가에 집중할 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포기해야 할 게 있기 마련입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그냥 읽으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짧은 생각으로 읽기만 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을 거로 믿었습니다. 누구도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한다고 알려주지 않았고 배울 생각도 못했습니다. 읽으면 좋다고 하는 데 어디에 어떻게 좋은지 모르니 의심은 가졌습니다. 의심한다고 속시원히 답을 해줄 사람도 없으니 일단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읽으면서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시간입니다. 고등학교 때 1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통학하면서 며칠 동안 소설책 한 권을 읽었더랬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자기 계발서 한 권을 사도 며칠 몇 달이 걸려도 다 읽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책에 관심도 없었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을 때였습니다. 몇 날 며칠이 걸려도 읽으면 다행 못 읽으면 마는 그런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작정하고 책을 읽기로 했을 땐 마음가짐이 달랐습니다. 손에 든 책은 어떻게 해서든 읽어내고 싶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기까지 연습이 필요하듯 책 한 권을 읽는 것도 연습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손에 든 책은 완독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한 권을 다 읽는데 몇 시간이 걸리는지 알면 다음 책 도전이 그나마 쉬울 것 같았습니다. 책을 통해 배우는 건 그다음 문제라고 여겼습니다.


한 권을 다 읽기까지 이틀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출근 전 잠깐, 점심 먹고 짬 내서 읽고, 잠들기 전 읽으니 이틀이 꼬박 걸렸습니다. 이틀이 걸렸지만 다 읽었다는 성취감이 더 컸습니다. 책을 읽는다고 자랑할 수도 없으니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야근도 하고 회식도 하고 친구와 약속도 잡으면서 책을 읽어야 했습니다. 그때까지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게 당연했습니다. 당연한 걸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었습니다. 반대로 책 읽는 시간도 늘리고 싶었습니다. 남들 몰래 짬짬이 책을 읽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다 읽고 났을 때 혼자만 느끼는 성취감에 뿌듯했습니다. 마음으로 주변 사람에게 들리게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나 책 읽는다'


책 읽는다고 말하지 못하니 행동이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술 한잔 하자고 불러내는 동료, 친구를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회수가 거듭될수록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당시 제 삶의 무게 중심이 책으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더 가치 있는 데 시간을 투자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친구나 동료와 우정을 유지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변화가 필요한 순간이었고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불투명하긴 했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책을 읽는 쪽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라 확신했습니다. 손에 쥐고 있는 걸 놓아야 새것을 쥘 수 있는 것처럼 저는 시간을 포기하고 시간을 선택했습니다.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을 줄여갔습니다. 만나자는 연락이 와도 이런저런 핑계를 댔습니다.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받은 동료가 소주 한잔 하자는 부탁도 거절했습니다. 내가 없어도 되는 술자리는 알아서 빠졌습니다. 놀아달라는 친구의 전화도 외면했습니다. 업무 시간 외 사람들과 어울리길 포기하고 그 시간을 나에게 투자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그 선택이 옳았다고 믿었습니다. 만나는 횟수가 줄어 관계가 멀어진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내 인생 나를 위해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내가 먼저이고 주변 사람은 다음입니다. 그렇게 몇 달씩 연락을 안 하고 지내고 별 일 생기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연락해 반갑게 맞아주면 나 또한 반갑게 대하면 그만입니다. 관계가 소원해지기보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과 만나는 시간이 줄면서 자연히 저를 위한 시간은 늘었습니다. 어디로든 이동하는 시간에는 꼭 책을 들었습니다. 운전할 땐 오디오북, 지하철에서는 종이책, 버스에서는 전자책. 읽는 시간이 쌓일수록 읽는 속도도 빨라졌습니다. 책 한 권을 평균 3~4시간 만에 읽었습니다. 읽기만 했던 건 아닙니다. 읽고 난 책에서 제게 꼭 필요한 내용은 꾸준히 기록했습니다. 서평을 쓰기도 하고 기억하고 싶은 문장은 옮겨 적기도 하고 밑줄 친 책을 사진으로 남겨놓기도 했습니다. 나를 위한 시간을 늘린 덕분에 삶을 변화시킨 만큼의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살면서 한 번쯤은 무언가 미쳐야 할 때가 옵니다. 신입사원은 업무를 배우기 위해, 학생은 중요한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은퇴를 앞둔 이는 새로운 직업을 갖기 위함입니다. 바라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남들보다 빨리 성과를 내고 싶다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게 진리입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 다 만나고, 가고 싶은 곳 다 다니고,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나에게 투자할 시간이 없다면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을 것입니다. 남이 아닌 나를 위한 투자입니다. 한 번쯤은 독해질 필요도 있습니다. 이런 나를 기다려주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멀리하는 게 맞을 것입니다. 어쩌면 원하는 변화를 얻게 되면 분명 더 좋은 사람도 덩달아 얻게 될 테니 말입니다. 지금 목표를 성취해야 한다면 가진 것 중 포기해야 할 게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포기하는 것과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명확히 할 수 있다면 분명 더 나은 삶으로 여러분을 데려다줄 수 있을 거로 믿습니다.



2022. 10. 1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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