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겁니다
2022. 10. 15. 06:41
서울역 맥도날드에는 빈자리가 안 보였다. 그 옆 롯데리아는 사정이 달랐다. 비어있는 키오스크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1인석에 자리를 잡았다. 출발 시간은 7시 50분, 상무님은 그보다 일찍 도착해 전화할 게 뻔했다. 계산해보면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20분 남짓이다. 노트북을 켰다. 손이 시키는 대로 블로그를 실행시켰다. 시간에 쫓길 때 쓰기 쉬운 글은 지금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적는 것이다. 의미를 생각할 필요도, 첫 문장을 고민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그 사이 아메리카노를 받아와 두어 모금 마셨다. 카페인이 몸을 타고 도는지는 모르겠지만 커피를 마셨다는 건 글을 쓸 자세가 되었다는 일종의 신호였다. 4년째 내 몸은 커피를 마시면 글을 써야 한다고, 글을 쓰려면 커피를 마셔야 한다고 알고 있다. 출발선에 선 100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글 쓸 준비를 마쳤고 신호가 떨어지길 기다렸다.
그 시간 롯데리아 안의 풍경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금요일 아침 7시, 그곳에 있으려면 얼마나 일찍 서둘러 준비를 했을까? 나도 5시 25분에 서울역 가는 버스를 탔고, 6시 40분 도착해 롯데리아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들의 아침이나 나의 아침이나 다를 게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들의 부지런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버스에서 읽은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신재현 작가의 《어른의 태도》에서 바쁘게 사는 자신에게 칭찬을 통해 셀프 위로를 건네보라고 한다. 스스로를 돌볼 수 있을 때 자존감도 높아지고 삶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겼다. 책 내용을 인용하며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을 찰나, 상무님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으면 어떻게 답해야 할지 미리 머릿속에 정리해 두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지금 가고 있습니다. 아침은 안 먹어도 되니 먼저 드십시오."
통화하며 주변을 둘러보는 데 롯데리아 매장 앞에 상무님이 보였다. 최악의 상황으로 예상했던 시나리오다. 정신없이 글을 쓰고 있을 때 멀리서 나를 알아보고 먼저 말을 걸어오면 어떻게 하지? 설마 그럴 일이 생기겠어? 했던 상황이 곧 벌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상무님은 햄버거 먹고 있겠다며 전화를 끊었고 곧장 롯데리아 안으로 들어왔다. 그 모습을 지켜본 내 손을 떨리기 시작했다. 쓰고 있던 글을 마무리 지을까? 아니면 이대로 노트북을 덮고 눈에 띄지 않게 밖으로 나가야 하나? 쓰던 글은 차치하더라도 눈에 띄면 곤란한 상황으로 이어질 게 뻔했다.
예상 질문은 이랬다. '아침부터 노트북 켜고 뭐하냐?', '오고 있다더니 여기 있었네?', '뭐 하고 있었는지 말해봐라' 대충 얼버무리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어떤 질문도 속시원히 대답 못할 것 같았다. 어떤 답을 하더라도 그동안의 '이중생활'이 어느 정도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그 자리에서는 상무님과 마주치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 '눈에 띄지 마라'를 속으로 주문처럼 외치며 남은 글을 마무리했다. 발행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노트북을 덮고 가방을 챙겼다. 그 사이 거울 통해 보이는 상무님은 키오스크와 눈치게임 중이었다. 주문을 제대로 넣고 있는지 옆 화면을 곁눈질하느냐 정신없어 보였다. 다행이다. 가방을 챙겨 들고 은폐 엄폐와는 거리가 먼 상체만 비스듬히 돌린 채 상무님 눈에 띄지 않길 바라며 슬금슬금 걸어 나왔다. 눈치 없는 발이 멀쩡한 빈 의자를 건드려 소음을 내긴 했지만 했지만 다행히 눈에 띄지는 않았고, 무사히 롯데리아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불과 20여 분 사이 일어난 상황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에서는 '자신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장렬히 전사했다고 전해진다. 그 말의 의미는 적은 물론 아군의 사기를 걱정했기 때문일 테다. 살다 보면 주변에 알려서 좋은 게 있는 반면 알리지 않아도 되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나 같은 직장인이 평소 책을 읽고 이렇게 글을 쓴다고 동료나 상사에게 말하면 애정 담긴 시선만 받지 않는다. 물론 좋은 의미로 격려와 부러움을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곱지 않는 시선도 있는 게 사실이다. 내 역할을 제대로 못했을 때 좋은 구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네가 일을 그렇게 밖에 못하는 게 책 읽고 글 쓰느라 그런 거 아니야!"
물론 직접 겪어보지 않은 상황이라 어떤 반응일지는 알 수 없다. 또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다. 안타깝지만 같은 상황을 먼저 경험했던 분에 의하면 짐작하는 반응은 현실이 된다고 충고했다. 숨길 수 있으면 직장을 그만둘 때까지 숨기라고 한다. 중간에 알아봤자 득 보다 실이 많다는 의미에서다.
지금 다니는 직장에는 2018년 5월 입사했다. 입사 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글을 써온 시간과 직장에 몸담은 시간의 길이가 같다. 여태껏 단 한 번도 읽고 쓰는 나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야 한다고 신념처럼 믿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내 신념이 맞는 것 같다. 말을 하는 순간 내 일상이 자유롭지 못할 게 짐작된다. 모르면 관심을 안 갖지만, 알면 사사건건 관심을 드러낼 게 뻔하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의미로 관심을 보일 수 있다. 누군가는 읽고 쓰는 것에 관심 있을 수 있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은퇴 이후에 대한 고민도 같다. 저마다 준비를 하고 있겠지만 읽고 쓰는 삶도 또 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나도 그들에게 내가 선택한 길이 제법 괜찮은 대안이라고 당당하게 말해주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직장은 단순한 인간관계 이전에 조직의 이익이 먼저인 상하관계가 더 단단하다. 조직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각자의 자리와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상하 관계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 이왕이면 더 유능한 상사나 부하직원을 두고 싶은 게 나는 물론 그들도 같은 마음일 테다. 그러니 딴짓하며 제 역할을 못하는 동료를 색안경을 끼고 볼게 뻔하고 또 그런 빌미가 되는 걸 원치 않는다.
빌런을 물리치는 결정적 한 방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결정적 한 장면을 보기 위해 2시간 동안 화면에서 눈을 못 떼는 이유이기도 하다. 5년째 품속에 사표를 넣고 산다. 아니 앞으로 얼마나 더 품속에 있을지 알 수 없다. 새로운 인생을 위한 준비이니 철저해야 한다. 아이언맨이 아크 원자로에 남은 에너지를 그러모아 지구를 구했듯, 읽고 쓰는 역량이 최대치가 되었을 때 품 속 사표도 빛을 보게 된다. 그때까지는 나의 읽고 쓰는 삶을 그들에게 알리지 않을 것이다.
2022. 10. 15. 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