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윤이는 달걀말이가 먹고 싶다고 했다

by 김형준

2022. 10. 27. 07:33



학원 마치고 돌아온 채윤이는 다짜고짜 저녁 메뉴를 물었다. 만들어 놓은 반찬과 아내가 아침에 끓여 놓은 시금치 된장국이라고 했다. 대뜸 먹고 싶은 게 있단다. 반사적으로 배달음식 일거로 짐작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냉장고를 열었다. 야채칸을 뒤적였다. 양파, 당근, 팽이버섯, 대파 그리고 달걀. 애호박은 다음 기회로. 내 기준엔 만족스러운 재료들이다. 각각의 재료는 최대한 작은 크기로 썬다. 서로 뭉쳤을 때 식감을 고려해야 한다. 무리 중 큰 놈이 있으면 다른 놈이 맛을 내지 못한다. 골고루 자리를 잡아야 씹었을 때 다양한 맛과 식감을 유지할 수 있다. 농구공을 한 손에 잡을 수 있는 손으로 칼을 잡고 온 신경을 집중해 2 ~ 3 밀리미터 크기로 썬다.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썰어놓은 재료는 투명한 유리볼, TV 요리 프로그램에서 항상 메인을 차지하는 재료가 훤히 보이는 그 투명볼을 말한다. 투명볼은 그 안에 어떤 재료가 얼마나 들어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고,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도 알아챌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데 썪인 재료 위로 달걀 5개를 깨 넣는다. 젓가락으로 휘젓기 전 소금과 후추, 설탕 약간으로 간을 한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그동안 헬스장에서 근육을 만들었다. 달걀의 끈적함이 사라질 때까지 있는 힘껏 저어준다. 덩달아 야채도 한데 버무려진다. 젓가락으로 점도를 확인하며 만족스러울 때까지 남은 힘을 쏟아붓는다.


잘 섞인 달걀물은 옆에 두고 프라이팬을 등판시킨다. 예열을 하고 나면 불꽃이 보일랑 말랑하게 조절해놓는다. 식용유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묻혀 바른다. 기름이 많으면 모양 잡기 어렵다. 온도를 확인했으면 이제 달걀물을 무대에 올릴 차례다. 이제부터 기다림의 미학이다. 프라이팬을 완전히 덮게 부어준다. 열이 약하니 천천히 익는다. 달걀물의 물성이 남아있을 때 뒤집기에 들어간다. 그래야 단단하게 말린다. 한 번, 두 번 말아주면 프라이팬의 가장자리에 위치한다. 두 번째 달걀물을 남은 공간에 부어준다. 이때도 야채를 골고루 자리 잡아줘야 식감을 유지할 수 있다. 또다시 기다림이 이어진다. 같은 과정을 두 번 더 반복하니 손바닥 두께만 한 달걀말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은 건 겉바속촉, 침이 고일만큼의 색을 내는 게 포인트다. 지그시 눌러주기를 반복하며 속까지 익혀준다.


채윤이는 달걀말이가 먹고 싶다고 했다. 밥을 새로 안쳐 놓았던 참이라 그 사이 준비하면 될 것 같았다. 밥과 달걀말이가 준비되면 큰딸도 학원에서 돌아올 시간일 것 같았다. 먹고 싶은 걸 말하는 경우가 드문 아이다. 기껏 배달 음식 중 하나를 말하는 게 전부다. 주면 주는 대로 정말 싫어하는 게 아니면 군말 안 하고 먹는다. 그래도 늘 반찬 고민은 무한반복이다. 만들어놓은 반찬으로 대충 때우려고 했지만 채윤이 덕분에 따뜻한 달걀말이를 먹을 수 있었다. 한 끼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입장에서 먹고 싶은 걸 말해주는 것만큼 고마운 것도 없다. 아내는 수시로 먹고 싶은 게 있는지 묻는다. 그 심정을 나도 점점 이해해 간다. 평일 3일을 저녁밥 챙기려다 보니 신경이 안 쓰일 수 없다. 그러니 먹고 싶은 걸 말해 내 고민을 덜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먹고 싶은 걸 말하는 게 당연하다. 부모도 자식이 먹고 싶은 거라면 빚내서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어려서는 이런 요구가 당연했지만 크면서는 점점 당연해지지 않는 것 같다. 눈치를 보게 된다.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주변의 눈치를 봐야 사회생활을 잘한다고 인정받는다. 또 눈치 빠르게 알아서 입을 닫아주는 사람을 원하기도 한다. 내가 원하는 걸 당당하게 말하기보다 무리에 묻어가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게 처세고 잘 사는 방법 중 하나이다. 마흔 중반을 넘긴 우리 또래는 침묵이 미덕이었다. 윗사람이 먹고 싶은 걸 따라먹고, 월급은 주는 대로 받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내는 게 정석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살아냈으니 지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우리를 이해 못 할 수도 있다. 왜 그래야 하는지,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말하는 젊은 세대도 충분히 이해 간다. 어쩌면 내 권리를 당당하게 말하는 게 건강한 조직이고 단단한 사회를 만드는 시작일 수 있다. 말하지 못해 곪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살아야 건강해진다. 당연한 권리는 알아서 챙겨야 한다. 남의 눈치만 보며 내가 없는 삶을 살면 남는 건 후회뿐이다. 대신 예의를 지켰으면 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내 것을 챙기지 않아야 한다. 나만 잘 살겠다고 욕심을 부리면 결국 나만 남는다. 때로는 손해도 볼 줄 알아야 사람이 남는 법이다. 채윤이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내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상대방을 배려할 줄도 알고, 때로는 손해도 보면서 말이다. 채윤이 요즘 한창 클 때다. 학원에 태권도에 춤 연습까지. 밥을 먹고 돌아선 입에 또 과자나 빵을 물만큼 식욕이 넘친다. 지금은 네가 먹고 싶은 것 만, 너만 생각해도 괜찮다. 엄마 아빠는 너를 위해 어떤 반찬이든 만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 너는 그저 맛있게 먹고 건강하게 크면 그걸로 충분하다. 아빠는 너에게 건강하게 자라줄 걸 당당하게 요구한다.


2022. 10. 27. 08:28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빠가 딸에게 줄 수 있는 영양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