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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Nov 20. 2022

엄마가 차린  엄마의 생일상

2022. 11. 20.  06:52


엄마의 생일은 10월 31일이다. 달력의 작은 글씨, 음력으로 계산했을 때 표시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 날이다. 하필이면 이런 날 태어나셨을까? 원해서 태어난 건 아니겠지만, 있다가 없다가 하는 생일처럼 살아온 시간도 굴곡이 많았다. 일 년에 한 번 태어난 걸 축하받는 날이지만 엄마에게 잊어도 그만인 그런 날이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날짜를 계산해 놓지 않아서 생일인 것도 모르고 지나간 적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또 어릴 땐 먹고사는 문제로 당신의 생일을 챙기는 게 사치라고 여겼던 것 같다. 엄마 스스로 생일을 챙긴 적도, 직접 미역국을 끓여 생일상을 차린 적도, 당신 입으로 생일이라고 먼저 말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먼저 말을 못 꺼낸 또 하나의 이유는 같은 달에 큰 아들, 작은 아들 생일이 일주일 간격으로 있기도 해서다. 아들이 셋이었지만 생일을 기억해주지 못했다.


결혼하고부터 엄마의 생일을 챙겼다. 내가 챙겼다기보다 아내가 먼저 챙겼다. 달력에 표시되지 않는 해에도 꼭 기록해 놓았다. 내가 10년 결혼 생활을 이어온 동안 엄마는 입주 요양 도우미로 생활하셨다. 휴가도 없고 휴일도 없이 365일 살았다. 생일이라고 밥상을 차려드릴 여건이 아니었다. 그래서 식당을 정해 제대로 된 한 끼를 대접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런 밥상이라도 손녀가 있어서인지 기꺼이 함께해 주셨다. 남의 노력과 정성을 내 노력과 정성인 양 그렇게 생일상을 차려드렸다. 당신도 그게 편하다 하시면서 오히려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셨다.


엄마는 3년 전 독립하셨다. 곁을 지켰던 이들이 생을 다해서 더 이상 일 할 목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오롯이 혼자되었고 여전히 생일은 돌아왔다. 그제야 생일 밥상을 받을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아내와 나도 생일상을 차려드리는 게 당연한 걸로 생각했다. 엄마는 아닌가 보다. 자식 며느리가 일 년에 한 번 차려주는 밥상도 한사코 물린다. 바쁜 자식에게 피해를 주는 게 싫다는 이유이다. 작년에도, 그 전에도 식당 밥으로 생일을 대신했다. 그 사이 커버린 손녀들은 애교와는 거리가 멀어졌고 생일날 재미도 덜해진 것 같다. 그래도 다 같이 둘러앉아 함께 먹는 한 끼를 늘 기다리신 듯 즐겁게 드셔주셨다.


올해도 엄마의 생일은 달력에 없었다. 보이지 않는 날짜도 평일이어서 미리 당겨 주말에 생일을 하기로 했다. 아내는 생일상을 직접 차리겠다고 했다. 미역국을 끓이고, 생선을 굽고, 회 한 접시와 밑반찬으로 한 상을 준비하겠단다. 또 엄마의 얼굴이 들어간 현수막도 제작하기로 했지만, 그럴듯한 사진이 없어서 얼굴이 안 들어간 현수막을 미리 준비했다. 한참 학기 중인 아내는 엄마를 초대한 날에도 과제 때문에 집을 비워야 했다. 미리 준비를 해놓는다고는 했지만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이런 상황을 꿰뚫고 계신 건지, 한사코 우리 집에는 안 가겠다고 하신다. 대신 당신의 집으로 오라고 하신다. 직접 생일상을 차릴 테니 와서 먹고 가란다. 이미 마음으로 정한 탓에 꿈쩍 않는다. 나도 더 말하지 않았다.


생일인 걸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함 감정이 들기 마련이다. 하물며 자신의 생일에 직접 생일상을 차리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나라면 선뜻 못할 것 같다. 모르고 넘어가는 게 오히려 마음 편하지 싶다.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당신의 생일상을 준비했을까? 제주도에서 잡았다는 갈치를 사다가 굽고, 야들야들한 소고기로 전골을 끓이고, 손녀들이 잘 먹는 채끝살(짐작컨데)을 구우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밥상을 물리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당신이 직접 차릴 힘이 있으니 기꺼이 준비했다고 말하신다. 나이 들었다고 자식에게 폐 끼치는 부모이고 싶지 않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셨다. 같은 의미인 것 같다.


여전히 툴툴거리면서 한 공기를 비웠다. 내 앞에 국과 밥을 다 비우는 게 차린 정성에 감사를 전하는 것일 테다. 손이 큰 탓에 밥상 위 음식들을 다 비우지는 못해도, 양껏 먹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빈 그릇을 보는 엄마도 흐뭇했을 터다. 아내가 준비한 현수막 앞에서 고깔모자를 쓰고 나이만큼 초를 켠 케이크와 손녀를 곁에 두고 사진을 찍는 걸로 음식을 준비한 수고를 잊었길 바라본다. 자식 손으로 직접 만든 음식을 대접해드리지 못했지만 다른 방법으로 생일을 축하했다. 당신의 기력이 남아 있는 한 직접을 음식을 준비하겠다 하시니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감사의 표현을 준비해야겠다. 음식마다 간이 조금씩 달라져도 더 오래 당신이 만들어주는 음식을 받아먹고 싶습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2022. 11. 20.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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