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준 Dec 23. 2022

식탁 위에도 행복이 피었다

2022. 12. 23.  07:33


거실에는 세 모녀가 TV 향해 나란히 앉아 있다. 주방에는 김치찌개가 끓고 있다. 가방을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었다. 거실과 방을 가득 채운 김치찌개 냄새가 식욕을 당긴다. 2학기 일정을 마친 아내가 일찍 퇴근해 찌개를 끓였다. 있는 반찬을 꺼내는 동안 아내가 달걀말이를 부친다. 주먹밥 말 때 넣는 말린 조미 수프 한 스푼과 달걀 4개를 풀었다. 열이 오른 프라이팬에 다 붓고 두 어번 말아준다. 약한 불로 익혀준다.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밥과 국을 담아내고 덜어놓은 반찬을 식탁에 차린다. 전날 장모님이 보내 준 김치를 담아내고 노릇하게 익은 달걀말이를 한 입 두께로 썰어 담았다. 숟가락과 젓가락이 제 주인을 찾으면 비로소 네 식구가 식탁에 둘러앉는다.


다음 주 공연할 뮤지컬 준비가 불만인 큰딸의 넋두리, 여전히 태권도장이 재미있는 둘째. 네 명 손은 분주하게 식탁 위를 오가고, 네 입은 부지런히 씹으며 틈틈이 제 할 말을 이어갔다. 중학생이어도 여전히 밥을 흘리고 어설픈 젓가락질로 옷소매에 음식을 묻히는 초등학교 3학년. 언니가 한 마디 하면 질세라 되받아치는 동생. 이것저것 골고루 먹으라고 반찬을 덜어 밥그릇에 담아주는 아내. 이런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언제 이렇게 변했나 싶었다. 하루 한 끼 먹는 밥상에서 내 눈치만 봤던 가족에서 어느새 대화와 웃음이 자연스러워졌다.    


두 딸이 클수록 고민도 함께 자랐다.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 때문에 자신감은 바닥이었다. 월급으로 한 달은 살았지만 미래를 준비할 수 없었다. 다들 비슷하게 산다고 말하지만 내 눈에는 안 그래 보였다. 살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내 시간과 능력을 담보로 월급을 받는 삶이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내 의지대로 산다기보다 살기 위해 의지를 다져야 하는 순서가 뒤바뀐 삶이었다. 그러니 매사가 똑바로 보일리 없었다. 불만만 쌓였다. 직장에 가정에 나 자신에게. 불만은 화가 되어 결국 아이들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았던 것 같다. 밥상에 둘러앉으면 화를 푸는 시간이었다. 밥을 흘리는 큰딸을 쏘아붙이고, 음식을 묻히는 둘째에게 쓴 말을 내뱉었다. 그런다고 화가 풀리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뱉어낼수록 감정만 격해졌다. 그때는 먹기 위해 밥상을 차리는 게 아니라 두 딸을 혼내기 위해 밥상을 차렸던 건 아닐까 싶다. 한참 잘못하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고 달라지기로 했다.     


달라지는 데 특별한 걸 바라지 않았다. 그저 넉넉한 마음만 있으면 충분했다. 넉넉한 마음도 어려운 건 아니었다. 생각만 조금 바꾸면 가능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태도가 시작이었다. 태도를 선택하고 선택한 대로 행동했다. 살가운 아빠는 아직이지만 늘 미소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밥상에서 한 번이라도 눈을 맞추려고 한다. 질문 하나에도 컵이 넘어지며 물을 쏟아내듯 할 말이 많은 아이들이었다. 그런 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감사하다. 이전의 기억을 지웠는지 잊었는지는 모르지만, 같이 먹는 그 순간 대화하고 웃어 보이는 모습에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도 든다. 더 늦기 전에 달라질 수 있어서 더 다행이고 감사하다.


행복을 위해 대단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화가 많고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였던 것 같다. 그때는 외부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했다. 내 일이 잘 풀리고 월급을 많이 받고 좋은 걸 해줄 수 있는 내가 되면 행복도 찾아올 거로 믿었다. 그러니 일이 안 풀리면 당연히 행복을 누릴 자격도 안 된다고 여겼다. 잘못 생각했었다. 행복은 내 마음에 달렸다. 여전히 직장을 다니고 시간에 쫓겨 살아도 지금이 행복하다. 저녁 한 끼 먹기 위해 가족과 둘러앉고, 늘 먹던 반찬이어도 그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그저 반복되는 일상이어도 대화하고 나눌 수 있는 게 즐겁다. 들어주고 말하고 맞장구쳐주고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이었다. 어렵지 않기에 더 지키고 싶은 순간이다. 어려운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는 걸 선택하고 내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어서도 다행이다. 내 의지대로 선택한 행복을 지키며 살고 싶다.


2022. 12. 23.  08:45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가 차린 엄마의 생일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