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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Dec 06. 2022

쿠폰에 도장을 찍는 정성으로

2022. 12. 06.  07:36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했습니다. 요즘은 흥정할 수 있는 곳이 재래시장뿐인 것 같습니다. 흥정은 주로 물건 값을 깎기 위해, 덤을 더 받기 위해 합니다. 시장 상인 분도 흥정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흥정 뒤 값을 깎아주거나 덤을 주면 인심이 좋은 주인장이 되니 마다할 이유 없습니다. 덤 하면 보너스 쿠폰을 들 수 있습니다. 커피 전문점의 춘추전국시대인 요즘 살아남기 위한 경쟁도 치열해 보입니다. 대형 전문점은 물론 동네 상점에 이르기까지 쿠폰 안 주는 가게가 드문 것 같습니다. 주 5일 찾는 단골 카페도 쿠폰에 도장을 찍어줍니다. 음료 한 잔에 도장 하나, 8잔을 마시면 원하는 음료 한 잔을 서비스로 줍니다. 2년 넘게 주중 매일 찾았으니 쿠폰도 제법 쌓였습니다.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쿠폰을 활용해 마시는 공짜 음료가 톡톡히 제 역할을 합니다. 매일 글 한 편 쓰기 위해 꾸준히 찾아간 덕분에 언제든 공짜 음료를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해마다 연말이면 스타벅스에서는 도장 17개를 찍으면 다이어리를 주는 행사가 진행 중입니다. 오롯이 17잔을 다 먹고 도장을 채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아 스탬프를 완성하는 이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 노력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매일 꾸준히 눈도장을 찍으며 한 잔씩 마시는 노력도 있고, 주변 사람이 찍어놓은 도장을 수소문해 양도받는 노력도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쿠폰은 절대 날로 먹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차곡차곡 쌓았을 때 덤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노력의 정도에 따라 남겨지는 의미도 다를 것입니다.


덤으로 받는 음료 한 잔도 쿠폰에 도장 찍는 꾸준한 정성이 필요합니다. 어디 세상 일에 정성이 안 필요한 일이 있기나 할까요? 한 끼 밥상을 차리는 것도, 한 편의 글을 쓰는 것도, 맡은 업무를 해내는 것도, 하물며 내리는 눈을 뚫고 출근하는데도 정성이 필요한 법입니다. 모두가 매사에 정성을 다하면 얼마나 충만한 일상이 될까요? 문제는 그러지 못한 데서 여러 문제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작은 일도 빨리 대충 하려니 없던 문제도 생기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만 신경 쓰고, 이 정도 괜찮겠지, 나만 아니면 돼 같은 생각과 행동이 일을 그르칩니다. 정도를 지키는 건 불편할 때도 있고 느립니다. 불편하고 느린 걸 참지 못하고 서두르고 편법을 쓰면 당장은 성과가 있어 보이지만 결국에는 모래 위에 쌓은 성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쿠폰을 처음 받았을 때는 나머지 빈칸을 언제 채우나 싶습니다. 남은 빈칸이 그저 멀게만 보입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한 칸씩 채워 갑니다. 또 누군가는 귀찮다며 다른 이의 도장을 빼앗아 오기도 합니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쿠폰 빈칸은 채워집니다. 하지만 의미는 다릅니다. 당연히 서비스 음료를 요구하는 태도도 달라집니다. 완성된 쿠폰이 많다 보니 회사 직원에게 인심 쓰듯 한 장씩 줄까 싶었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러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공짠데 그러면 어떠냐고 되물을 겁니다. 가게 주인 입장에서 생각해봤습니다. 도장이 쌓이는 동안 단골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일종의 신뢰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쿠폰이 완성된 건 신뢰관계도 완성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나의 꾸준한 정성으로 만든 쿠폰을 타인에게 함부로 주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지나친 비약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저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 여러 장, 아니 2년 넘게 같은 매장을 다니며 쌓인 신뢰를 생각하니 제 딴에 헛투루 쓸 수 없다는 의미였습니다. 


쿠폰을 완성하는 데도 정성이 필요하고, 내가 맡은 일에는 이보다 더한 정성이 드는 법입니다. 원하는 결과치가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하면 됩니다. 쿠폰 빈칸을 다 채우고 싶으면 꾸준히 방문하면 되고,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싶으면 모든 노력과 정성을 다하면 됩니다. 세상 일 쉽게 되는 게 없다고 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꾸준한 정성이 필요해 보입니다. 반대로 내가 들이는 노력과 정성만큼 결과도 그에 맞게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노력은 결코 배신하는 법이 없을 테니 말입니다. 내일 아침 단골 카페를 찾으면 두 잔을 덤으로 마실 수 있는 쿠폰 한 장이 또 완성됩니다. 완성된 쿠폰이 지갑을 든든하게 채우고 있습니다. 언제든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 마음껏 마실 수 있습니다. 아마도 매일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 대가라고 생각합니다. 당당히 노력한 만큼 덤으로 주어진 음료를 마음껏 즐길 수 있을 테고요. 다시 빈 쿠폰을 받으면 도장을 찍기 위해서, 아니 매일 글 쓰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기 위해 이곳을 찾을 것 같습니다. 이 노력이 쌓이면 분명 더 큰 보상이 따를 거로 믿습니다. 언젠가는요. 


2022. 12. 06.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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