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10. 06:37
사람은 실수 하기 마련이다. 어느 위치에 있든 한 두 번은 있기 마련이다. 기업 내에서도 말단부터 오너에 이르기까지 일을 하다 보면 실수는 한다. 그러나 오너의 그것은 여느 직원과는 다른 파장을 일으키기도 한다. 오너에 의해 기업에 문제가 발생하는 걸 '오너 리스크'라고 표현한다. 기업의 규모가 크든 작든 '오너 리스크'는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5년 전 입사했을 땐 신생기업이나 다름없었다. 업종을 바꿔 새롭게 시작한 지 2년 정도 된 회사였다. 그러니 조직 체계는 엉성했고 미래가 선명하지 않았다. 먼저 자리 잡고 있었던 옛 사수의 권유로 입사했고, 이곳에서 은퇴할 결심으로 이직을 결정했었다. 하지만 입사 두 달째 회식 자리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당하고 때려치우려고 했지만, 어쩌다 코가 꾀여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처음 갖는 술자리에서 나는 사장님의 타깃이 되어 별 꼴을 다 당했다. 낯선 경험이었다. 술을 마시면 사람이 변한다고 하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그때 사장님에게 받은 인상은 멀리 해야 할 사람이었다. 그날의 경험은 여전히 트라우마가 되어 남아 있다. 아직도 사장님과 단둘이 마주하면 저 깊은 곳에서부터 떨림이 시작된다. 대화를 이어갈수록 목소리가 떨리고 심하면 등골에 땀이 맺히기도 한다. 사적인 대화는 일절 안 한다. 어쩌면 혼자 점심을 먹기로 결정한 데 한몫했던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5년 중 2년은 회식 없이 지나갔다. 1년에 두 차례, 지금까지 네댓 번의 회식을 경험했다. 그때마다 사장님은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재주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저마다의 주량은 고려치 않고 일단 마시고 보자는 식의 권유가 그랬고, 직원의 태도가 거슬리면 날카롭게 꼬집어 주변 사람조차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말투가 그랬다. 한 마디로 술 마시는 내내 불편하기만 한 회식자리였다. 회식이 시작될 때부터 그런 아니다. 술이 술을 마시기 시작하는 그때부터 분위기가 급 반전된다. 그러니 분위기를 즐기기보다 일찍 끝나기만을 바랐던 것 같다.
이렇게 글을 쓰는 건 사장님을 무작정 '디스'하려는 건 아니다. 분명 이전의 사장님은 직원을 불편하게 했었다. 회식 이후 직장을 그만둔 직원도 있었다. 내가 겪은 비슷한 경험을 당한 직원 중 사장님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한 몇몇은 곧바로 그만두기도 했었다. 그러니 회식 자리가 일종의 '오너 리스크'였던 것이다. 하지만 조금씩 바람직한 변화가 생기는 것 같아서 이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다. 어디까지나 나만의 주관이고, 당연히 사장님 이하 전 직원이 이 글을 보지 않는다는 전제로 말이다.
회사는 해마다 성장했다. 수주도 늘었고 매출도 꾸준히 상승했다. 그 덕분에 난생처음 보너스도 2년째 받고 있다. 현장이 많아지면서 직원도 더 필요했다. 요즘은 어느 업종이나 인력난이 심각하다고 한다. 건설업도 예외 없다. 조건에 맞는 지원자를 찾고 면접 보는 게 삼겹살에서 꽃등심 식감을 기대하는 것과 같았다. 직원이 부족하면 업무에 부하가 걸리기 마련이다. 다니는 직원도 점점 불만이 쌓인다. 참다못해 그만두고 나가면 남은 직원이 오롯이 피해를 떠안는다. 오너의 역할은 조직이 톱니처럼 돌게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사장님도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채용이 결정됐지만 연락을 끊은 사람, 며칠 다니다가 그만두는 사람, 면접조차 보러 오지 않는 사람. 인력난이 심각한 걸 몸소 체험해서인지 사장님도 이전과는 달라 보였다.
5년 전 10명 남짓에서 지금은 30명이 넘었다. 현장 수와 매출 대비 직원이 더 필요하다. 다행히 최근에 다섯 명을 충원했다. 그나마 조금씩 현장 운용에 숨이 트이는 요즘이다. 그리고 어제 전체 회식이 있었다. 나는 아직 회식 자리가 불편하다. 입사 초 사장님과의 사건 때문이다. 술을 끊은 지 1년이 넘었고 술 마시길 강요하지 않기에 조금은 부담을 덜었다. 어제도 나처럼 비주류 직원은 따로 모여 앉았다. 마른 정신으로 술을 마시는 직원들을 지켜봤다. 언제나 센터를 차지하는 사장님은 한결같이 부어라 마셔라를 이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 불안했다. 술이 들어갈수록 자제력을 잃을 것이고, 자제력을 잃을수록 행동과 말투도 달라질게 보였다. 회식을 처음 경험하는 직원 중 누군가 나처럼 못 쓸 경험을 하게 되는 건 아닌지 조마조마했다. 아니라 다를까 술독에 빠진 직원 한 명이 사리 분별없이 사장님과 대화를 이어갔다. 보는 내가 다 아슬아슬했다. 예전 사장님 성격이 나왔다면 아마 주변에 시베리아에서 발달한 한냉 전선이 걸쳤을 수도 있다. 마주 앉아 사장님 표정을 유심히 지켜봤다. 술기운은 돌았지만 술기운에 맞서 행동과 말투를 자제하는 듯 보였다. 고비를 넘겼다. 혀가 말린 직원을 동료가 앞장서 집으로 보내면서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30여 분 임원 회의를 연상시키는 담소가 이어진 뒤 사장님은 대리기사를 불러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회식이 시작되고 3시간 만에 일어난 일이다. 여느 회식과 비교하면 이때부터가 본격 시작인데 말이다.
시간이 입혀질수록 가치를 더하는 게 있다. 모두의 입맛을 사로잡는 맛집이 그렇고, 누구나 좋아하는 미술작품이 그렇고,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음악이 그렇다. 무엇보다 오래 지날수록 믿음이 가고 편안함을 주는 사람도 그러하다. 5년 만에 지금 직장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규모가 커지는 점도 있지만 사장님의 태도가 달라지는 게 더 큰 이유이다. 술자리 주사도 자제하는 것 같았고, 평소 직원들에게 약속한 걸 지키려는 모습에서도 믿음이 생기고 있다. 누구나 실수는 한다. 실수보다 더 중요한 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장님도 시간이 갈수록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같다. 커지는 회사와 늘어나는 직원의 생계를 책임지려면 분명 이전과 같아서는 안 될 거로 생각하신 것 같다. 간혹 내 실수를 꾸짖는 이면에 단단한 조직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적어도 내 직원은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사명감도 있었다. 그런 변화를 눈으로 보면서 사장님에 대한 믿음도 조금씩 커졌다. 짐작 건데 '회식 오너 리스크'만 없어도 이 회사는 여느 대기업 못지않은 건실한 회사가 될 거로 믿는다.
나는 곧 이 회사를 떠날 것이다. 떠날 때 아쉬움이 남는 회사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더 단단해지고 건실해지고 더 많은 이익을 나누는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월급 때문에 사람 때문에 힘들어서 이직하는 직원이 없었으면 좋겠다. 스스로 더 나은 가치를 찾아 떠나지 않는 이상 오래 머물고 싶은 그런 곳이었으면 좋겠다. 그 중심에 사장님의 경영철학이 단단히 자리해 있었으면 한다. 직원에게는 월급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성장시켜줄 수 있는 비전을 가진 회사를 더 바랄 테니 말이다.
2022. 12. 10. 09: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