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17. 06:49
90년대 반항의 아이콘 영화배우 최민수. 다양한 사건 사고로 여러 차례 신문 1면을 장식했었다. 그런 그도 결혼을 했고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부모가 되어서도 그가 삶을 대하는 철학은 남달랐다. 나이를 떠나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큰아들도 연기자의 길을 선택했다. 최민수는 기꺼이 아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믿어주었다. 나도 부모로서 내 딸의 선택을 믿고 따라줄 수 있을지 생각해봤다. 다른 한편으로 부모 입장이 아닌 그의 아들 유성 군의 선택에 생각이 가 닿았다. 유명 대학을 포기하고 연기를 선택할 만큼 그를 움직인 게 무엇인지 궁금했다. 나라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나도 그와 같은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나는 어떤 선택을 했었지? 그때 나는 무언가에 깊이 빠져본 적 있었나? 좋아하는 걸 위해 인생을 걸어볼 생각은 왜 못했을까?
생각해보면 남들이 정해놓은 틀 안에서 살려고 했던 것 같다. 전공 안에서 직업을 선택하고, 직장을 다니며 월급을 받고 가정을 꾸리는 게 잘 사는 거로 믿었다. 그때는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미 진로를 정했기에 그 길이 맞는지 알았다. 대학을 다니면서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의욕이 앞서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현업에 뛰어들었지만 결국 섣부른 판단이었다. 20대의 4년 반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제야 다시 정신을 차렸고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당장 먹고 살 문제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인의 도움으로 새 직장을 얻었고 17년째 미리 그어놓은 선을 따라 앞만 보고 걸어가고 있다. 그나마 선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기에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다.
서른 살, 그때 만약 조금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유성 군(최민수의 아들)처럼 좋아하는 일에 인생을 걸겠다는 선택을 했다면? 조금 더 시간을 갖고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선택한 뒤 인생을 걸었다면. 선택을 믿고 바닥부터 시작하는 열정으로. 그랬다면 지금과 다른 인생을 살았을 수도 있다. 더 나은 삶일지 정반대의 인생을 살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뜻대로 되지 않아서 선택을 후회하고 있을 수도 있다. 앞 일을 알 수 없다는 걸 아는 최민수 씨가 아들에게 해준 말이 있다. 어떤 길을 선택해도 그 길은 결국 서로 닿게 되어있다고. 연기자를 선택하지 않아도 언제가 같은 고민을 다시 하게 된다는 의미인 것 같았다. 서른 살의 나도 당장 먹고살기 위해 지금의 직업을 선택했다. 그렇게 17년이 흘렀고 결국 지금 그때의 고민을 다시 마주하고 있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라면 가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5년 전 양갈래 길 앞에서 선택을 했다. 가장의 역할은 내려놓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만약 내려놓을 수 있었다면 더 빨리 원하는 곳에 닿았을 수도 있다. 그건 선택지에 없었다. 좋아하고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가장의 무게를 견뎌가며 해내야 했다. 고민했지만 결국 선택했다. 지금이 아니면 서른 살과 같은 선택을 하고 또 같은 후회할 것 같았다. 적어도 지금부터는 다르게 살고 싶었다. 느려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었다. 가정을 지키며 바닥부터 시작해야 했지만 나를 믿고 선택했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5년 전 버킷리스트에 교육자라고 적었다. 배움은 학교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학교에서 배웠다고 원하는 삶을 사는 것도 아니었다. 저마다의 인생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배움의 기회를 갖길 바랐다. 나처럼 은퇴 이후를 준비하는 사람,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사람, 더 나은 직장과 직업을 찾는 사람, 가난으로 배움의 기회조차 갖지 못한 아이들까지. 방법을 모르고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돕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다꿈 스쿨'의 청울림 대표를 롤모델로 삼았다. 그분이 만든 학교, 교육철학, 영향력을 닮고 싶었다. 나도 같은 의미의 학교를 만들고 싶다. 과정은 조금 다르지만 지향하는 목적은 같다.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고 싶다. 스스로 배우고 깨달으면서 지금과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해주고 싶다. 나도 그렇게 했다. 내가 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직장을 다니면서 두 가지, 세 가지 일을 하는 게 만만치 않다. 남들보다 늦고 이렇다 할 성과는 없어도 믿음이 흔들린 적은 없다. 내 존재의 가치는 시간이 더해질수록 더 영향력을 가질 것이다. 그러니 조급할 필요도, 포기할 이유도 없다. 내 선택을 믿고 더 큰 가치를 좇으면 된다. 제임스 카메룬 감독은 실패에서 배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성공을 지향하라고 했다. 그런 태도가 오히려 지속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고 한다. 그가 아바타를 만들기 위해 십수 년을 이어온 힘이기도 하다. 누구나 배움의 기회를 갖는 게 내가 바라는 성공이다. 그러기 위해 실패도 경험할 것이다. 좌절도 겪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원한 길, 내 선택이다.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이런 느낌이라는 걸 알아간다. 나를 믿으면 앞이 보이지 않는 길도 기꺼이 걸을 수 있다. 내 선택을 믿으면 모퉁이 돌아 무엇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있다. 마흔일곱, 나는 좋아하는 걸 하며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하루를 살고 있다.
2022. 12. 17. 0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