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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Dec 14. 2022

영하 11도를 물리치는 습관의 힘

2022. 12. 14.  07:36


기모가 덧대진 청바지, 반팔 면티 위 셔츠, 그 위에 니트를 입고 패딩으로 감쌌지만 추위를 막지 못하는 날씨입니다. 걸을 때마다 다리 사이를 파고드는 칼바람에 허벅지가 얼얼합니다. 장갑 낀 손을 패딩 주머니에 넣었지만 손 끝 찬기운을 막지는 못합니다. 사무실 난방기와 난로에 발을 붙잡히고 싶지만 그래도 기여코 단골 카페로 발걸음을 뗐습니다. 습관처럼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자리 잡았습니다. 자주 마주치는 같은 건물 헬스 트레이너는 어김없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합니다. 얼음을 퍼담는 소리만 들어도 냉기가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한 여름에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저나, 오늘 같은 날씨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손님을 보면 습관이 정말 무서운 것 같습니다. 궁금합니다. 이런 날씨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당기는 걸까요?


습관처럼 늘 마시던 음료를 주문하는 것 같습니다. 추운 날씨보다 입에 들어가는 그 맛이 더 필요해서 일 수 있습니다. 아메리카노의 쌀 싸름함이 덜 깬 몸과 정신을 깨워주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 맛에 빠지면 어떻게든 의식을 치르듯 마셔야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찬 음료보다 따뜻한 음료가 몸에 좋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실제로 얼음이 든 음료를 마시면 우리 몸의 체온이 떨어지고 이를 반복하면 면역력도 떨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름에도 가급적 따뜻한 음료를 마시는 게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저도 습관처럼 매일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카페인 덕분인지 한 모금 마시고 나면 정신도 맑아지는 느낌이 듭니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는 습관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처럼 매일 비슷한 시간 커피를 마시거나, 늘 다니던 길로 출퇴근하거나, 항상 같은 메뉴로 아침밥을 먹거나, 자기 전 꼭 책을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반복은 무의식 중에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습관이 된 것일 테고요. 날이 더워서, 기분이 안 좋아서, 날이 추워서 해야 할 걸 안 한다면 습관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외부 환경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습니다. 통제할 수 있는 오로지 자신의 의지뿐입니다. 그러니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환경에 휘둘리기보다 의지대로 반복할 수 있다면 어떤 습관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어제 일기예보에 한파가 몰아칠 거라고 했습니다. 잔뜩 겁을 먹었는지 퇴근길 지하 주차장은 이른 시간에도 만차였습니다. 하는 수 없이 지상주차장에 주차했습니다. 5시, 집을 나서기 전 베란다에서 보이는 차를 향해 원격 시동을 걸어봤습니다. 기온 때문에 시동이 안 걸릴까 싶어서였습니다. 당연한 듯 시동이 걸립니다. 겹겹이 껴입고 나왔지만 몸이 느끼기엔 어제보다는 조금 더 춥다 정도였습니다. 히터를 틀고 온열시트를 켜도 다리가 시린 건 피할 수 없습니다. 냉기가 전해지니 몸이 움츠려 듭니다. 주차하고 모자까지 뒤집어쓴 채로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난방기와 발 밑 난로의 온기가 전해지니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나가지 않고 이대로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이때 천사인지 악마인지 모를 목소리가 들립니다. "7시 반부터 글 한 편 써야지!"

천사 라면 습관을 지키라고 말하는 것일 테고, 악마 라면 습관 그딴 건 무시하고 당장 따뜻한 곳에 있으라는 목소리일 것입니다. 습관에 따라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저처럼 글 쓰는 습관이 없다면 천사는 따뜻한 곳에 있으라고, 악마는 글을 쓰라고 닦달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기온이 떨어진 건 제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추운 날씨는 옷을 껴입는 걸로 대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날씨 때문에 글을 안 쓴 건 제 의지에 따른 겁니다. 날씨 핑계를 댄 거나 다름없습니다. 핑계를 대고 탓을 하며 해야 할 걸 안 한다면 습관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습관처럼 한다는 이면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얼죽아를 찾는 트레이너, 따아를 고집하는 저도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습관을 유지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날씨, 감정, 상황이 어떠하든 습관은 어떻게든 하려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해냈을 때의 성취감을 맛본 사람은 쉽게 포기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끝을 향해가는 이 글을 써낸 저도 제 자신이 대견하고 성취감도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습니다. 창밖 풍경은 여전히 차가 워보이지만 글 한 편 써낸 제 마음에는 훈풍이 붑니다. 이런 기분으로 하루를 보낸다면 분명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될 것입니다. 습관을 습관처럼 지켰기에 가능한 아침입니다. 이러니 추위에 맞서 매일 글을 써야 하는 이유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22. 12. 1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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