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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Dec 13. 2022

글 한 편을 쓰게 되는 첫 문장의 마법

2022. 12. 13.  07:39


오늘은 어떤 내용의 글을 쓸까 고민이 이어집니다. 빈 화면에 시작하는 시간을 적고 나면 길게는 10분 정도 생각에 들어갑니다. 대개는 쓰고 싶은 내용에 생각을 멈추고 메모를 한 뒤 첫 문장을 시작하는 순입니다. 그나마 글감이 잘 떠오르면 쉽게 시작하지만 열에 일곱은 쫓기듯 글을 쓰게 됩니다. 여유 부리든 시간에 쫓기든 제시간에 완성하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유난히 써지지 않는 날도 있습니다. 그런 날은 이런 방법을 이용해 글을 씁니다.


생각은 번식력이 뛰어납니다. 0.7초마다 생각이 바뀐다고 하니 쉼 없이 이어지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 빠지면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의식적으로 끊어내지 않으면 한없이 이어집니다. 그때 필요한 게 첫 문장입니다. 의미 없어도 떠오르는 대로 우선 적어보는 겁니다. 첫 문장을 적으면 다음 문장이 연상됩니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이어지면 더할 나위 없고, 그렇지 않다면 첫 문장에서 힌트를 얻으면 됩니다. 첫 문장 단어 중 다음 문장에 적합한 단어를 선택해 연상하는 겁니다. 맨 땅에 헤딩은 아니니 그나마 낫습니다. 다음 문장을 썼으면 또 다음 문장도 같은 식으로 이어갑니다. 몇 문장 적다 보면 생각도 어느새 결을 같이해 흐르고 있는 걸 느낄 것입니다. 몇 개의 문장 덕분에 앞으로 적을 내용의 윤곽이 잡히는 것입니다.


윤곽이 잡히면 이제부터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는 겁니다. 앞에 적은 내용에 대한 경험이나 사례가 있는지 찾아보고, 적합한 게 있으면 구체적으로 적습니다. 경험 하나만 손에 잡히듯 적으면 반 페이지는 채울 수 있을 겁니다. 경험이나 사례를 적다 보면 말하고 싶은 내용이 보다 선명해집니다. 유사한 사례를 하나 더 적어주면 독자의 이해도 돕고 분량도 빵빵해집니다. 이렇게만 적어도 한 페이지가 채워집니다. 혹 경험이 없다면 책이나 명언을 검색해 인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 내용도 얼마든 가능하고요. 기억해야 할 한 가지는, 경험이나 사례 등을 이용하는 건 스토리를 활용하기 위해서입니다. 교과서에 나올 법한 딱딱한 내용으로 반 페이지를 채우면 독자에게 인내심을 요구하는 겁니다. 반대로 내 경험은 그 자체로 스토리가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풀어내면 잘 읽힐뿐더러 이해도 빠른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스토리로 전하는 나의 경험만큼 팩트도 없습니다. 누구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내가 직접 경험했다는 데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요? 논리적으로도 완벽한 글이 되는 것입니다.


내용도 분량도 어느 정도 채워졌다면 이제 남은 건 마무리입니다. 실껏 도입부에 경험과 사례까지 적어놓고 내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으면 독자에게 공갈빵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잔뜩 기대하고 한 페이지나 읽었는데 메시지가 없다면 독자는 우주에서 미아가 된 듯 둥둥 떠다닙니다. 메시지를 전달하기 전까지는 독자를 있는 힘껏 띄우는 게 좋습니다. 하지만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독자를 다시 땅으로 내려 앉혀야 합니다. 그러려면 글 쓰는 자신부터 두 발을 땅에 디뎌야 합니다. 이전까지 내용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다듬어봅니다. 분량은 적어도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건 이 말은 꼭 전하겠다는 선명한 메시지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메시지 될 만한 문장을 못 쓰겠다면, 이때 활용할 수 있는 게 명언입니다. 메시지가 될만한 적합한 키워드로 검색하면 다양한 명언이 나옵니다. 그중 하나를 선택해 옮겨 적고 거기에 더해 자신의 생각을 한 두 마디 정도 적는 겁니다. 메시지 전달 효과면에서는 아주 뛰어납니다. 메시지까지 적고 나면 그럴듯한 글 한 편이 완성됩니다. 또 퇴고를 거치면 더 깊이 있고 풍부한 글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은 앞서 설명한 방법대로 시작해 써 내려왔습니다. 생각이 번식하던 찰나에 일단 첫 문장부터 써버렸습니다. 첫 문장을 시작으로 다음 문장을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쓰다 보니 한 편을 썼습니다. 글을 쓰려면 생각을 안 할 수 없습니다. 생각이 많고 다양할수록 내용도 의미도 다양한 글을 쓸 수 있을 겁니다. 또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생각은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생각이 삼천포로 한 번 빠지면 다시 돌아오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그럴 땐 일단 첫 문장부터 쓰는 겁니다. 첫 문장을 쓰면 삼천포로 갔던 생각도 다시 돌아오게 될 겁니다. 첫 문장을 닻처럼 내려놓으면 분명 한 편의 글을 쓰는 것도 얼마든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저도 경험했고,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 작가님도 같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다면 시도해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글쓰기가 한결 수월해질 수도 있을 테니 말입니다.  

 

2022. 12. 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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