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준 Dec 12. 2022

499개의 달콤씁쓸한 글들

2022. 12. 12.  07:39


"달콤씁쓸함은 다른 무엇보다, 고통에 대응할 방법을 알려준다. 고통을 인정하고, 뮤지션들처럼 고통을 예술로 전환시키려 하거나, 아니면 고통을 치유하고 혁신하는 등의 방법으로 영혼을 살찌우게 한다. 슬픔과 갈망을 전환시키지 않으면 결국엔 학대, 지배, 방치의 형태로 슬픔과 갈망을 남들에게 전가하고 만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혹은 인간이라면 보통은 상실과 고통을 겪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서로를 돌아볼 수도 있다. 

《비터스위트》 - 수전 케인


달콤씁쓸함을 다르게 표현하면 '멜랑꼴리에'라고도 합니다. 심리학에서 우울증 정도로 본다고 합니다. 기분이 우울할 때 멜랑꼴리 하다고 말하곤 합니다. 우울은 살면서 한 번쯤 경험해본 감정일 수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시련당했을 때, 배신을 겪으면 이런 기분이 들곤 합니다. 우울에 한 번 빠져들면 수렁처럼 발이 바닥에 닿을 때까지 꺼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상태가 심해지면 상대에게 해를 입히는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 우울 이겨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전문가를 찾아 상담을 받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여행을 통해 기분 전환을 시도합니다. 또 하나 지금 상태를 글로 표현하며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이해해보려고 합니다. 이를 두고 글쓰기를 통해 자신이 가진 상처를 치유한다고도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접근이 어떠하든 글을 씀으로써 우울도 이겨내고 자신이 가진 상처도 치유하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4년 넘게 매일 글을 쓰면서 내가 가진 상처와 고통을 이겨낼 방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쓰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입니다. 아이에게 화를 내는 이유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내와 대화하지 않는 나를 당연하게 여겼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고민하지 않았을 겁니다. 기분이 우울해지면 술부터 찾고, 심심하면 TV나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돈이 생기면 친구를 찾아가 소주 한 잔으로 기분을 냈을 겁니다. 생각해보면 술을 마시고 TV에 빠지는 건 나만 좋은 행위입니다. 마시고 웃고 즐기는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남는 게 없습니다. 자극에 빠지는 건 일시적일 뿐 근본적인 치료는 아니었던 겁니다. 정신적으로 정말 문제가 있다면 의사를 찾는 게 맞지만 주변 시선 때문에 이마저도 요원한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글쓰기를 치유의 도구로 이용하는 거로 생각합니다. 실제로 심리 상담 과정에 글쓰기 과정이 포함되어 있는 게 이를 말해주기도 합니다.


글을 쓰면서 나를 알아갔고, 다행히도 글쓰기만으로 어느 정도 이전과 달라지고 있습니다. 나에게 솔직해지기로 마음먹고 한 편씩 썼습니다. 아이에게 화내는 이유를 생각해봤고, 아내와 대화가 적어진 원인을 찾아보고, 언제 술을 마시는지 들여다봤습니다.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솔직해지자고 마음먹고 썼습니다. 그런 태도가 통했는지 조금씩 이유와 원인이 보였습니다. 이유와 원인을 이해하고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당장에 바뀌는 게 아니기에 조금씩 노력했습니다. 여전히 노력 중입니다. 노력 덕분인지 5년 전보다 달라진 저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나아질 거로 믿으면서요. 


그러니 글을 안 쓸 수 없습니다. 쓰면 쓸수록 나는 물론 내 주변이 나아지는 게 눈으로 보입니다. 나에게도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아가고 있습니다. 단지 내가 조금씩 변할 뿐인데 내가 아는 더 많은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걸 선순환이라고 하는가 봅니다. 좋은 건 더 좋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도 아닌 내가 달라져서 얻는 효과라면 더더욱 안 할 이유가 없을 테고요. 누구나 변화를 바랍니다. 더 나은 삶을 원합니다. 방법은 있기 마련입니다. 믿고 행동으로 옮겨보면 효과가 있다는 것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돕는 도구로 글쓰기 만한 게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로 브런치에서 500번째 글을 발행합니다. 499개의 서로 다른 내 모습이 글에 담겨 있습니다. 달콤했던 기억도, 씁쓸했던 추억도 있습니다. 초라한 모습도, 어깨 펴고 당당했던 나도 있습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때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적었기에 마주했습니다. 마주했기에 인정했습니다. 인정했기에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글로 썼고, 쓰고 있고, 쓸 것이에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거로 믿습니다. 이 모든 건 쓰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라 생각합니다. 결코 쓰는 행위는 거창하지 않기에 누구나 누릴 수 있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잘 쓰고 못 쓰고 가 아닌 쓰고 안 쓰고의 문제일 뿐입니다. 그러니 쓰기만 한다면 분명 더 나아지는 자신을 마주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같은 믿음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2022. 12. 12.  08:36

매거진의 이전글 글로 썼을 뿐인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