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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Dec 05. 2022

글로 썼을 뿐인데

2022. 12. 05.  07:39


12월 5일, 오늘은 아무 날도 아니다.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이다. 일어나는 시간은 여느 평일과 같았다. 4시 반 알람 소리에 눈을 떴고, 면도와 양치 후 머리를 감고 말린 뒤 옷을 갈아입었다. 유산균 한 포 먹고 아침으로 먹을 견과류 한 봉지를 챙겼다. 양말을 신고 책상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떠오르는 생각을 붙잡아 10분 동안 글을 썼다. 노트를 닫고 도서관 앱을 켜서 출근하며 들을 책을 골랐다. 닉 해터의 《세븐 퀘스천》을 다운로드하였다. 전형적인 자기 계발서다.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7가지 중요한 질문을 다룬다. 저자는 40여 가지 질문을 다루지만 크게 7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면 서문을 시작한다. 1장은 '내가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가?'이다. 난방 히터를 틀었지만 데워지지 않은 탓에 바짝 정신이 든 체로 책 내용을 듣는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언제 들어도 선뜻 답이 안 나온다. 5년 전부터 같은 질문에 답을 찾기 시작했고 여전히 명확한 답은 못 찾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변 환경은 변하고 내 생각도 변하게 되어 있다. 변화에 따라 답도 달라질 테다. 그러니 끊임없이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답을 찾으며 나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수밖에. 


월요일은 새벽에도 차가 많다. 평소보다 10분은 늦게 도착한다. 출근 기록기에 흔적을 남기고 난방기를 틀고 녹차 티백을 담근 물 한 잔을 갖고 자리에 앉는다. 발 밑 난방기 덕분에 시린 다리에 온기가 전해진다. 5년 간의 기록을 담아놓은 USB를 컴퓨터에 꽂는다. 집필 중인 전자책 열어 내용을 정리하고 '나가는 글'을 쓴다. 궁리해보지만 무릎을 칠만한 내용이 안 떠오른다. 시간을 정해 놓은 덕분에 겨우 소재를 정해 쓰기 시작한다. 반 페이지를 채우니 손이 멈칫한다. 멈칫하며 생각도 멈춘 것 같다. 거기까지만 적고 화면을 닫았다. 다시 가방을 챙겨 단골 카페를 향해 걷는다. 주변은 밝아졌지만 추위는 여전하다. 장갑 낀 손을 외투 주머니에 넣어도 손끝이 시리기는 마찬가지다. 걷는 내내 청바지에 닿는 찬바람에 맨살이 쓸리는 느낌이다. 기모를 덧댄 청바지를 사야겠다. 불이 꺼진 카페가 눈에 들어온다. 아직 문을 안 열었나? 매장 밖을 밝히는 백열등이 꺼져있어서 더 춥게 느껴진다. 백열등은 온기는 없지만 전구가 내는 색 때문에 왠지 따뜻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매일 아침 불이 켜진 카페를 보면 몸에도 온기가 돌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이제 막 문을 연 것 같았다. 물이 끓으려면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기꺼이 기다리겠다고 했다. 2층으로 올라서니 코끝이 시리다. 작년에도 재 작년에도 2층에는 난방기가 없었다. 오롯이 커피잔에 담기 뜨거운 물 온도에 의지해야 했다. 자판을 두드리는 내내 손가락에도 냉기가 들어찬다. 5분 남짓 손님이 여럿 들어온다. 월요일이라 여기저기 분주하다. 아르바이트생에게도 몸이 분주한 아침인 것 같다. '얼죽아' 단골 고객에게 '아아'4잔을 만들어주고 나서 내 '따아'가 준비되었다. 입천장이 데일 정도는 아니지만, 언 손가락을 녹이기에 충분한 물 온도다. 크림 같은 거품을 후후 불어 첫 모금을 넘긴다. 입에 닿는 쓴 맛과 몸으로 퍼지는 뜨끈함에 몸이 데워지는 것 같다. 2,200원짜리 커피 한 잔이지만 추위에 언 몸과 손가락을 녹이기에는 충분히 대가를 치를만하다.   


주 5일 반복되는 일상이다.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인 일상이다. 계절이 바뀌고 주변의 밝기만 변할 뿐 늘 같은 행동을 반복해 오고 있다. 그래도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특별하게 해주는 게 있다. 매일 같은 시간 10분 동안 쓰는 글이 그렇고, 출근하는 동안 듣는 새로운 내용의 책이 그렇고, 추위에 언 다리를 녹여주는 난방기가 그렇고, 매일 같은 시간 문을 열어주는 단골 카페가 그렇고, 말하지 않아도 아르바이트생이 알아서 준비해주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이 그렇다. 다를 것 없었던 월요일 아침이 지금 쓰는 이 글 덕분에 더 고맙고 더 의미가 남는 시간이 되었다. 글로 남기면서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글로 남긴 덕분에 오늘 아침은 특별한 하루가 되었다. 글로 썼을 뿐인데 말이다.  


2022. 12. 05.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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