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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Dec 16. 2022

오늘을 살면

2022. 12. 16.  07:36


지리산 종주 후 천왕봉에서 일출을 볼 목적으로 구례에서 출발했습니다. 종주의 시작을 노고단으로 잡았습니다. 노고단까지 오르면 그다음은 능선을 따라 걷는 일정이었습니다. 24살, 그때는 남는 게 체력이라 두 발로 거뜬히 노고단까지는 올라갈 것 같았습니다. 웬걸요 오르면 오를수록 세 발이 되고, 네 발이 되어서야 노고단에 겨우 도착했습니다. 기어서라도 기어코 오르니 구름 사이로 일몰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하루 만에 장터목 산장에 도착했고 저녁을 먹은 뒤 갑작스러운 오한으로 결국 다음 날 천왕봉 일출은 포기했습니다. 아쉬움이 남는 절반의 성공이었습니다. 혈기만 앞서 여유가 없었습니다. 종주하며 경치도 보고 쉬엄쉬엄 갔다면 분명 일출도 봤을 텐데요. 그래도 멈추지 않고 꾸준히 걸었기에 종주는 할 수 있었습니다. 걷는 그 순간은 숨이 차고 땀으로 온몸이 젖었지만 결국 해냈다는 뿌듯함이 모든 수고를 보상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절반의 목적이라도 이룰 수 있었던 건 계획도 필요했지만, 무엇보다 지금 내딛는 한 발 한 발에 집중한 덕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끝이 안 보이던 종주길도 한 걸음씩 걷다 보니 도착하게 됩니다. 모든 시작이 그런 것 같습니다. 끝이 안 보이니 얼마나 언제까지 걸어야 할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늘 같은 길을 걷다 보니 지루하고 쉽게 지치기도 합니다. 고속도로를 오래 운전하다 보면 졸음이 오는 것처럼 말이죠. 그럴 땐 한 번씩 쉬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지금 어디쯤 왔는지 확인도 하고 휴게소에서 간식도 먹고, 잠도 자면서요. 그러고 나면 다시 활력이 돕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힘을 내게 되지요. 달리기만 하면 몸은 방전되고 맙니다. 적당한 때 쉬어야 다시 힘이 납니다. 전투에서 질 수는 있어도 배식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가 안 된다는 말처럼, 내달리기만 하는 게 무조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닐 것입니다. 결국 달릴 땐 달리기에 집중하고, 쉴 때는 최선을 다해 쉬는 게 끝까지 완주하는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022년도 보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올 해를 달려오셨나요? 앞만 보고 달렸나요? 달리기는 일찍부터 포기하고 느긋하게 경치만 즐기며 왔나요? 아니면 달릴 땐 달리고 쉴 때는 쉬면서 효과적인 한 해를 보내셨나요? 저는 올해 목표가 제 이름으로 된 책 5권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작년에 써놓은 내용도 있고 매일 쓰다 보면 충분히 낼 수 있겠다는 싶었습니다. 초고로 써놓은 개인 저서 3권을 차례로 정리하고 운 좋게 참여한 공저 한 권과 새로운 내용으로 한 권을 쓰면 될 거였습니다. 뜻대로 된다면 종이책으로 5권을 손에 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매일 쓰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고요. 결론부터 말하면 매일 썼고, 조금 다른 형태로 5권이 제 손에 남았습니다. 개인 저서 1권, 공저 1권 그리고 전자책 3권입니다.


1월 1일의 출발선에 서면 12월 31일은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천왕봉이 그저 아득히 보이는 것처럼 말이죠. 천왕봉에 올라서겠다고 발버둥 할아비를 찾아도 결코 올라설 수 없습니다. 할아비가 온다 한들 일어나지도 않을 테고요. 그때는 우리가 아는 순리대로 한 발씩 걷는 게 최선일 것입니다. 올 한 해 새운 목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5권을 내겠다고 목표는 세웠지만 오늘 당장 5권이 짠하고 세상에 나올 일은 없습니다. 하루가 24시간으로 돌 듯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우리가 아는 순리일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 같은 시간 정해놓은 분량을 써내려 노력했습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완벽하지는 못했지만 그 안에서 최선은 다했습니다. 한 눈 팔지 않고 달릴 때는 두 발에 집중했고, 쉴 때는 세상 누구보다 편하게 쉬었습니다. 그렇게 달리고 쉬기를 반복하며 꾸준히 이어오니 지금 이렇게 목표한 5권을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마흔일곱, 늦었을 수도 있고 빠른 나이일 수도 있습니다. 매일 내가 하는 게 나를 만들어준다는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한편으로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다 똑같이 주어지는 24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각자의 몫입니다. 그 시간에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손에 쥐는 결과도 달라집니다. 목표는 결과입니다. 결과만을 바라보면 과정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과정을 놓친 결과가 좋을 리 만무할 테고요. 혹시 지금 앞만 보고 쉼 없이 달리고 있지 않나요? 숨이 턱끝까지 찼는데도 스스로 괜찮다 여기고 있지 않나요? 결승선에 닿는 것도 목표를 이루는 것도 결국 지금 잘 달릴 때 가능할 것입니다. 지금 힘이 들면 잠시 쉬어도 좋습니다. 반대로 지금 힘이 넘치면 있는 힘껏 달리면 되고요. 무엇보다 지치지 않고 꾸준히 달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지금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렸습니다. 한 숨 고르고 지금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오늘 지금 이 순간에 말이죠.    


2022. 12. 16.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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