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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Dec 30. 2022

2023년, 대운이 들어온다

2022. 12. 30.  07:35


사람은 믿는 대로 된다고 했다. 나도 믿는 게 하나 있다. 미신을 믿지 않지만 그렇다고 과학을 신봉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껏 딱 한 번 내 돈 내고 내 발로 점 보러 간 적 있었다. 직장도 불안하고 둘째도 태어난 즈음이었다. 무엇보다 앞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었다. 답을 바란 건 아니었지만 실마리는 얻을 수 있길 바랐다. 아무나 찾아갈 수 없는 노릇이다. 직장 동료의 추천을 듣고 확신이 섰다. 직장 동료의 친구는 남편 문제로 불화를 겪고 있었다. 답답했는지 그곳을 찾았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 친구의 고민(남편의 바람)을 맞혔다고 했다. 이 정도 신통함이라면 적어도 내 미래에 대한 힌트는 얻을 수 있겠다는 희망으로 찾았다. 


평일은 만나기 힘들다고 해 토요일을 택했다. 근무가 있는 날을 택해 D-DAY로 정했다. 예약이 안돼 도착하는 순서대로 기회가 주어졌다. 스마트폰 지도에서 설명 들은 대로 검색했고 알려주는 대로 따라갔다. 평범한 주택이었다. 기다리는 줄이 있을 줄 았았다. 주말이라 사람이 없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바로 안내받았다. 그 안은 TV에서 본모습과 비슷한 것 같았다. 처음이라 긴장한 티가 안 날 수 없었다. 심호흡 한 번 하고 그와 마주 앉았다. 


사주를 불러주니 흰 종이에 옮겨 적는다. 그러고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점을 보러 온 게 실감 났다. 기대를 담은 눈빛으로 지켜봤다. 종이 한 장을 다 채우고서 펜을 내려놓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무 사주를 타고났단다. 내 성격을 말하는 데 수긍이 갔다. 이동 운이 많다고 했던 것 같다.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고 직장도 자주 옮겼으니 맞는 말 같았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그다지 좋은 사주풀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다른 건 접어두고 가장 궁금했던 건 내 앞날이었다. 마흔다섯에 나무가 물을 만날 거라고 했다. 무슨 의미인지 바로 이해하진 못했다.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면 내가 그를 불신한다고 비칠 것 같아 입을 닫았다. 그런가 보다 했다. 그리고 두 딸의 미래도 슬쩍 물어봤다. 원래 아이는 점을 보지 않는다고 한다. 천기누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큰딸은 언어에 재주를, 둘째는 예술에 재주가 있을 거라며 말을 아꼈다. 다 들었지만 미래가 그다지 선명해지지 않았다. 5만 원을 주고 일어섰다.    

  

정해진 운명대로 산다고 믿지 않는다. 운에 따라 노력에 따라 사는 모습은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점을 보고 난 뒤 내 삶도 그다지 변화는 없었다. 그 사이 대여섯 번 이직을 더했고 로또 같은 행운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다 마흔셋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2018년 12월 31일,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날이다. 이제와 보니 운명의 날이었다. 그날 태블릿을 사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 삼성전자대리점에 빨려 들어갔고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3개월 할부로 태블릿을 결제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기대할 게 없는 때여서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1권 10권 100권 1000권. 오늘까지 1200권이 넘게 읽어오고 있다. 책에서 길을 찾고 글도 쓰게 되었다. 4년 넘게 매일 쓰다 보니 책도 내고 강연도 했다. 쌓인 글이 책이 되고 기고도 했다. 불안하고 막연했던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을 모습이다. 그러니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믿지 않는 게 당연하다. 노력하는 만큼 원하는 삶을 살게 된다고 믿는다.

 

책 읽고 글 쓰고 책을 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그날 사주풀이에서 마흔다섯에 나무가 물을 만날 거라는 말. 나무는 종이를 만든다. 종이는 책을 만든다. 책은 사람이 만든다. 나는 사람이다. 책을 읽기 시작했고 책을 통해 글 쓰는 직업을 선택했고 책을 썼다. 억지로 풀이를 하자면 내가 쓴 책이 물을 만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바꿔 말해 물을 만난 나무는 가지를 뻗고 잎이 열리며 제 모습을 만들어간다. 내 인생도 책을 통해 가지를 뻗고 잎을 열며 풍성해질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5년 째다. 한 눈 팔지 않고 달려왔다. 그늘이 만들어질 만큼 잎이 열리지는 않았다. 잔 가지가 뻗은 정도다. 볕은 가리지는 못해도 새들은 앉을 수 있을 터다. 몇 마리는 편히 쉴 수 있다. 그게 어딘가. 가지조차 없던 나무에 물이 돌면서 서서히 제 모습을 찾아가는 것 같다. 책을 만나고 내 인생도 점점 나아지고 있다. 더 자상한 아빠가 되어가고, 더 다정한 남편이 되는 중이고,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나은 가치를 전하려 노력 중이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이전의 나와 비교하면 분명 대운이라 할 수 있다. 대운이 별 건가.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으면 되지 않을까? 매일매일 잘 살아내며 1년을 잘 살게 되고 그 시간이 쌓이면 결국 운명도 달라질 테니 말이다. 나는 날마다 더 나아지고 있다. 분명 내년도 더 큰 운이 들어올 거로 믿는다.

2023년, 나에게 대운이 들어온다. 믿는 대로 이루어진다.


2022. 12. 30.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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