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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an 06. 2023

나를 바꿀 용기

2023. 01. 06.  07:37


어리고 유치한 기분이나 감정을 '치기'라고 한다. 여물지 못한 상태에서 무언가 도전할 때도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2021년 5월 처음 전자책을 냈다. 많이 팔릴 기대 같은 건 없었다. 출판사에서 내 글에 관심 갖고 전자책으로 출판해준 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출판사 이름을 걸고 출간했지만 작년 한 해 동안 한 권 팔렸다. 정산서를 받아 들고 알았다. 나조차도 다시 읽어보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치기 어린 선택이었다. 


전자책을 쓸 때 나는 덜 여물었었다. 지금이라고 속이 찬 건 아니다. 그때는 그때의 생각과 감정이 옳았다.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닌, 하고 안 하고의 문제였다. 그때 전자책을 내보지 않았다면 내 글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가늠할 방법이 없다. 못 쓴 글이어도 내 생각대로 한 권을 완성했다. 다행히 누군가 내 책을 읽고 용기를 내게 되었다면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주저하며 세상에 내놓지 않았다면 그에게 닿지 않았을 테다. 아쉬움은 남는다. 조금 더 여물었다면 조금 더 나은 길잡이가 될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다.


나는 여전히 속을 채우는 중이다. 그때의 내가 아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여전히 치기 어릴 수 있다. 그건 평생가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스스로를 성장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태도가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어제의 나는 치기 어린 게 맞다. 그러나 오늘의 나는 적어도 어제보다 나아있다. 단, 오늘 내가 무엇을 하는지에 따라 그 크기와 깊이는 달라진다. 시간만 보낸다고 성장하는 건 아니다. 나무나 꽃, 하다못해 콩나물을 키우는데도 물을 주고 햇볕을 쬐어야 한다. 물을 주는 건 당연하고 거름도 주고 영양제도 줘야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사람이라고 다르지 않다. 오늘 내가 보고 듣고 읽고 이해한 것들이 무엇인지에 따라 여물기도 달라진다. 


요즘 퇴고가 한창이다. 손 대기 전 읽어보면 그때의 내가 그대로 보인다. 분명 지금의 나와는 다른 생각 다른 기준을 갖고 있다. 한편으로 용기가 가상하다. 주변 시선 아랑곳 않고 꿋꿋이 써냈으니 말이다. 물론 초고여서 거침없이 썼을 수 있다. 거친 글을 시간 두고 고치니 이전의 내 글이 마음에 안 드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퇴고를 하면 할수록 문장과 내용이 나아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퇴고는 끝을 내는 게 아닌 멈추라고 말한다. 퇴고를 하면서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계속 쓰면 쓸수록 더 좋은 글, 책을 쓸 수 있겠다는 거다. 마찬가지로 매일 조금씩 성장한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말이다. 오늘 내가 무엇을 배우고 느끼고 이해했는지에 따라 내일 내가 쓰는 글의 깊이가 달라질 수 있다. 통찰을 얻는다기보다 적어도 적확한 단어 하나, 맞춤법에 맞는 문장 하나를 쓰는 걸로 충분할 테다. 어느 순간 훌쩍 자란 나무가 눈에 들어오는 것처럼 나도 그러길 바라면서 말이다. 


치기에는 양면성이 있는 것 같다. 무작정 달려들 용기와 겁먹고 움츠려드는 소심함이다. 둘 중 무엇을 선택할지는 저마다의 몫이다. 나는 2년 전 무작정 전자책을 냈다. 그 덕분에 오늘까지 이렇게 매일 글을 쓸 수 있었다. 반대로 겁먹고 아무것도 안 했다면 지금보다 더디게 성장했을 것 같다. 그때 나에게 세상을 바꿀 용기가 필요했던 게 아니다. 단지 어제보다 나은 오늘 살겠다는, 어깨너비만큼 한 발 내딛을 용기면 충분했다. 그 용기가 치기에 주눅 들지 않고 세상사람 시선에 아랑곳 않고 지금 이렇게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었다. 쓰는 글마다 인기를 얻으면 좋겠지만 그럴 만큼의 깜냥은 아직이다. 그보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내 글에 담긴 진정성을 알아봐 주길 바란다. 지금 쓰는 이 글도 세상을 바꾸겠다고 쓰는 글이 아니니 말이다. 나무와 꽃이 물을 먹고 볕을 쬐는 만큼 자라고 꽃을 피우듯, 오늘 내가 보고 듣고 배우고 이해한 것만큼 성장하길 바란다. 그래서 오늘 쓴 글보다 내일 쓰는 글에 기대를 가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조금씩 나도, 내 주변도 성장해 갈 수 있길 바란다.     


2023. 01. 06.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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