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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an 25. 2023

내가 생각하는 워라밸은

2023. 01. 25.  07:36


오케스트라의 악기 구성은 지휘자에게서 멀어질수록 연주자의 숫자가 줄어드는 걸 볼 수 있다. 북과 팀파니 연주자는 대개 1~2명이 자리한다. 연주자 수가 적은 만큼 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적다. 도입부나 절정일 때 강렬함을 더해주는 효과가 있다. 비중은 적지만 빠져서는 안 되는 악기이도 하다. 제때 정확한 음을 낼 때 곡의 완성도 또한 높아진다. 직장인의 일상에도 비중은 적지만 반드시 필요한 한 가지가 있다. 바로 휴식이다. 일과 삶의 균형을 '워라밸'이라고 부른다. 직장인에게 일이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잘 쉼으로써 삶의 질이 올라간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러한 균형을 맞추는 게 쉽지 않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일을 위해 휴식을 희생당하고 사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건설업에 몸 담은 지 20년째다. 현장과 본사를 오가면 근무했다. 본사는 야근은 하지만 현장에 비해 출퇴근 시간이 지킬 수 있다. 반대로 현장은 아침 7시 전에 출근하고 저녁 7시 전에 퇴근하는 경우가 드물다. 또 빡빡한 공사기간 때문에 주말도 없이 일할 때가 많다. 9번 이직하는 동안 현장 근무를 세 번 했다. 세 번다 정시 퇴근, 주 5일 근무와는 거리가 멀었다. 늦은 퇴근과 주말도 없다 보니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도 그만큼 줄었다. 어쩌다 일요일 쉬면 내 몸 챙기는 게 먼저였다. 그러니 워라밸은 남의 일이었다. 


현장 근무의 단점 때문에 본사 사무직에 지원했고 지금도 근무 중이다. 출퇴근 시간과 주 5일 근무는 현장근무보다 나았지만, 그렇다고 업무 강도를 가볍게 볼 건 아니었다. 현장은 몸이 고되다면, 본사는 정신이 털리는 기분이다. 어느 근무가 더 낫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루 종일 거래처와 임원, 현장에 시달리면 녹초가 되는 건 마찬가지다. 잦은 회식과 야근으로 퇴근 후에도 내 생활을 갖지 못하는 건 현장과 다르지 않았다. 주중에 시달림은 주말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틀을 쉬면 이틀 동안 내 몸만 챙기게 된다. 죽은 듯 이틀을 쉬어도 월요일 출근길이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오케스트라에서 북과 팀파니 숫자가 적어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 제때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직장인에게도 제때 알맞은 휴식을 갖게 되면 워라밸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때 필요한 게 무엇을 어떻게 할지이다. 


지난 20년 중 14년을 본사에서 근무했다. 워라밸과는 거리가 멀었다가 지금은 일과 일상에 균형을 맞추며 살고 있다. 내가 실천 중인 워라밸은 시간의 양보다 무엇을 하느냐이다. 5년째 한 직장에 다니고 있다. 그 사이 현장과 본사를 오가며 근무했다. 어느 곳에 근무해도 출근 전과 퇴근 후에 꼭 지키는 한 가지가 있다. 책 읽고 글 쓰는 것이다. 본사 근무는 출퇴근 시간이 일정하다 보니 비교적 규칙적으로 읽고 쓰기를 반복할 수 있었다. 많을 때는 4시간, 평균 2시간 이상은 나를 위해 활용했다. 현장 근무를 할 때도 불규칙하고 적은 시간에도 꼭 읽고 쓰기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적으면 30분, 많을 땐 2시간이 나기도 했다. 읽고 쓰는 행위 동안에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나에게 휴식을 주는 것과 같았다. 그 시간을 통해 일상의 여러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내 문제에 답을 찾다 보니 하고 싶은 일도 찾았고,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과의 관계도 나아졌다.   


직장인은 잘 살기 위해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을 위해 일상을 희생당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일을 떼어놓을 수 없다면 일을 위해 알맞은 휴식도 빼놓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알맞은 휴식은 짧은 시간에도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그 무언가이다. 나처럼 책 읽고 글 쓰기 일쑤 있고, 악기를 배우거나 그림을 그리고 청소를 하거나 아이들과 노는 시간일 수도 있다. 짧은 시간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일상의 가치도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이 쌓이면 일을 위해 휴식을 희생하는 게 아닌, 휴식을 위해 기꺼이 일하는 균형 잡힌 일상이 되지 않을까?  


2023. 01. 25.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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