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우리 아빠 맞아요?

아빠에게서 낯선이의 모습을 보았다

by 김형준

아내에겐 25년을 이어온 모임이 있습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그때의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각자의 인생을 곁에서 지켜보며 희로애락을 함께해 왔습니다. 가정을 꾸리는 모습,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 힘들고 슬픈 일을 함께하며 서로에게 위로와 힘이 되며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관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해 마다 한 번씩 만남을 가졌지만 얼마 전부터 바쁜 일이 많아서 인지 얼굴 볼 기회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지난 토요일 5년 만에 모임을 가졌습니다. 안본 시간이 길어서 인지 기억 속 아이들 모습이 아니어서 살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워낙 어릴 때 봐서 서로에 대한 기억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만남이 어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색하고 낯선 자리라 엄마, 아빠 옆에서 떠나지 못했습니다.

어른들은 오랜만에 봐서 인지 더 반가웠습니다. 안 본 시간이 무색하게 외모의 변화는 별로 없었습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덕담을 주고받으며 소주잔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5년간 못 봐서 인지 각자 할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저도 평소 보다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저는 장소와 사람을 많이 가리는 편입니다. 이 모임의 주체가 아내의 지인이고, 남편 분들과는 친구만큼 편한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예전에 모임을 가져도 대화에 끼는 것이 쉽지 않아 겉도는 분위기였습니다. 저도 나이를 먹고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이런 저런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제 모습을 옆에 지켜보던 큰 딸이 한 마디 합니다.

“아빠 모습이 낯설어.”

그랬습니다. 집에서 제 모습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아이들 눈에 낯설게 보이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집에 있으면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닙니다. 수다스럽지 못해 듣는 위주의 대화를 이어가는 편입니다. 이랬던 제 모습만 봐오던 아이들에겐 낯설게 보일 수 있었으리라 생각 들었습니다. 또 술기운이 어느 정도 오르고 흥이 나며 게임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모습도 아이들 눈에 생소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원치 않는 자리를 많이 가지게 됩니다. 낯선 이를 업무상으로 만나야 하는 자리에서 대화를 이어가는 건 필요한 자세입니다. 낯을 가리는 건 제 사정이지 처음 보는 이가 이를 이해해 주지 않을 겁니다. 좋든 싫든 내가 속한 회사를 대표해 상대를 만나는 자리라면 내 자세에 따라 회사 이미지가 달라 질 수도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면 누구나 이런 모습을 갖고 있을 겁니다. 자신이 좋아 하는 일만 할 수 없는 곳이 사회일 겁니다. 때론 싫은 일도 하며 빈 말도 해야 하는 사회성이 필요 할 겁니다. 사회성에 꼭 필요한 태도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또 다른 인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평소 사회 속 제 모습을 볼 기회가 없었던 아이들에겐 낯설게 보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낯선 모습이긴 하지만 아이들에게도 좀 더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싶었습니다. 너무 조용한 모습과 무게만 잔득 잡고 있는 모습에 아이들이 다가서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했습니다. 제가 먼저 무게와 권위를 내려놓고 좀 더 가벼워지면 아이들도 제게 다가 오기 쉬울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빠는 이래야 해 라고 스스로 정의해 놓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봤습니다. 사회생활에 필요한 자세는 분명 필요합니다. 그런 모습을 굳이 집안으로, 아이들에게까지 근엄하게 보일 필요는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지금의 딱딱한 모습이 지속되면 벽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성장하며 자신의 가치관을 키워갈 겁니다. 아이들을 편하게 대하지 못하면 아이들도 편해질 수 없을 겁니다. 서로 인지하지 못하는 시간이 쌓이며 벽은 더 높아질 수 있을 겁니다. 아이들에게 좀 더 편한 아빠이고 싶습니다.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아이들이 의지할 수 있는 아빠이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나 먼저 벽을 낮추고 권위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때론 실없는 소리도 하고, 나를 내려놓는 모습도 보이고, 잔소리 보다 공감하는 대화를 하고 싶습니다. 내가 원하는 아이들 모습이 있듯 아이들도 원하는 아빠의 모습이 있을 겁니다. 조금씩 맞춰가는 노력을 통해 소통하는 관계를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내가 먼저 변하는 모습을 보이면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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