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병과 시청률

월요병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단상

by 김형준

일요일 오후는 티브이 예능프로그램의 전쟁터가 된다. 각 방송사는 모든 역량을 집중해 최고 조합과 최대 재미를 끌어내려 한다. 인기 있는 연예인을 전면에 배치하고, 가장 핫한 트렌드를 반영해 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려 한다. 전쟁이 특정한 형태로만 일어나지 않듯 예능 프로그램도 다양한 컨셉으로 차별화된 재미를 주려고 한다. 또 전쟁에 사용되는 무기도 어디서 싸우느냐에 따라 달라지듯 각각의 프로그램 특성에 맞는 최적화 된 연예인을 전면에 배치하게 된다. 매주 반복되는 식상함을 탈피하기 위해 새로운 게스트를 모셔오는 수고는 당연해 지고 있다. 신곡으로 컴백하는 대세 아이돌부터 활동이 뜸해 궁금한 유명 연예인의 근황을 알려주며 호기심을 해소해 주기도 한다. 한편으로 그들의 알려지지 않은 사생활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시청률 전쟁에 불을 붙이기도 한다. 왜 하필 이런 시청률 전쟁이 일요일 저녁에 일어날까?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의 아침은 맑고 청명했다. 이날 아침은 특별한 행사 준비로 분주했다.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프란츠 제공과 그의 아내가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다. 보스니아 사람들은 이들을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오스트리아의 잦은 침략으로 보스니아 인들은 이들에게 좋은 감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전 10시 황태자는 시민의 환호를 받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환호도 잠시 이내 두 발의 총성이 울린다. 총탄에 맞은 황태자 부부는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지고 말았다. 이들에게 총을 쏜 이는 프란치프라는 청년이었다. 오스트리아를 증오했던 그의 거사는 세계 역사의 판을 바꿔 놓았다. 바로 1차 세계 대전을 촉발시킨 사건이었다.

월급쟁이에게 월요일은 잦은 침략을 일삼는 오스트리아와 같다. 피침략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침략자의 만행이 일어나듯 월급쟁이에게 월요일도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다. 원치 않아도 월요일은 돌아온다. 가기 싫다고 안 갈수도 없다. 일하기 싫다고 안 할 수도 없다. 월화수목금금금의 일주일을 사는 월급쟁이의 불만은 쌓여 간다. 월요일이 싫은 월급쟁이를 위로해줄 무언가 필요했다. 프란치프가오스트리아 대한 증오로 거사를 일으켰듯 직장인의 월요병은 방송사의 시청률 전쟁을 촉발 시켰다.(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임을 밝힙니다) 월요병은 약을 발라아무는 상처가 아니다. 어쩌면 월급쟁이로 머무는 동안은 숙명과 도 같은 질병이라 할 수 있다. 방송국은 이들을 위로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다양한 형태의 예능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방송국 에게이들은 좋은 먹잇감이다. 그들을 즐겁게 할수록 시청률은 오르고 오르는 시청률에 따라 광고도 잘 붙기 때문이다. 같은 시간 대 홈쇼핑이 완판 되지 않는 게 이상 할 정도다. 그들을 즐겁게 할수록 지갑은 열리게 된다. 그래서 최대의 역량을 집중시켜 최고 연예인을 전면 배치하며 사활을 건 전쟁을 기꺼이 치르려 한다. 이런 방송국의 노력에 부응하듯 우리는 여러 채널을 오가며 웃고 즐기며 소비로 이어지게 된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내일이 월요일임을 망각하게 된다.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각종 예능을 섭렵하다 보면 어느덧 월요일에 가까워져 있다. 흐르는 시간을 붙잡고 싶은 절정의 감정이 밀려온다. 잡고 싶어도 잡히지 않는 게 시간이다. 절정을 지난 감정은 불안과 공포를 동반한 절망감을 안겨 준다. 내일이 안 올수 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고 싶어진다.(이 또한 개인적인 생각이며 글의 재미를 더하기 위한 표현임을 밝힙니다) 주말 내내 너무 누워 있어서 허리가 잘못 됐나? 으슬으슬 추운 게 감기가 오려나? 갑자기 회사에 변고가 생기지 않을까? 다양한 핑계꺼리가 머릿속을 떠다닌다. 그 중 하나를 붙잡고 못 간다고 연락해 볼까? 생각만 할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자기 전 아무 신에게나 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고 일어났을 때 어디 한 군데 아프게 해 준다면 그게 어느 신이든 굳게 믿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안타깝게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어김없이 월요일 해는 떠오르고 지하철에, 버스에 구겨진 체 실려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월요일은 피할 수 없다. 월요일을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월요병이 생길 수도 안 생길 수도 있다. 결국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아무리 유명하고 능력 있는 명의도 월요병을 이길 처방을 내리지 못한다. 월급쟁이 개개인의 마음과 생각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떠한 처방도 효과가 없을 것이다. 그들이 진정 원하는 처방은 월요병 없는 세상, 즉 월급쟁이에서 벗어나 돈과 시간의 자유를 누리는 삶이 아닐까.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만큼 이상적인 삶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예능 프로그램에 의지할 이유도 방송국 간의 시청률 전쟁도 의미 없어진다. 월요병도 더 이상 병이 아닌 한 때 추억으로 남겨 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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