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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Feb 15. 2023

부장 승진, 그게 뭐라고

2023. 02. 15.  07:34


속으로부터의 빡침이었다. 다른 표현을 찾지 못했다. 올 해는 기대했다. 얼마 전부터 몇몇 거래처에서도 차장 명함을 건네도 부장으로 불렀다. 굳이 호칭에 토 달지 않았다. 순서만 바뀌었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차장으로 5년을 채웠다. 내 위로는 승진보다는 연봉에 더 관심이 많았다. 시세만큼 쳐주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짐 쌀 태세였다. 나는 연봉도 중요했지만 내심 승진을 더 바랐다. 물론 그동안 큰 사고 몇 번 쳐서 미운털 박히긴 했지만, 지난 2년 동안 잠자코 만회해 왔다고 속으로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었나 보다.


2020년 3월, 코로나가 막 퍼지기 시작했다. 대구를 시작으로 전국으로 맹렬히 번져갔다. 어쩌다 보니 대구 현장에 갈 현장직이 없었다. 아마 안 가려고 했던 것 같다. 그 시국에 그곳에 간다는 건 그 당시엔 과장을 보태 사지로 뛰어드는 걸로 여겼다. 거르고 걸러 결국 나에게 지시가 떨어졌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통보였다. 기꺼이 가겠다고 했다. 그때는 가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잘 보이기보다는 내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10여 년 만에 현장 근무였다. 6개월 내 끝나는 공사이니 해 볼만했다. 시작은 에너지 충만이었다. 시작만 좋았다. 두 달 만에 사표 던졌다. 사표는 수리되지 않았고 다시 본사로 복귀했다. 당연히 좋은 고가는 기대하지 않았다. 자리만 보존하면 다행이라 여겼다. 


자리는 보존했지만 실수를 만회하고 싶었다. 현장으로 보내지는 않았지만 현장 일을 시켰다. 물론 건설회사가 현장 중심을 돌아가는 특성 때문이기도 했다. 그 생리를 잘 아니 일단 수긍하고 시키는 대로 했다. 현장과 본사, 관공서를 오갔다. 내 일은 아니었지만 내 일처럼 했다. 숨죽여 2년을 보냈다. 싫은 내색, 불편한 언행 없이 남들보다 더 낮은 자세로 내 일에 매진했다. 그 사이 회사 매출도 올랐고 직원도 늘었다. 저마다 자리에서 열심히 했기에 얻은 성과다. 회사는 남은 만큼 나누겠다며 보너스도 지급했다. 얼마를 주든 받으니 기분은 좋았다. 곁들여 승진도 시켜주길 지난해 바랐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나 보다.


그렇게 1년 더 참고 기다렸다. 작년까지는 참회의 시간이었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솔직히 승진된다고 눈에 띄게 달라지는 건 딱 하나다. 회사차가 나온다는 것. 적어도 차에 들어가는 돈을 아낄 수 있었다. 내 차를 업무에 사용하면 기름값은 지급해 준다. 거기까지다. 엔진오일, 타이어, 기타 부속은 내 부담이다. 회사차는 부속까지 부담하니 돈 들 일이 없다. 내심 그걸 바랐다. 하지만 바라는 대로 들어주지 않았다. 작년까지는 그렇다 치고 기다렸다. 하지만 올 해는 진짜 기대했다. 년 차도 그렇고 그동안의 기여도 충분히 했다고 나 스스로 믿었다. 그 믿음도 임원들이 평가에서 비롯되었다. 분명 바라는 소식을 줄 것처럼 간간히 떠 봤던 것 같다. 풍선에 바람 넣듯 말이다. 빵빵하던 풍선도 바늘 한 침에 순식간에 바람이 빠졌다. 며칠 동안 내가 내가 아니었다.


승진 발표가 난 뒤 상무가 옆에 오더니 조용히 속삭였다. 인사 결과에 속상한 거 안다고. 이번에 관리부 두 명을 동시에 승진시키보니 현장에서 보기에 모양새가 안 좋을 것 같아 나를 제외시켰단다. 본사에 책상이 있기는 했지만, 현장일 다 시켜놓고 이제와 선 긋는다. 선 긋기 참 쉽다. 개인의 역량, 기여도보다 겉으로 보이는 게 먼 저였나 보다. 따지고 들어가 보면 현장직 중 승진에 관심 있는 사람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부장으로 입사해 더 이상 오를 곳도 없고 그들은 무엇보다 현실적인 연봉을 더 바랐다. 그들에게 나 하나 부장 달아준다고 반대할 사람 아무도 없다. 내가 그들의 현장 업무에 기여한 걸 알기에 더더욱 토 달지 않을 거였다. 상무를 통해 이유를 들으니 더 납득이 안 됐다. 따지자니 이미 승진 공고가 났고, 그걸 뒤엎는 건 더더욱 모양새도 안 좋고 그렇게 승진한 들 뭐가 나아진단 말인가. 그저 깊은 곳으로부터의 빡침을 속으로 삭이는 수밖에.


5년 전 입사 때부터 사직서를 품고 지금까지 견뎠다. 막상 던지자니 제대로 해놓은 게 없었다. 만약 부수입이 많았다면 이미 사표 던졌을 거였다. 여전히 부수입보다 월급에 매인 삶이라 사표는 품에서 썩고 있다. 하지만 이제 다시 꺼낼 때가 된 것 같다. 퇴직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언제까지 매여 살 수도 없다. 어차피 부딪쳐야 한다면 더는 망설이지 않는다. 다시 돌아갈 일 없도록 죽을 각오로 내 일을 시작할 것이다. 이 각오로 올 해를 시작했다. 마음먹은 대로 계획한 대로 실천해 반드시 기필코 내 일을 시작할 것이다. 상무가 이유를 설명할 때 내가 무심한 듯 한 마디 던졌다. "저 차장으로 이 일 끝낼 겁니다." 진심이었다. 농담으로 들었을까?  사람 구하기도 힘든 요즘 적어도 3개월 전에 퇴직 의사를 밝히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배려이지 싶다. 5월 말까지만 잠자코 있자. 


2023. 02. 15.  08:22


덧,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빡치는 감정이 글쓰기 더 수월하게 도와준다.

속으로부터의 외침이라 그런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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