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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Feb 17. 2023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는
견디는 시간

2023. 02. 17.  07:33


날짜 계산이 참 쉽습니다. 시작일은 2018년 1월 1일부터 입니다. 둘째 딸의 생일이기도 하고요. 오늘까지 꼬박 5년 1개월 2주 2일, 1873일이 지났습니다. 시작할 때는 몰랐습니다. 이 시간을 온전히 견뎌낼지를요. 네 자리 숫자가 두텁게 느껴집니다. 목표가 없었고 계획이 쉬웠고 포기에 익숙했던 저와는 거리가 먼 숫자였습니다. 시작할 때의 나는 저만치 앞서 있는 이들이 막연히 부러웠습니다. 그들이 서 있는 자리까지 갈 수 있을지 의심도 들었습니다. 닿지 않을 곳에 있어서 오히려 욕심이 안 났을 수 있습니다. 욕심을 내려놓은 덕분에 지금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욕심을 부렸다면 일찍 포기했을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저는 그러기 충분했으니까요. 다행히도 이번에는 이전과는 달랐습니다. 많은 책을 만나고 좋은 사람을 알게 되면서 포기보다 끈기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좋은 걸 잃고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포기를 이겼습니다. 


나를 나답게 보여주는 건 지나온 시간인 것 같습니다. 그 시간 동안 내가 무엇을 했는지, 어떤 성과를 내기 위해 견뎌냈는지에게 따라 나라는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직장인의 정체성은 그 사람의 직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입부터 연차가 쌓이는 동안 역량을 키워 존재감을 드러내게 됩니다. 욕도 먹고 실수도 하고 다시 도전하면서 저마다의 시간을 견뎌냅니다. 견뎌낸 보상으로 월급이 오르고 승진하고 더 중요한 일을 맡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모두에 똑같은 결과가 주어지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경쟁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동기 사이에도 경쟁에서 살아남은 일부만이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연봉을 차지합니다. 그렇지 못한 이들은 점점 설 곳을 잃어가고요. 인생에서도 조금씩 내 자리가 작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게으르거나 제 역할을 못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요. 다만 똑같은 시간에 상대방이 조금 더 성과를 내고 도드라졌을 뿐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들의 노력을 깎아내려서는 안 됩니다. 저도 직장에서는 별 다른 색깔이 없습니다. 탁월하지도 않고요. 다만 주어진 일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할 뿐입니다. 하는 일과 조직의 크기에 따라 노력의 정도도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대기업 조직에 있었다면 며칠도 못 버텼을 겁니다. 운 좋게 딱 저에게 맞는, 제가 감당할 만큼의 일을 할 수 있는 조직에 있어서 나름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의 노력을 폄하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직장인으로서 저는 겨우 자리만 보존하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읽고 쓰는 정체성을 가진 저는 조금 다릅니다. 지난 1873일 동안 매일 책을 읽었습니다. 이거다 할 만한 재능이 생긴 없습니다. 다만 세상을 조금 다르게 보고, 가족에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사람들에게 조금 더 나은 삶이 있다고 말해줄 수 있는 정도입니다. 어디까지나 제가 경험한 선에서 말이죠. 가족도 사람들도 제가 하는 말을 믿고 따라줍니다. 왜일까요? 제가 견뎌온 시간의 두께를 인정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시간 동안 스스로 경험하고 달라지고 변화한 결과가 보이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지금까지 책 읽고 글 쓰는 사람이자 나 자신을 변화시켜 온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제가 쓰는 글과 그 글들을 모아 낸 책을 통해서 말이죠.    


처음 시작할 땐 남이 하는 말을 믿고 따라갔습니다. 그들을 따라가며 나도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습니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을 통해 누군가 다른 삶을 선택하길 바랐습니다. 그러려면 내 말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하고 무게가 실려야 했습니다. 아마 1873이라는 숫자는 책임과 무게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누군가에겐 택도 없는 숫자로 느낄 수 있습니다. 저도 인정합니다. 중요한 건 지금의 제가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게 있고, 더 오랜 세월 견뎌낸 이가 줄 수 있는 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저는 저대로, 그들은 그들대로 사람에게 영향을 주면 됩니다. 저도 당연히 제 앞에 걷는 이들을 계속 따라갈 테니 말입니다.


제 아무리 긴 시간을 버텨내도 내 가치가 인정받는 순간은 따로 있습니다. 누군가 나를 선택했을 때입니다. 내 글을 읽고 내 책을 읽고 나의 일상에 영향을 받아 변화를 선택하는 이들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수천 수만 일 자기 계발을 해도 아무에게도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게 과연 의미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건 나 혼자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제 주변에도 저와 같은 지향점을 가진 이들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더 나은 세상을 바란다고요. 더 나은 세상은 더 많은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선택하고 그렇게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저마다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견뎌내는 것입니다. 견딤의 시간 뒤 또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고요. 그러다 보면 분명 점점 더 나은 세상이 될 거라는 믿음으로 말이죠. 거창하고 막연히 이상적인 것 아니냐고 되물을 수 있습니다. 흰 종이에 얼굴을 그리려면 점 하나 선 하나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점 하나 선 하나가 없으면 초상화를 완성할 수 없습니다. 같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저마다의 믿음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나아가면 머지않아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의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포기할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오늘보다 내일을 생각했습니다. 오늘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내일 나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하루아침에 삶이 곤두박질치지는 않습니다. 다만 내가 바라는 이상과는 점점 멀어질 것 같았습니다. 반대로 내가 바라는 모습에 가 닿을 수 있는 건 오늘 해야 할 일은 해내는 것이었습니다. 눈에 띄게 달라지지는 않지만 그 시간이 쌓인 덕분에 나름의 성과도 손에 쥐었습니다. 삶이 눈에 띄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종이에 물이 스미듯 젖어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이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도 생긴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충분하지 싶습니다. 내가 나를 인정해 주고 칭찬하고 싶습니다. '너는 충분히 이 글을 쓸 자격 있다'라고 말이죠.  


2023. 02. 17.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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