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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Feb 20. 2023

갈대와 달리 나는 의지가 있다

2023. 02. 20.  07:38


이 글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 더 이상 이런 구질구질한 내용으로 흰 종이를 채우지 않기로 다짐했다. 주말 내내 아무것도 안 했던 나를 반성한다. 더는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인해 일상에 영향받는 일도 없을 것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내가 어떤 행동을 할 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이제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만 집중하려고 한다. 덕분이다. 직장이 나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었다. 그들 덕분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선명해졌다. 하고 싶은 일을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다. 많아진 연봉과 좋아진 복지로 잠시 눈에 지방이 끼었지만, 이제는 가벼워졌다. 이런 일이 있었다.


2020년 2월, 코로나가 위세를 떨 때였다. 현장직 중 누구도 대구 현장에 못 가겠다고 했다. 차선책으로 내게 의사를 물어왔다. 묻기보다 지시에 가까웠다. 솔직히 나도 능력을 보여줄 기회라고 조심스레 생각했다. 그런 의도를 가족에게 설명하고 설득했다. 역량이 부족하다는 걸 알기까지 3개월 걸렸다. 사표를 냈다. 두어 번 실랑이 끝에 본사 복귀로 일단락되었다. 그때 분명히 다짐받았다. 더는 현장 근무, 어떤 형태로든 현장은 가지 않겠다고. 다만 현장 업무 중 일부 본사에서 처리하는 걸로 정리했다. 작은 조직이니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나도 수긍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그 기간 동안 현장 업무를 본사에서 하는 식이었다. 


올 해도 승진 명단에 없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현장 근무자 중 승진 대상자는 없지만, 본사는 나를 포함 세 명이 승진하면 모양새가 안 좋다는 이유였다. 내가 본사 근무자였나? 이유를 듣고 나니 더 어이가 없었다. 2년 전 본사 근무를 시작하면서 업무 분장은 했지만 몸만 본사에 있을 뿐 현장 업무를 일부 맡아왔다. 그러니 내 딴에는 본사 현장 구분하는 게 의미 없었다. 여느 현장 근무자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승진만큼은 명확하게 선을 긋고 싶었나 보다. 납득 안 되는 결과였다. 며칠 동안 끓어오르는 감정을 추슬렀다. 겨우 진정이 됐지만 또다시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다시 현장으로 지원을 가라고 한다.


지난 금요일 오후, 퇴근을 2시간 남겨 두었다. 상무로부터 전화가 왔다. 당분간 부산 현장으로 지원을 가라고 한다. 출근하기로 한 직원이 개인 사정으로 입사를 포기했다면서. 최근 마무리된 현장도 있어서 다른 직원도 있는 데 왜 나인지 의아했다. 이유를 설명했지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이유는 그들은 부산으로 가는 걸 원치 않는다고 말했고, 일종의 눈치를 보는 걸로 이해했다. 현장 직원 구하는 게 어렵고, 한 명이 아쉬운 상황에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라고. 그러니 차선책인 나에게 미안한 듯한 말투로 나에 대한 배려 없는 통보를 날렸다. 간다고 말은 했지만 기분은 더러웠다.


전화를 끊고부터 기분이 더러웠다.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내 말은 전혀 안중에도 없구나 싶었다. 그들의 명분은 뻔하다. 다 회사를 위하고, 월급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미안한 마음은 있지만, 그래도 내가 그 현장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효율적이지 않겠냐고.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나 정도, 아니 나보다 경력이 많다면 언제 어느 때 현장에 투입되어도 맡은 일을 해낼 역량이 된다. 그래야 그 자리에 올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런 기본이 무시되는 건 앞서 적은 대로 눈치 보는 것밖에 안 된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기분이 나빠진다. 이 생각을 끊지 못하고 밤낮으로 이어졌다. 다음 날 새벽, 오늘 새벽까지 일기장에 꾹꾹 눌러 적었다.


적으면 적을수록 기분만 더 나빠졌다. 구질구질한 내용을 적고 있는 내가 더 싫어졌다. 당장 멈췄다. 아무리 불만을 말하고 억울함을 토로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내가 결정하고 다른 길을 선택하지 않는 이상 이 같은 상황은 반복된다. 그때도 나는 같은 감정으로 비슷한 불만만 토해낼 것이다. 그만 쓰기로 했다면 그만 생각하고 더는 에너지를 주면 안 된다. 그래서 이 글을 마지막으로 이 같은 내용의 글을 안 쓰려고 한다. 직장은 다니는 동안 이와 같은 일은 반복된다. 같은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다른 선택을 하면 된다. 내 의지와 상관없는 일에 아무리 화를 내고 불만을 나타내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내 의지대로 선택한 일이라면 다르다. 내가 책임지면 그만이다. 그렇게 마음먹고 행동하기로 했다.


선택 앞에서 누구나 망설인다. 그때 누군가 명확한 길을 제시해 주거나 확신을 주면 덜 불안하다. 안타깝지만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거의 대부분 오롯이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선택에 대한 책임도 당연히 자신의 몫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런 선택에는 타인을 탓할 필요도 탓해서도 안 된다. 내가 지금 그들에게 불만이 생긴 것도 내 의지와 상관없기 선택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다행이라 여기기로 했다. 그런 결정 덕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할지 더 분명해졌다. 더는 망설이고 주저하고 싶지 않다. 오롯이 내가 선택하고 책임지는 삶을 살고 싶다. 그에 따른 필요충분조건을 갖춰놓는 건 당연하다. 그 준비를 마치면 미련 없이 내 길을 갈 것이다. 그들에게 보란 듯이 말이다.


 분하고 억울한 감정으로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내 일을 갖겠다고 마음먹고 5년을 준비하고 기다렸다. 이제 그때가 된 거로 받아들인다. 분명 계기가 필요했다.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한 번은 겪고 넘어야 할 산이었다. 이번일로 마음을 굳혔다. 이번 일이 실행으로 옮기는 데 발판이 되었다. 더는 주저하지 않는다. 결심이 서니 몸이 가볍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한다. 내 선택에 따른 결과만 책임진다. 더는 내 감정을 쓸데없는 곳에 낭비하고 싶지 않다.  이런 내용의 글도 그만 쓰려고 한다. 쓰면 쓸수록 감정만 상하고 힘만 빠진다. 더 나은 곳에 쓰기에도 모자란 에너지다. 이제 그만이다.


갈대를 흔드는 건 바람이다. 갈대가 흔들린다고 바람을 탓하지 않는다. 나도 나를 흔드는 것들에 더는 탓하지 않는다. 나를 흔드는 바람이 싫으면 바람이 불지 않는 곳으로 가면 그만이다. 갈대와 달리는 나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흔들리는 대로 살아왔다. 앞으로 흔드는 대로 살고 싶지 않다. 누군가 나를 흔든다면 그건 오롯이 내 선택에 의한 것이고 내 책임이다. 내 의지대로 내 일에 책임지며 살 것이다. 더는 바람을 탓하며 살고 싶지 않다. 


2023. 02. 20.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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