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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Mar 29. 2023

첫 독자를 위해 글을 씁니다


남의 시선 의식하지 않고 살면 안 될까요? 마음은 그래야 한다고 하지만 정작 행동은 그렇게 안 됩니다. 어디서나 누구 앞에서나 상대를 의식하게 됩니다. 아는 사람은 물론 모르는 사람 앞에서도 마찬가지이고요. 의식하며 행동할수록 되레 실수하기 일쑤이지요.


저는 남의 눈치를 많이 봅니다. 5년째 다니는 직장에서도 여전히 불편한 동료가 있습니다. 속내를 굳이 드러내야 할 필요를 못 느낀 것도 있습니다. 또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게 처세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저도 상대도 서로 눈치를 보게 됩니다.


어디 직장뿐일까요? 일로 만나는 사람, 자기 계발로 만나는 이웃 등 다양한 경로로 만나게 됩니다. 대부분 눈치를 보느라 쭈뼛거리면 상대가 먼저 말을 걸어옵니다. 고맙게도 말이죠. 한두 마디 주고받으면 경직됐던 분위기도 누그러지고 마음의 경계도 풀리는 것 같습니다.


먼저 말도 못 건네는 저가 무슨 배짱으로 SNS에 글을 썼는지 지금도 의아합니다. 아마도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착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매일 완성된 문장으로 쓰인 책을 읽어서 인 것 같습니다. 멋지고 완벽한 문장을 읽으니 나도 이 정도는 쓸 수 있겠다는 착각 말이죠.


한편으로 착각이 없었으면 글쓰기에도 관심이 없었을 겁니다. 다행히 착각에서 벗어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내 글이 엉망이라는 걸 남의 눈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갈림길에 섰습니다. 글을 쓸지 말지.


평소 성격대로 남의눈을 의식했다면 멈췄을 겁니다. 그러나 어디서 어떤 용기가 났는지 무작정 'GO'를 외쳤습니다. 그때는 두려울 게 없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도전을 겁내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읽었던 책들이 용기를 갖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용기 덕분에 지금까지 이렇게 매일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남을 의식한다고 글을 잘 쓰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글쓰기 책도, 강의에서도 글을 쓰는 목적 중 첫 번째는 오롯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고 합니다. 내 글의 첫 독자인 자기를 위해 쓰라고 합니다. 남의 의견을 염려해 두고 쓰는 건 내 글을 쓰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오히려 나를 위해 쓰는 글이 독자를 위한 글이 된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말장난하는 줄 알았습니다. 계속 써보니까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겉모습은 달라도 사는 모습은 고만고만합니다. 그러니 내 문제가 네 문제고, 네 문제가 내 문제인 것입니다.


내가 겪은 일에 대해 쓰면 비슷한 경험을 했던 독자가 공감해 줍니다. 내가 책을 통해 배운 걸 말하면 독자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기도 합니다. 내가 해답을 찾고 있는 문제도 누군가 똑같은 답을 찾으려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나를 위해 쓰는 글이 곧 독자를 위한 글이 되었던 것입니다.


말주변이 없어서 겪었던 일을 묶어 책으로 냈습니다. 지질하기도 했고 억울한 일도 당했고 상처받기도 했습니다. 이런 저를 보고 누군가는 위로했고, 누군가는 응원해 주었고, 또 누군가는 자신도 같은 경험을 했다고 공감해 주었습니다. 상대를 의식해 드러내지 않았다면 주변의 위로, 응원, 공감을 받지 못했을 겁니다.


제 주변도 남의 눈 의식해 글을 못 쓰는 분이 제법 있습니다. 조금 더 잘 쓰게 되면 그때 SNS에 올리겠다고 합니다. 조금 더 멘털이 강해지면 그때 책을 쓰겠다고 합니다.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글쓰기뿐 아니라 모든 일이 스스로 시작했을 때 끝까지 해내게 될 테니까요.


저도 스스로 착각에서 벗어났고, 마음 깊은 곳에서 '오기'가 발동했기에 지금까지 써 올 수 있었습니다. 현실을 인식하고 오기를 발동하는 건 오롯이 자신의 몫입니다. 옆에서 잔소리해 봐야 씨알도 안 먹힐 겁니다.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단연코 '글쓰기'라고 말하겠습니다. 남의 눈 의식해서 못 쓰겠는데 글을 써야 의식하지 않겠다고요? 말장난 같지만 사실입니다. 우리 앞에는 또 다른 착각의 함정이 있습니다. 바로 남이 나를 보고 있다는 착각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내가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남이 나를 본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


내가 의식하지 않으면 남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됩니다. SNS에 글을 올리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글을 보게 될까요? 기껏해야 이웃추가된 몇 명입니다. 어쩌다 들른 한두 명이 전부입니다. 그중 나에게 악의를 가진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안티나 스토커가 있는 것도 유명세라고 했습니다.


조금만 냉정하게 현실을 볼 필요 있습니다. 남의 시선은 내가 만들어낸 게 아닌지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남은 나를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렇게 마음먹으면 한결 가벼워질 것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착각에서 벗어나 무작정 쓰기 시작한 것도 남의 눈 의식하지 않기로 마음먹고부터였습니다.


글은 당당하게 쓰면서도 말은 여전히 입에 돌덩어리가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가벼워질 기미가 안 보입니다. 어떻게 하면 입도 가벼워질 수 있을까요? 글을 많이 쓴다고 반드시 말도 잘하지 않는다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말과 글은 별개인 게 확실합니다. 단점보다 장점에 집중하는 강점 혁명, 제가 쓴 책 제목처럼 장점에 집중합니다.


글쓰기 5년, 적어도 글을 쓰고 있어서 글에서만큼은 남 눈 의식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쓰는 게 아니니까요. 내 글의 첫 독자, 나를 위해 오늘도 이렇게 한 편을 남깁니다. 잘 쓰고 있다 김 코치.






https://blog.naver.com/motifree33/223040680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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