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취미가 아닌 삶의 일부
책 읽는 직장인은 주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책 읽는 것이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닌데 드러내기 꺼려한다. 할 일 없을 때 시간 때우기로 책을 읽는다고 생각하곤 한다. 책과 담을 쌓고 살 땐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언제나 이력서 취미는 독서였다. 일 년에 한 권도 제대로 읽지 않으면서 고상한 척 취미라고 적어 놓았다. 취미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 좋아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독서가 취미가 되기 위해 책을 통해 즐거움을 얻고, 책 읽는 것이 좋아야 하며, 꾸준히 할 수 있어야 취미라 할 수 있다. 하루 중 자는 시간, 일하는 시간을 제외한 시간 중 취미활동을 할 수 있다. 삶을 열정적으로 사는 이들은 퇴근 전, 후 시간을 활용해 취미활동을 한다. 주중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주말을 활용하기도 한다. 이렇듯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라면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 내려 한다. 책을 읽는 직장인도 업무시간과는 별개로 책 읽는 시간을 만들어 내는 노력을 한다. 그들은 결코 한가해서 책 읽는 것이 아니다.
책을 읽기로 마음먹고 행동으로 옮기며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하루 중 얼만 큼의 시간을 만들 수 있을까? 일어나서 잠들기까지 어떻게 보내는지 들여다봤다. 회사까지 자가용으로 30분 거리였다. 출근 시간은 9시였다. 평균 도착 시간은 8시였다. 퇴근은 6시, 집에 도착하면 늦어도 7시였다. 출근 길 집을 나선 후 업무 시작인 9시까지 대략 한 시간 반 정도 있었다. 퇴근 후 저녁 식사 후 잠들기까지 3시간 정도 있었다. 주말은 아이들과의 시간을 고려해 유동적이었다. 나에겐 평일 평균 4시간을 만들 수 있었다. 적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동안 이 시간을 의미 없이 흘려보내고 있었다.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지니 행동하면 됐다. 차를 타면 제일 먼저 오디오 북을 틀었다. 라디오는 일체 듣지 않았다. 도착하면 사무실로 가지 않는다. 근처 카페에서 출근 시간 전까지 차에서 듣던 오디오 북의 나머지 부분을 읽어 나갔다. 그렇게 읽다 남은 부분은 퇴근 길 차 안에서 다시 듣는다. 저녁 식사 후 아이들과 시간을 갖는다. 9시 전후로 아이들이 잠들면 다시 차에서 듣던 오디오 북을 꺼내 읽는다. 이렇게 읽어 나가면 짧게는 이틀, 분량이 많으면 삼일 만에 한 권 씩 읽을 수 있었다. 읽은 책이 더해질수록 시간이 소중해졌다. 만들어낸 시간을 허투로 쓸 수 없었다. 시간을 관리하면서부터 내 삶에도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지는 24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취미생활을 갖고 있는 직장인들은 시간을 쪼개 생활한다. 취미생활을 통해 스트레스 해소와 삶의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 중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많은 직장인은 이런 시간을 갖고 싶어 하지만 매일 야근과 회식으로 이어지는 현실에선 꿈같은 이야기라 말한다. 그 말도 틀린 건 아니다. 어쩌면 취미생활이나 책을 읽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건 보통의 직장인과는 조금 다른 조건을 갖고 있을 수 있다. 몸담고 있는 조직문화가 야근과 회식을 지양한다면 눈치 보지 않고 저녁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최근 들어 이런 불균형을 개선하는 움직임으로 ‘워라밸’ 이 확산되고 있다. 워라밸은 단순히 퇴근 이후 시간만 보장하는 의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그 안에 담긴 질적인 부분이 함께 개선되어야 한다. 직장 스트레스로 만신창이 된 이들에게 쉴 수 있는 시간만 주는 건, 병의 근본을 치료하지 않고 상처 부위에 밴드만 붙이는 식이다.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건 시간 속에 담긴 의미에 있다. 수직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 조직 안에서 취향대로 행동하려면 모험이 따른다. 윗사람 눈치 보며 제때 퇴근 못하는 건 당연하고, 퇴근 후 메신저를 통한 업무 지시는 시간을 가리지 않는다. 이런 조직 문화가 남아 있다면 퇴근 후 시간은 또 다른 출근이 될 수 있다. 저녁 시간을 보장해주는 취지의 워라밸 이라면 일과 여가는 철저히 구분되어야 한다. 조직 구성원 간 목적 인식을 바탕으로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자리 잡아 간다면 불균형은 해소 될 수 있다. 이렇듯 더 많은 이들이 저녁 있는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다양한 취미활동과 깊이 있는 자기계발을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시간 여유가 생기면 책을 읽고 싶어 한다. 책을 통해 다양한 지혜를 얻고 싶다고 한다. 책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해 보고 싶어 한다. 책을 통해 새로운 일을 시작해 보고 싶어 한다. 지금과는 다른 삶을 꿈꾸며 그 실현 방법으로 책을 찾는다. 다양한 이유로 책을 찾지만 정작 시간이 주어져도 책을 읽는 이는 드물다. 그만큼 절실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취업을 앞둔 이도, 승진을 준비하는 이도, 이직을 꿈꾸는 이도, 퇴직이 다가온 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책 속에 담긴 지혜이다. 마흔을 넘기며 삶은 불안해졌다. 모아놓은 돈도, 물려받을 재산도, 남들과 구별되는 뚜렷한 기술도 없었다. 맞벌이로 한 달 꼬박 벌어도 손에 쥐는 돈은 없었다. 두 아이를 키우려면 지금 보다 더 나은 직장이나 더 많은 수입이 보장되어야 했다. 매일 하루라는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가 보지만 문 밖 현실은 언제나 같은 그림이었다. 그 안에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세계 역사 속에도 자신들의 암울한 미래를 이겨내기 위해 배움을 선택한 민족이 있었다. 유대인 오천 년 역사 중 사천 년은 박해와 탄압의 연속이었다. 수많은 열강들에 의해 이주와 이산의 끊임없는 고통의 역사였다. 왕권이 붕괴되고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할 때 그들의 정신을 하나로 묶기 위해 토라와 탈무드를 중심에 두었다. 유대인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토라와 탈무드에서 존재의미와 선조의 지혜를 배운다. 희망이 없을 것 같은 현실 속에서도 꿋꿋이 버틸 수 있었던 이면에는 그들이 선택한 배움의 연결고리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움을 지켜온 그들이기에 세계를 움직이는 중심에 설 수 있었다. 절박했던 나의 손에 닿은 것이 책이었다. 책을 읽는 그 시간만큼은 현실의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현실의 고민을 올바로 볼 수 있었다.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올바른 질문이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질문을 통해 내 안의 문제를 인식해 갔다. 엉켜 있는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나갔다. 엉킨 실타래 안에 숨겨진 내 모습을 찾아냈다. 절박함의 끝에 책이 있었고 책을 통해 희망을 발견했다. 책은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는 도구이다. 암울할 것 같던 현실에서 책이라는 한 줄기 빛을 발견했다. 빛은 어둠을 물리친다. 내 앞의 어떤 어둠이 다가와도 빛이 있기에 물리칠 수 있다. 책은 내 삶의 무기가 되어가고 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당장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책만 읽는다고 원하는 걸 다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루아침에 일확천금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유대인들이 책을 통해 고통을 이겨내며 삶을 이어왔듯, 나에게 책이 없다면 삶의 중심을 잃을지도 모른다. 사십 삼년을 그저 그런 삶을 살아왔다. 목표도 없이 계획도 없이 막연하게 살아왔다. 매일 책을 읽고 있지만 드라마틱한 변화는 생기지 않는다. 매일 책을 읽는다고 돈이 굴러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매일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종이가 젖기 위해 한 방울의 물이 필요하듯, 한 권의 책이 내 삶의 변화를 위한 시작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에겐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 지나온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되돌아갈 수도 없다. 후회를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앞으로의 삶에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것이다. 매일 조금씩 어제의 나보다 나아지기 위한 노력이면 충분하다. 어제의 나를 알고, 내일의 새로워질 내 모습을 위해 오늘 우리는 자신을 위한 공부를 해야 한다. 책을 통해 매일 새로운 나와 만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새로워질 나를 위해, 후회 없는 삶을 사는 나를 위해 독서는 취미가 아닌 삶의 일부분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