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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Apr 30. 2023

'하면 된다' 말고
'될 때까지' 하면 된다


1000번 버스 타고 서울역에 가는 길. 금화터널을 빠져나온 버스는 고가도로 밑으로 머리를 돌렸다. 원래 코스가 아니었다. 보통은 고가를 지나 사직터널을 통과해 광화문 앞 정부청사를 끼고 우회전한다. 버스가 머리를 돌린 이유가 짐직해 봤다. 서대문과 정동을 거쳐 다시 교보문고 사거리로 나오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광화문 광장에서 마라톤 대회 준비가 한창이었다. 행신동에서 탔던 트레이닝복 승객 서너 명도 그곳에서 내리는 걸 볼 수 있었다.


이맘때 SNS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게 마라톤 대회 참가 사진이다. 겨우내 몸을 만든 마라토너들은 봄기운에 터지는 꽃망울처럼 그동안의 기량을 뽐낸다. 광화문 광장에는 꽃박람회를 연상케 하는 다채로운 운동복이 시선을 끈다. 대회를 준비하는 운영자의 분주한 움직임, 만약에 사고를 위해 대기 중인 구급차, 그들 사이를 빠르게 지나치는 참가자들. 달리는 모습에도 기운이 차고 넘치지만, 대회가 시작되기 전 뒤섞인 사람 사이에도 활기가 느껴진다.


지난달부터 매주 주말 호수 공원을 달리고 있다. 6시부터 10시까지 써야 할 글을 마무리하고 공원으로 간다. 그 시간 공원은 달리는 사람보다 산책하는 사람이 더 많다. 달리기 전 차가웠던 몸은 공원을 반 바퀴쯤 돌 때면 어느새 열기와 땀으로 옷을 적신다. 그때쯤이면 고스톱의 갈등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지금까지 7번 달렸다. 그중 네 번은 4/5 정도 달리고 멈췄다. 나머지 세 번은 출발했던 곳까지 뛰었다. 고비가 오는 그 순간 '하면 된다'라고 각오를 다졌던 것 같다.


'하면 된다'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하면 된다'라고 의지를 다지고, 동기 부여를 한다. 이때 하면 된다는 시작을 의미한다. 시작에 앞서 해낼 수 있다는 의지를 다질 때 이 말을 사용한다. 하지만 하면 된다가 성공을 보장하는 주문은 아닌 것 같다. 누구나 굳은 의지와 각오로 시작은 할 수 있다. 이런 의지 없이 시작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의지와 각오로 시작했다면 누구나 다 바라는 결과를 얻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이 놓치는 하나가 있다. '될 때까지'이다. 모든 성공, 성취는 하면 된다로 시작해 '될 때까지' 했을 때 얻어지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중간 포기하는 사람도 '하면 된다'라며 시작한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 한 번 더 기운을 내는 사람이 끝까지 가게 된다. 마라톤이든 시험이든 책을 쓰든 말이다. 바라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사람은 될 때까지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이 되고 생계를 위해 직장을 다녔다. 한 직장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이유는 다양했다. 회사 망하기도 했고, 상사와 부딪쳐 뛰쳐나왔고, 회사가 못마땅해 도망친 적도 있었다. 일을 안 할 수 없으니 새 직장을 구했다. 그때마다 잘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었다. 나를 뽑아준 회사에도 늘 의지와 각오를 보여줬다. 결국 지키지 못할 약속만 한 꼴이었다. 월급이 잘 나오는 괜찮은 직장에 의지를 갖고 끝까지 버텼다면 어땠을까? 아마 조금은 낫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아홉 번이나 직장을 옮길 만큼 의지가 약한 나에게도 늘 못마땅했다. 어느 것도 될 때까지 해본 게 없었다. 이랬던 내가 지금 이 글을 쓸 만큼 달라졌다. 누구처럼 경제적 여유를 가진 건 아니다.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위치에 오른 것도 아니다. 딱 하나 적어도 내 의지에 따라 시작한 일은 될 때까지 해낸 다는 것이다. 일 년 300권 독서가 그랬고, 6권의 책을 낸 게 그랬고, 매일 한 편의 글을 써내는 게 그랬고, 금주와 식단 관리가 그렇다.


성공, 성취와 거리가 멀었던 내가 하면 된다는 믿음으로 책을 쓰기 시작했다. 언제나 시작은 의욕으로 넘쳤다. 문제는 의욕이 끝까지 유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분명 위기가 온다. 잘 안 써지는 날도 있고 쓴 글이 마음에 안 들기도 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위기가 찾아온다. 고스톱을 결정하는 때다. 예전의 나라면 여러 핑계를 대고 보이지 않는 곳으로 던져버렸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스톱 대신 '될 때까지'를 선택한다.


어쩌면 매일의 성취 덕분에 끝까지 해낼 수 있다는 믿음도 생긴 것 같다.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은 책을 읽고 정해진 분량의 글을 한 편 쓰는 것이다. 잠을 줄이고 시간을 쪼개 책을 읽어내고, 글을 써내는 걸로 오늘 할 일을 해낸다. 매일 손에 잡히는 결과가 쌓이면서 나는 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해냈다는 성취감이 나를 변화시켰다. 오늘 해냈다면 내일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믿게 된 것이다.


빈 화면을 채울 수 있다는 각오로 시작했고, 이렇게 다 채우기까지 써내려 왔다. 못 쓴다는 생각은 안 한다. 단지 이 시간 안에 완성할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시작한 글은 다 쓸 때 가지 써내면 된다. 그게 언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책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정한 그때까지 써내면 된다. 누구에게 검사를 받기 위해 쓰는 게 아닐 테니 말이다. 단지 내 글이 내 책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마음만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고 책을 쓴다. 더 많은 사람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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