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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May 05. 2023

카드값 결제 후 내 월급


5년째 같은 직장을 다니는 중이다. 이곳이 마음에 드는 몇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거래처에 대금 지급 약속을 철저하게 지킨다는 점이다.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일을 시키고 자재를 구매했으면 돈을 지불하는 건 중학생도 안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듯 그 자리에서 현금이나 카드로 결제하는 게 아니다 보니 문제가 생긴다. 건설업은 특히 신용을 통해 외상 거래가 대부분이다. 상대를 믿고 먼저 자재나 장비를 공급해 준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한 달 치 비용을 지급받는다. 문제는 거래처에서 제날짜에 대금 지급을 해주지 않을 때 생긴다. 그들도 거래처에서 들어오는 돈으로 회사를 운영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이런 당연한 걸 당연하지 않게 여기는 일부 악덕 기업 때문에 선량한 회사가 피해를 보고 심하면 문을 닫기도 한다.


아홉 번 직장을 옮겨 다니는 동안 돈 때문에 애를 먹은 회사가 몇 곳 있었다. 어떤 곳은 공사를 다 해주고 공사비를 받지 못하고, 어떤 곳은 공사비는 받았어도 거래처에 제때 돈을 지급하지 않았고, 또 어떤 곳은 일해준 돈도 못 받고 거래처에 제때 안 주기도 했다. 어느 경우든 중간에 끼인 나는 늘 아쉬운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공사비를 받아야 하는 곳에 돈을 달라고 읍소하고, 자재나 장비비를 줘야 하는 거래처에는 언제까지 돈을 줄 테니 기다려달라고 사정해야 했다. 대표는 대표대로 사정이 있었을 거다. 그렇다고 직원들에게 친절하게 사정 설명하는 대표는 한 번도 못 봤다. 그저 월급에 포함되어 있으니 모든 걸 감당하라는 식이었다. 그러니 일을 시키려고 해도 상대 눈치를 보게 되고, 자재나 장비를 구매할 때 매번 새로운 거래처를 찾아야 했다. 그때는 몸이 힘든 것보다 돈 때문에 겪는 감정 노동이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두 살 터울인 작은형과 내가 전학을 갔었다. 성남에서 살다가 서울로 이사 오면서였다. 나는 4학년, 작은형 6학년이었다. 전학하고 얼마 안 지나 수업 시간에 교무실로 불려 갔다. 작은형도 와 있었다. 그때는 학기마다 기성회비를 냈다. 기성회비를 안 낸 학생은 수업 중에도 교무실로 불러내 이유를 물었던 것 같다. 내 기억에 그날 교무실에 온 건 나와 작은형뿐이었던 걸로 기억난다. 한참을 복도에 서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들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쩌면 그때 학교는 잔인한 면이 없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사달이 났을 상황일 터다. 장사로 하루 벌이를 하셨던 부모님은 며칠 뒤 기성회비를 내기는 했지만 그날 교무실에 불려 간 기억은 여전히 또렷하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학교를 다니는 동안 부모님에게 학원 보내달라고 말하지 않았던 것 같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라 어려서부터 돈에 쪼들려 살았다. 부모님은 늘 우리를 앞에 두고 돈이 없다고 말했다. 그때는 그 너머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형제는 먹고 입고 자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비교해 부족한 건 있었지만 그게 문제 될 만큼은 아니었다. 그렇게라도 자식을 키우겠다며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았을 부모님의 고생이 이제야 짐작된다. 그때 부모님은 돈 때문에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많이 했었던 것 같다. 언제까지 갚겠다, 얼마만 빌려달라, 이런저런 이유를 설명하는 대화를 들었던 것 같다. 나도 여러 직장을 다니며 돈 때문에 읍소해 본 경험 때문인지 그때 부모님 심정을 조금이나마 짐작하게 되었다.


결혼 전까지 돈 때문에 애를 먹었다. 20대에 월급이 나오지 않는 직장에서 의리 하나로 4년 동안 함께 했던 적 있었다. 월급도 일정하지 않으면서 겁 없이 카드를 만들어 생활비로 대신했다. 그때는 수입이 없어도 카드를 만들어 주던 때였다. 그러니 카드 몇 개로 돌려 막기 하느라 정신 못 차렸다. 물이 가득 담긴 컵처럼 카도 한도가 가득 차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카드가 막히자 먹고 살 방법이 없었다.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했지만, 내 입에 거미줄 쳐도 의리를 지키겠다는 꼴값 떨었다. 결국 현금이라도 빌려 끼니는 때우기 위해 친구를 찾아다녔다. 직장 생활을 일찍 시작한 친구에게 먼저 연락해 술자리를 핑계 삼아 한 끼를 해결하기도 했다. 그나마 악하게 살지 않았는지 내 사정을 외면한 친구는 없었다. 큰돈은 못 빌려줘도 몇 만 원, 밥 한 끼, 술 한 잔은 기꺼이 내어주었다.


월급쟁이로 살면서 돈 때문에 다양한 일을 겪었다. 다니던 직장에 돈이 없어 거래처에 아쉬운 소리도 했다. 거래처에 돈을 제때 안 줘 상대의 원성을 수시로 들어야 했다. 결제 대금을 안 준다는 이유로 상대방의 날 선 말에 온몸이 배어도 참아야 했다. 돈이 없는 게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불편한 건 사실이다. 줄 돈 제때 안 주고받을 돈 못 받으면 서로가 힘들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20년 직장 생활 동안 돈을 통해 얻은 교훈 하나가 있다. 돈을 욕심내서는 안 된다는 거다. 내가 번 돈 안에서 살고 줄 돈은 제때 주는 거다. 남의 돈 떼먹으면 곱절로 되돌려 받는 게 세상 이치다. 여전히 돈에 욕심내 남의 돈 떼먹는 거래처도 있다. 기업이든 사람이든 돈 때문에 상대를 힘들게 하면 고스란히 돌려받는다. 당장은 풍족해 보여도 머지않아 사라질 돈이라는 걸 알았으면 한다. 돈이 나쁜 게 아니라 돈을 다루는 나쁜 마음이 서로를 힘들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글을 쓸 때 문장을 짧게 쓰라고 한다. 문장을 짧게 쓰는 이유는 의미 전달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다. 한 문장에 하나의 의미를 담으면 문장은 짧아진다. 주어와 술어, '나는 밥 먹는다'. '차가 밀린다'처럼 수식어를 최대한 줄이는 식이다. 반대로 불필요한 단어가 들어가면 가독성이 떨어진다. 예를 들면 '차가 정말 많이 밀린다'에서 '정말'과 '많이' 같은 부사를 빼도 의미는 전달된다. 문장을 짧게 쓰는 또 다른 이유는 리듬감을 줘 읽는 재미가 있다. 리듬감은 독자의 시선을 붙잡는다. 소설을 단순에 읽어내는 것도 짧은 문장이 한몫한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을 쓰는 게 여러모로 좋은 이유이다.


돈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내 돈이 아닌 걸 쥐고 있어 봐야 나중에 탈만 난다. 남에게 줄 돈은 제때 정확하게 주는 게 당연한 도리이다. 줄 돈을 쥐고 있어 봐야 마음만 불편하다. 카드빚도 결국 갚을 돈을 제때 안 갚아서 생긴 것이다. 여전히 월급쟁이다. 요즘은 세후 월급이 아닌 카드값 결제 후가 진짜 월급이라는 말이 있다. 비롯 내 손에 남는 건 얼만 안 되지만 줄 돈 먼저 주고 나면 그나마 마음은 편하다. 짧은 문장을 읽을 때 속이 후련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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