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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May 03. 2023

눈에 물이 찬 딸의 한 마디


해마다 5월, 지출의 블랙홀이다. 나가는 돈은 많지만 흔적이 남지 않는다. 부모와 자식 역할을 하지만 정작 손에 남는 건 두 딸의 편지 한 통이 전부였던 것 같다. 딸에게 선물을 기대할 나이도 아니다. 편지라도 써주는 게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나 올해는 조금 특별한 선물을 벌써 받았다.


근로자가 근로자의 날 쉰 게 못마땅했던 걸까? 책상에 앉기도 전에 호출이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정신을 빼놓는다. 이틀 동안 만들었던 서류를 새거나 다름없이 오전 안에 수정해 오란다. 말이야 방귀야! 원래 표정이 없지만 이런 지시를 받으면 더 무표정을 유지한다. 그게 과도한 업무에 반항하는 나만의 퍼포먼스다. 짐작하고 눈치채면 다행이지만 아니어도 상관없다. 일단 벽을 하나치고 시작해야 나중에 덜 괴롭다. 간혹 나에게 올 일이 그들 손에서 해결되는 경우도 더러 있으니 말이다.


겨우 점심시간을 사수할 수 있었다. 그들도 먹어야 하니 그 틈에 나도 먹고 왔다. 나는 점심시간만큼은 눈치 보지 않는다. 직장에서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오전 내내 스트레스받고 한숨 쉬는 일이 많아도 한 시간 동안 밥 먹고 걷고 책을 들으면 어느 정도 나를 되돌려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남은 반나절도 잘 보낼 수 있다. 3년째 직장에서 혼밥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롯이 나를 지키기 위해서다. 다시 전열을 다듬고 업무를 시작했다. 일은 원래 한 번에 몰아쳐주는 게 제맛이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새로운 문이 열리듯, 정신 차려보니 새 일이 내 손에 들려 있었다.


구시렁대는 것도 잠시, 제시간에 퇴근하려면 딴 눈 팔 새 없다. 글씨는 왜 이리 작고 숫자는 어쩜 이리도 많은지, 눈이 침침하다. 방해받지 않으면 좋으련만, 유능한(?)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이 자리 저 자리 옮겨 다니다 보니 부재중 전화가 와 있다. 큰딸이었다. 학교 끝나는 시간에 걸려 온 전화는 한 가지 이유밖에 없다. 무언가 아쉬운 부탁을 하기 위해서다.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고 싶은 데 용돈이 떨어졌다거나, 먹고 싶은 게 있는 게 용돈이 부족하다는 정도다. 큰딸의 첫마디가 다음 말을 짐작게 했다.

"아빠, 뭐 해?"

이렇게 묻는 건 아빠가 지금 아무리 바빠도 내 말을 들어줘야 된다는 무언의 압력이다.

"아빠? 일하지. 너는 학교 끝났니?"

일단 한발 물러나서 상황을 관망하고 다음 말을 위해 귀를 쫑긋 세운다.

"아빠~ 고마워!"

아내 못지않게 애교가 없는 큰딸 입에서 고맙다는 말이 나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진심이 느껴졌다. 무언가 바라고 전화한 게 아니라고 느꼈다. 나도 맞장구쳤다.

"그래 고맙다. 그렇게 말해주니 아빠도 고마워!"

몇 마디만 더 했다가는 눈에 물이 고일 것 같았다. 당황했는지 쓸데없는 질문을 던졌다.

"학교 끝났겠네? 학원 가야지? 집 인가? 집에 가야지."

"어, 이제 학교 끝났고 집에 갔다가 학원 가려고. 아빠 사랑해!"

얼른 통화를 마무리하려다 기어코 한 방을 맞았다.

"어? 어, 그래 고맙다."

큰딸은 알까? 내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는 걸. 잠시 뒤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엄마에게도 전화했던 모양이다. 아내는 큰딸의 고백에 눈물이 났단다. 사춘기 딸의 어버이날 선물이었다. 다행이다. 아직까지는 부모 노릇 잘하는구나 싶었다.


딸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내 자식 잘 키우고 싶어서 나름 노력 중이다. 이런 나를 보면 부모님도 우리 형제를 잘 키우기 위해 노력했던 게 떠오른다. 고마웠지만 표현하지 못했다. 다 크고 나니 표현하는 게 더 어색했다. 내가 큰딸의 한 마디에 녹아버리듯, 어머니도 다르지 않을 테다. 알면서도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대단한 걸 바라지 않을 텐데 말이다. 쉽지만 쉽지 않고, 어렵지만 어렵지 않다.


기록으로 남기면 기억하게 된다. 기억은 추억이 된다. 추억할 게 많은 삶은 풍요롭다. 기록을 하기 전에는 실감하지 못했다. 늘 비슷한 하루가 반복된다고만 생각했다. 그저 그런 하루였고 기억할 게 없는 일상이었다. 적으면서 달라졌다. 일상의 모든 순간이 글감이었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기록하면 글감이 된다. 글감이 없는 게 아니라 기억하고 기록하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었을까. 글 쓰는 삶을 살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다. 기록하는 모든 순간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추억이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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