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 가치를 더하는 글쓰기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

by 김형준

독서는 책 속 활자를 읽는 것을 말하지만 실제로 책을 읽기 전부터 이미 독서라는 행위는 시작된다. 책에 대한 관심을 갖고 어떤 책을 읽을지 고민하고 선택한 후 읽게 되는 게 보통의 과정이다. 관심 있는 책이 생기고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 하는 과정부터 이미 독서행위는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그 안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예상하는 건 생각의 힘을 키우는 시발점이다. 제목에서 전해지는 의미를 파악하고, 목차를 통해 대략적인 내용이 정리되고, 하나씩 읽어가며 처음 가졌던 생각과 어떻게 달라지고, 몰랐던 내용을 알아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생각이 단단하게 다져지게 된다. 독서는 생각의 힘을 키우는 훈련이다. 활자만 읽고 끝나는 독서는 유명한 관광지를 돌며 사진만 찍어대는 패키지여행과 다르지 않다.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되새기고, 그곳의 역사를 되새겨 보며 음미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관광이 아닌 여행의 참다운 묘미이다. 한 권의 책 역시 저자의 인생을 담고 있다. 저자의 생각과 인생을 제대로 들여다봐야 그 책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이해하기 위해 읽고 사색하고 기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읽은 권수가 쌓일수록 마음이 든든했다. 6개월 읽은 숫자가 수 십 년 읽은 숫자를 추월했다. 스스로 대견하고 뿌듯했다. 책을 읽으며 주변에 만나는 사람도 달라졌다. 유유상종이라 했다. 책을 읽으니 책 읽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에게 숫자로는 뒤지지 않았다. 한 번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기회기 있었다. 이야기가 오고 갈수록 말 수가 줄었다. 머릿속에 맴돌기만 할 뿐 정리되어 입으로 나오지 못했다. 속으로 부끄러웠다. 양이 많다고 질까지 높아지지 않음을 깨달았다. 질을 위해 양이 많아야 하는 건 사실이다. 요즘 나오는 과자는 봉지안의 내용물을 보호하기 위해 질소를 주입한다. 봉지를 열고나면 내용물은 반도 안 들어 있다. 자칫 양에 치중하면 속 빈 과장봉지처럼 과대포장 된 자신이 될 수 있다. 보여 지는 독서가 아닌 나를 채우는 독서가 되어야 했다. 우선 책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아야 했다. 한 권의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일부분이다. 모든 걸 다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다. 현재의 자신의 상황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다르다. 그런 부분만 내 것으로 만들면 된다. 이렇게 마음먹고 책을 읽으면 읽는 행위에 대한 부담도 덜 수 있다. 책은 일단 재미를 붙여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읽을 수 있게 된다. 부담이 덜어지면 책의 내용도 잘 보이게 된다. 관심 가는 부분을 집중해서 읽을 수도 있다. 이렇게 선택과 집중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한 권을 읽으면 저자의 많은 생각 중 적어도 하나는 내 것으로 만들자 마음먹었다. 읽다보면 유독 마음에 끌리는 문장이 있다. 그 문장을 옮겨 적고 그에 대한 내 생각을 글로 표현했다. 이렇게 쌓인 글들은 내 안의 빈 공간을 조금씩 채워줬다.


초중고 정규 교육을 받고, 대학 4년까지 나오며 제대로 된 글을 쓸 기회 없었다. 이직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쓴 게 전부였다. 그때 쓴 자기소개서를 읽어보면 낯 뜨거워진다. 이렇게까지 글을 못 썼나 싶었다. 살면서 글쓰기의 중요성을 배우지도 깨닫지도 못했다. 누구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왜 글쓰기가 필요하고 잘 써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해 줬다면 지금처럼 힘들이며 고생하는 시간은 덜 했을 것 같다. 책을 읽기 위해 시간을 만드는 것과 글을 쓰기 위해 또 다른 시간을 만드는 건 쉽지 않았다. 하루 중 책만 읽기에도 빠듯한 시간에 읽은 책에 대한 생각을 쓰려면 더 많은 시간을 만들어 내야 했다. 글쓰기의 필요성을 느낄 쯤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왕복 3시간 거리였다. 지하철을 이용했다. 새로운 루틴을 만들어야 했다. 고민 끝에 1시간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었다. 회사에 도착하면 8시였다. 1시간이 생겼다. 이 시간동안 글을 쓰기로 했다. 스스로에게 40분을 정해줬다. 블로그에 포스팅까지 40분 안에 끝내기로 정했다. 처음은 쉽지 않았다. 막상 쓰려고 화면을 켜면 깜빡이는 커서만 바라보고 있었다. 분량을 무시하고 무조건 쓰기로 했다. 머릿속에서 나오는 대로 옮겨 적었다. 말이 되든 말든, 내용이 좋든 말든 쓰고 싶은 말로 채워나갔다. 누구에게 검사 받을 것도 아니고 잘 쓴다고 상을 받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 쓴다고 생각했다. 해야 할 목적을 명확히 하고 나니 부담이 덜어졌다. 마음이 가벼우니 쓰기도 편해졌다. 출근 전에 한 편 쓰고 자기 전 일기도 썼다. 그 날의 사건이나 감정을 들여다보고 다이어리에 손으로 적었다. 그렇게 1년을 썼다. 그동안 글쓰기와 관련된 다양한 책도 읽고 유명한 작가의 강연도 좆아 다녔다. 어떻게 써야 좋은 글인지, 맞춤법은 바른지, 잘 읽히는 글인지 등 좋은 글의 조건을 고민하며 썼다. 한 편의 글을 쓰며 단어 하나 표현 하나 앞 뒤 문맥 등을 공부했다. 그렇게 공부하며 좋은 글을 쓰기위한 노력은 생각을 깊고 넓히는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읽는 행위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정보의 나열인 셈이다. 나열된 정보를 내 것의 지식으로 만드는 건 어떤 형태로든 각인시키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단순히 텍스트를 암기하는 차원이 아닌 글 속에 담긴 의미와 저자의 생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기억이 좋다는 건 눈으로 들어오는 글자를 외우는 차원이다. 책은 기억력으로 읽는 건 아니다. 기억력이 좋으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책이 건네는 의미를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이다. 눈으로 들어온 텍스트 정보와 저자의 생각, 행간에 담긴 의미를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은 내 생각을 갖는 것이다. 정보가 많다고 해서 생각이 깊은 건 아니다. 물론 넓은 분야의 지식은 깊이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한 분야의 깊이만 있는 지식은 넓은 이해와는 별개 일 수 있다. 다양한 정보를 연결하고 내 생각을 입히며 지식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지식은 정보의 또 다른 형태이다. 정보에서 한 발 나아가 내 경험과 생각이 입혀지면 지식이 된다. 우리에게 정보가 아닌 지식이 필요한 이유는 지혜를 얻기 위함이다.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모른다는 걸 모르고 산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삶은 지식과 정보만으로 살 수 없다. 삶이 무너지는 순간, 변화가 필요한 순간, 도전을 준비하는 순간, 어쩌면 삶의 모든 순간 지혜만이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정약용이 17년간의 유배 생활동안 수 백 권의 저서를 남길 수 있었던 이유도 지식이 아닌 지혜의 눈을 가졌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도 긴 유배 생활동안 수많은 책을 읽었다. 시중에는 그의 독서법을 다룬 책도 출간된다. 그도 읽고 쓰는 것을 강조했다. 글 쓰는 행위만이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휘발되는 정보를 붙잡고 지식을 통해 지혜를 얻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글쓰기이다.


스물네 살에 떠났던 배낭여행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떠나기 전 하나부터 열 까지 준비했던 과정과 배낭을 메고 여러 나라를 걸었던 순간이 떠오른다. 누구의 도움 없이 오롯이 혼자 준비하고 떠났기에 더 기억에 남는다. 도전하고 준비하고 경험하는 것 까지는 더 없이 좋았다.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 건 그 안에 깊이 들어가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나도 여느 관광객과 다르지 않게 사진만 찍으며 다니지 않았나 생각 들었다. 남는 건 사진이라지만 적어도 20대의 나에게는 사진보다 날 것의 경험이 더 가치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들의 생활 속에 들어가 문화를 체험하고, 일상을 들여다보고, 삶을 느꼈다면 좀 더 값진 여행으로 남지 않았을까. 한 권의 책도 저자의 사상 속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모든 책이 다 완벽하고 좋다고 할 수 없다. 모든 책을 완벽하게 읽을 수도 없다. 나에게 맞는 책, 관심사와 맞는 책을 만난다면 스쳐 지나지 말고 깊이 들어가 봐야 한다. 깊이 들어가는 방법은 각자 스타일에 맞게 만들어 가면 된다. 여러 번 읽을 수도 있고, 책에 메모를 할 수도 있고,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칠 수도 있다. 다만 앞서 말한 대로 내 생각을 가장 잘 정리하는 방법은 글쓰기 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고 한다. 한 권의 책 속에 담긴 지식에 자신의 생각을 더해 기록한다면 지혜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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