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토론의 기본은 경청, 잘 들어야 잘 말할 수 있다.
대학 입학은 운이 많이 따랐다. 수능 점수는 중간정도였지만 특별전형으로 가산점을 받았다. 또 같은 반 친구 중 다섯 명이 같은 학교 같은 과로 진학했다. 친구들 덕분에 대학 생활 적응은 어렵지 않았다. 1학년을 마치고 전과를 했다. 건축공학과로 입학 했지만 설계에 매력을 느껴 2학년부터 건축설계학과로 옮겨갔다. 건축설계학과에서 비중이 큰 수업은 설계수업이다. 주어진 조건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건물을 한 학기에 2~3개를 디자인부터 모형 제작까지 해 내야 한다. 그러니 설계수업에 손과 시간이 제일 많이 간다. 이 수업의 핵심은 디자인이다. 컨셉부터 형태가 나오기 까지 수많은 의견을 주고받는다. 같은 반 동료부터 교수님의 의견까지 다양하게 듣게 된다. 이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생각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다. 디자인은 자신의 생각에서 시작한다. 자신이 가진 지식, 경험, 감각 등에 기초해 조건에 맞는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낸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함정에 빠진다. 사공이 많아 산으로 가는 건 안 되지만 혼자 판단해 잘못 된 방향으로 가는 건 더더욱 잘못 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에 갇히지 않도록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다양한 시각의 의견을 듣다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기능과 미적인 부분, 더 나은 아이디어 들이 추가되게 된다. 그렇게 발전시키는 과정을 통해 처음과 다른 보다 더 완성 된 디자인 형태를 만들어내게 된다.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이 치열할수록 디자인의 완성도는 높아진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다. 내 고집만 세우면 어떤 의견도 들을 수 없다. 상대의 의견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나와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다르다고 틀린 건 아니다. 때론 그 다름이 또 다른 답을 주기도 한다. 좋은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수용하는 자세일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는 건 생각의 틀을 확장하는 과정이다. 생각의 틀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다. 다양한 정보, 경험, 지식을 받아들이고 경험에 덧씌우는 과정을 거치며 지혜로 거듭나게 된다. 한 권의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생각의 깊이는 개인의 역량과도 연결된다. 생각의 크기에 따라 책이 던지는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깊이가 달라질 수 있다. 디자인을 발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의견이 필요 하듯 한 권의 책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접할 수 있다면 생각의 크기 또한 키울 수 있다. 이런 역할을 해주는 것이 독서모임이다. 같은 책을 읽고 각자가 느끼고 깨달은 점을 나눌 수 있는 곳이다. 우리 모두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다른 환경에서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생각을 만들어왔다. 모두 다르기에 같은 책을 읽어도 받아들이는 내용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내 생각이 뼈대라면 다른 이들의 생각은 살이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깊이에 넓이를 더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이때도 중요한건 경청하는 자세이다. 타인의 생각을 존중할 수 있을 때 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8명이 한 조가 되어 몇 권의 책을 읽었다. 나이, 성별, 환경, 직업 등 같은 게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분명 같은 책을 읽었지만 그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인 내용은 많이 달랐다. 나는 가볍게 넘긴 부분이 누군가에겐 인상 깊은 한 줄이 되기도 했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한 한 줄에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았다. 누가 맞고 누가 틀린 문제가 아니다. 다양성일 뿐이다. 다름은 가능성이다. 다름을 받아들이고 내 것이 될 수 있다면 나에겐 또 다른 가능성이 생긴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도 있다. 가보지 않은 길을 꼭 가봐야만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그 길을 다녀온 이의 경험을 통해서 짐작 가능하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다른 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줬는지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독서 토론을 참석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4가지가 있다. 우선 책을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많이 읽고 꼼꼼하게 읽을수록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책은 한 번 볼 때 와 두 번, 세 번 볼 때 마다 받아들여지는 것이 다르다. 많이 읽으면 나 자신을 위해서도 좋지만 함께 하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읽을 때 중요한 것은 책이 말하는 핵심을 찾는 것이다. 여러 사례와 자료가 아닌 저자가 말하는 핵심 주제를 찾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때 도움이 되는 게 글쓰기 이다. 저자의 주장을 찾아 내 의견을 덧붙여 글로 써보면 보다 명확해 질 수 있다. 글 쓰는 과정은 책을 읽은 후 머릿속 떠다니는 생각들을 하나로 엮는 기능을 한다. 엮는 과정은 자신의 논리력을 키워준다. 저자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받아들인 대로 말하는 건 앵무새가 단어연습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면 내 주장을 말할 때도 막힘없어진다. 독서토론은 말 그대로 주제를 놓고 각자의 의견을 토론하는 자리이다. 내 의견을 명확히 말할 수 있다는 건 주제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토론은 아니지만 내 생각이 상대의 생각을 확장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내 주장에 명확한 논리가 뒷받침 안 된다면 상대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내 뱉는 말에 책임감도 필요하다. 그래서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도록 명확하게 말하는 능력을 필요로 하는 이유이다. 아무리 책을 여러 번 읽고 생각을 많이 해도, 결국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이 논리적이지 못하면 책을 읽었는지 조차 의심 하게 된다. 토론은 내 의견을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들어야 한다. 상대 의견을 잘 듣고 올바로 이해했을 때 내 의견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듣는 사람은 그냥 들어서는 안 된다. 제대로 들어야 한다. 말하는 이의 논지를 명확히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잘 듣는 건 자신을 위해서 또 상대를 위해서이다. 상대방이 주장을 명확하게 말하지 못할 경우도 있다. 그때는 상대에게 다시 한 번 되물어야 한다. 가령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이렇게 이해하면 될까요? 라는 식으로 듣는 이의 입장에서 제대로 이해했는지 말해주면 말하는 이도 다시 한 번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런 식으로 이어지면 보다 깊이 있는 토론이 될 수 있다.
듣는 행위는 단순히 상대의 의견만 듣는 건 아니다. 듣는 과정을 통해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상대가 갖고 있는 생각을 통해 한 사람의 존재를 이해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토론은 형식일 뿐 이를 통해 취해야 할 궁극의 목적은 사람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주제로 토론하는 과정 속에서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갈 수 있다. 책을 읽고 얻을 수 있는 효과 중 하나는 사람에 대한 이해를 빼놓을 수 없다. 글자로만 사람을 이해하는 건 한계가 있다. 몸으로 부딪히고 생각을 나눌 수 있을 때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직접 부딪히는 것 이상 좋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이왕이면 책을 매개로 누구나 평등한 위치에서 생각을 나눌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다. 읽고, 쓰고, 말하고, 듣는 건 비단 독서토론만을 위한 건 아니다. 한 권의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로 정리하고, 정리한 글이 쌓이며 논리적인 말하기가 가능해진다. 또 책을 읽는 건 독자의 입장에서 저자의 의견을 경청하는 과정이다. 책 읽는 행위 자체가 받아들이는 과정이며 경청과 일맥상통하다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