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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n 01. 2023

월급쟁이, 근저당에서 벗어나는 중


스물일곱, 생전 처음 차를 샀다. 4대 보험을 납부하는 직장인이었지만, 월급이 제때 나오지 않았다. 차를 사는데 실제 소득이 중요하지 않았다. 제2 금융에서 한도만 나오면 누구나 얼마든 차를 살 수 있었다. 내 돈 없이 차를 샀다. 할부금은 대표가 부담하겠다는 조건이었다. 라세티를 인수받고 몇 달은 제때 냈다. 그때는 일감이 없었다. 영업을 해도 돈벌이 가 되는 일을 따오지 못했다. 당연히 월급도 계속 밀려있었다. 그 와중에 차 할부금까지 감당이 안 됐다. 한 번 밀리기 시작하니 대책이 없었다. 신용카드 돌려 막기로 근근이 버텼다. 할부금이 밀리면서 인생도 점점 꼬이기 시작했다.


그때는 빚 독촉 전화를 받는 게 일상이었다. 캐피털에서도 추심팀을 따로 운영한다고 들었다. 나처럼 할부금을 내지 못하면 특별 관리 대상이 된다. 하루에도 서너 차례 전화 오기 일쑤였다. 안 받으려고 피하면 받을 때까지 전화했다. 보이지 않았지만 늘 감시당하는 기분이었다. 독촉 전화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밀린 할부금을 내지 못했다. 중고차로 팔아서 남은 할부금을 해결하는 쉬운 방법이 있었지만 이마저도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중고차 시세가 대출 원금에 못 미쳐서 내 돈을 보태야 했다. 그럴 돈이 없으니 중고차로 내놓지도 못했다. 시간을 끌수록 빚이 빚을 낳는 꼴이었다. 2년을 끌다가 겨우 돈을 구해 중고차로 처분하면서 저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저당 잡히는 게 어떤 건지 그때 알았다. 내 것이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때 그랬고 그 이후 삶도 그랬던 것 같다. 내 인생이지만 내 의지대로 살지 못했었다. 매달 할부금, 카드값을 내기 위해 월급을 벌어야 했다. 직장도 시원찮아서 월급이 밀리기 일쑤였다. 밀리는 월급 때문에 할부금, 카드값도 밀렸다. 이런 악순환을 끊기까지 제법 오래 걸렸다. 어쩌면 개인회생을 하고 나서야 그때까지 저당 잡혔던 인생에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20년째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 큰 빚은 정리했지만 매달 생활비는 빠듯하다. 남은 빛은 전세 대출과 다음 달이면 끝나는 자동차 할부금이 전부다. 오르는 물가를 따라잡지 못했던 월급도 올해는 제법 올랐다. 그 덕분에 그나마 덜 쪼들리고 산다. 월급은 월급대로, 부업은 부업대로 수입이 생기면 가계는 점점 안정될 것 같다. 이렇게 조금씩 안정을 찾을 수 있었던 건 내 의지대로 하루를 살아서이다. 6년 전 읽고 쓰는 삶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책 읽고 글 쓴다고 큰돈을 버는 건 아니었다. 큰돈을 벌 수는 있지만, 나와는 상관없었다. 겁 없이 큰돈을 벌겠다고 욕심을 부렸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세상일이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러고 나서 순리대로 사는 걸 인생의 목표로 정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사는 건 당연하다. 열심히 산다고 모든 게 내 뜻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때로는 행운과 함께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런 운도 어쩌면 노력의 결과라고 말한다. 당연하게 주어지는 게 아닌 보이지 않는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고 말이다.


저당 잡혀 살던 때와 크게 달라진 한 가지는 시간 관리이다. 그때는 내 시간이지만 내 의지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남 탓하고 그럴 수밖에 없다고 순응했던 것 같다. 상황을 바꾸려고 노력하기보다 어쩔 수 없다며 인정했다. 하지만 6년 전 읽고 쓰는 삶을 시작하면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적어도 하루 동안 내 의지대로 나를 위해 사용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그 시간을 통해 삶의 태도를 달리했다. 하고 싶은 일도 찾았다. 작가이자 강연가로서 역량을 키우기 위해 시간을 투자한다. 투자하는 시간의 양만큼 실력도 나아진다고 믿는다. 잠을 줄여 매일 아침 3시간씩 나를 위해 공부한다. 업무 짬짬이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술을 끊은 것도 내 시간을 더 만들기 위해서다. 나에게 투자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내 인생도 내 의지대로 만들어 가는 중이다.


파도가 치는 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파도가 칠 때 그곳을 벗어날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모두에게 24시간이 주어지는 건 예외 없다.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내 선택에 달렸다. 저당 잡혀 산다고 수동적으로 살 필요는 없다. 그렇게 살아보니 알게 되었다. 월급을 받기 위해 내 시간을 저당 잡히는 것도 내 선택이다. 그렇다고 나머지 시간까지 끌려다닐 필요는 없다. 적어도 남는 시간은 내 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다. 같은 월급 쟁이어도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건 내 의지대로 선택했을 때이다. 누구도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 근저당 설정하고 차를 사는 것도 오롯이 내 의지이듯 시간을 선택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빚을 내는 것도 시간을 활용하는 것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선택하면 된다.


남은 평생 안정된 직장과 월급을 보장받는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극히 일부이다. 스스로 서야 하는 때가 온다. 살면서 일어나는 일이 내 뜻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이마저도 요원한 게 인생이다. 그럴 때마다 탓하며 살 수도 없다. 그래봐야 내 손에 남는 건 하나도 없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은 그런대로 두고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면 어떨까? 하루 동안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말이다. 남의 손이 아닌 내 손으로 내가 바라는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하루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뜻하지 않은 행운도 찾아올 것이고, 저당에서 벗어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오늘도 이 글을 쓰기 위해 1시간 30분을 나에게 투자했다. 이 시간이 쌓이면서 조금씩 내가 꿈꾸는 자유로운 인생에 다가서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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